15. 기억의 공기 속으로

by 에투왈

씨떼섬, 시간의 흔적을 걷다



파리의 심장, 씨떼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약해 둔 생트 샤펠 성당은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안으로 들어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밖에서만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봐야 했다. 루이 9세의 왕실 예배당이자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고 익히 들었던 터라 더욱 미련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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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화려한 빛깔을 직접 마주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로 옆의 웅장한 건물, 콩시에르주리로 시선을 돌렸다. 외관부터 남다른 위엄을 뽐내는 곳이었다.

콩시에르주리는 왕의 궁전이었다. 14세기말부터 감옥과 법정으로 바뀌어갔다. 프랑스 대혁명시기, 단두대로 향하는 섬뜩한 역사를 품게 되었다. 가장 슬프게 기억되는 이름은 마리 앙투아네트다. 베르사유의 정원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미소 짓던 그녀는 이곳에서 마지막 76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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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아직도 그녀가 남긴 희미한 흔적들이 있다. 쓰던 작은 책상, 성경책, 그리고 벽에 새겨진 십자가의 흔적.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마지막 밤에 짧은 기도문을 속삭이며 그 위에 손을 얹었다고 한다. 화려한 역사의 반대편에서, 소리 없는 역사 또한 이토록 오래도록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의 침묵이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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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역시 밖에서만 바라보고 발걸음을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년 전 화재로 인해 폐쇄되었던 노트르담은 이제 거의 복구가 완료되어 다시 문을 열고 있었다. 밖에서 바라본 외관은 예전의 빛바랜 고풍스러운 모습 대신, 마치 새 건물처럼 말끔하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d_5beUd018svcdbqjk7uabgs_bxeu2s.jpeg?type=e1920_std <노트르 담> 모리스 위트릴로, 1910경, 오랑주리


이 그림은 20세기 초 몽마르트르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 모리스 위트릴로가 그린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위트릴로는 정신적인 불안과 알코올 중독을 겪었는데, 그가 붓을 잡기 시작한 건 치료의 일환이었다.

그의 건물 묘사에는 묘하게도 정적이 감돈다.
마치 기억 속의 노트르담, 혹은 꿈에서 본 듯, 색감도 은은한 파랑과 연한 녹색 톤으로, 성당이 마치 하나의 정서적인 존재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는 건축물이라기보단 ‘감정’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위트릴로는 주로 사람 없는 거리, 고요한 광장을 많이 그렸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멀리 내려다보며 도시를 그리던 그에게, 빠리는 언제나 멈춰 있는 듯한, 시간이 정지된 공간이었는데,
이 그림에서 우리는, 예술가의 내면에 비친 도시, 그리고 그의 고독과 시선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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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대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14년 전, 그때도 나는 이 자리에서 멈춰 서 있었다. 천장으로 솟구친 고딕의 아치, 빛이 피어나는 장미창, 그리고 말없이 숨 쉬던 어둠의 정적. 나는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누구의 슬픔 때문도, 나 자신의 고통 때문도 아니었다. 아마도 그것은 시간의 언어, 영혼의 침묵이 건네는 손짓이었을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손끝, 여행자의 조용한 발소리, 수도사의 낡은 성가들이 켜켜이 쌓여 이 성당을 ‘숨 쉬는 건축’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날의 성당은 조금은 침침했고, 한 줄기 촛불의 희미한 빛이 아치 아래로 스며들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오래된 향기, 섞여 있는 먼지와 촛농, 돌의 냄새. 그 모든 것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퍼지며 성당 전체를 ‘기억의 공기’로 감싸고 있었다.


복원된 성당, 낯선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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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노트르담은 달라져 있었다. 2019년의 화재 이후, 성당은 완전히 복원되어 있었다. 아름다웠고, 말끔했다. 그러나 그 말끔함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신축 건물처럼 새로웠다. 벽은 정갈했고, 천장은 밝았으며, 실내는 오래된 성당 특유의 냄새도 거의 사라져 있었다. 무언가 빠져 있었다. 그 미묘한 어둠, 엄숙한 분위기와 침묵, 시간이 켜켜이 머물렀던 흔적이 사라졌다.



콰지모도의 숨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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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떠오른 이름, <노틀담 드 빠리>와 빅토르 위고. 그는 이 성당을 책이라 불렀다.
“성당은 책이다. 사람들이 읽을 줄 모르던 시절, 사람들은 돌에다 썼다.”

그 책의 페이지 속에는 콰지모도가 있었다. 세상의 눈을 피해 종탑에 숨어 살던 콰지모도, 그리고 거리의 춤추는 집시 소녀, 라 에스메랄다. 추함 속에서도 가장 순수한 마음을 지녔던 콰지모도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품었다. 성당 꼭대기에서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던 세상을 향해, 그는 말없이 종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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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지모도의 유일한 친구였던 가고일



또 다른 인물, 신부 퓌롤로. 신의 이름으로 욕망을 숨겼지만, 결국은 그 욕망이 자신도, 소녀도, 그리고 콰지모도마저 무너뜨렸다. 성당은 그 모든 사랑과 비극의 무대였다. 위고는 성당을 배경으로 인간의 내면을 새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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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했다. 그 돌의 문장들이 불길 속에서 무너진 지금, 이곳은 여전히 책이 될 수 있을까?
그 잿더미 위에, 다시 이야기를 쌓을 수 있을까?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빰위로 흐르던 눈물을 감추던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 소리를 둘러싸고 있던 공기, 침묵이 말을 대신하던 성당의 냄새, 시간이 먼지처럼 내려앉던 그 어둠, 그것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그 공기까지 되살아날 수 있을까?
그날이 오면, 나는 이 성당에서 콰지모도의 숨결과 함께, 다시 이유 없는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성당을 나서며 나는 깨달았다.
시간은 건물을 되살릴 수 있지만, 그리움은 기억 속에 머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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