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빵 냄새, 차향기, 그리고 붉은 벽돌의 광장으로

by 에투왈


< 이동 경로 >
노틀담 대성당 → 빠리 시청사 Hôtel de Ville → 미샬라크 빠리 Michalak Paris → 마리아주 프레흐 Mariage Frères → 마레 지구 → 보주 광장 Place des Vos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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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re-Dame Cathedral of Paris to Place des Vosgeswww.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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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탑을 올려다보며, 자유의 얼굴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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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자 빠리 시청사가 눈앞에 펼쳐졌다. 도시의 심장처럼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건물. 그 위에 새겨진 문장.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 (자유, 평등, 우애)

혁명으로 태어난 이 단어들은, 지금도 빠리의 돌담 위에서 자신들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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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ue de l'Hôtel de Ville, Hotel de Sens, 1900초, MET


이 시청사는 과거의 불길로 사라졌다가 복원된 건물이다. 그 붕괴와 정적의 순간을 기록한 이는 바로 Eugène Atget 외젠 앗제였다. 19세기말, 그는 빠리의 폐허와 그림자들을 집요하게 사진으로 남겼다. 사람 없는 거리, 텅 빈 광장, 안개 낀 다리. 앗제의 사진은 도시가 잠든 새벽에만 존재하는 ‘미술관 없는 미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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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사를 지나 마레지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샬라크 빠리(Michalak Paris)의 유리 진열장이 눈에 띈다. 크리스토프 미샬라크는 빠리의 유명 파티시에로, 디저트를 예술로 끌어올린 장인이기도 하다. 내부에는 마치 조각처럼 정제된 디저트들이 놓여 있다. 그 형태는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처럼 평범한 재료를 낯설게 만든다. 디저트 하나하나가 설치미술처럼 느껴지고, 색채의 구성은 마치 칸딘스키의 회화처럼 음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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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옆에 자리한 차 컬렉션 숍 Mariage Frères에서는, 차 하나에도 색과 향의 조화를 담았다. 홍차 잔에서 퍼져 나오는 향은 잠시 공간 전체를 수채화처럼 번지게 했다. 빠리에서는 맛과 향, 진열과 조명까지가 하나의 예술 언어다.



담쟁이 아래를 걷다 보면, 오래된 시간들이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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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 오래된 석조 아치, 전깃줄에 매달린 철제 간판들. 마레 지구로 들어서면 공간의 결이 바뀐다. 여기에는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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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일, 마르크 샤갈, 1915, MoMA



어! 이 그림, 어떤 장면일까?

이 거리 어딘가, 언젠가 샤갈도 이곳을 걸었다. 그의 캔버스에는 종종 떠 있는 연인들이 등장한다. 이 그림 속 인물은 샤갈 자신과 그의 연인 벨라. 샤갈이 자기 생일에 벨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순간을 그렸는데, 단순한 장면 묘사에 그치지 않았다. 샤갈은 그날 느꼈던 감정을 마치 꿈처럼, 시처럼 표현했다. 기쁨에 떠오른 남자의 몸, 이건 과장이 아니다.

그는 한 번도 “있는 그대로”를 그린 적이 없다. 항상 “느낀 대로” 그렸다. 이 그림도 마찬가지다. 중력이 없어졌다는 건, 사랑이 우리를 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방도 조금 기울어 있고, 물건들도 실제와는 다르게 보이는데, 이건 그냥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더 중요한 내면의 진실을 보여준다.

이 그림이 그려진 때도 중요하다. 1915년,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다. 샤갈은 러시아 비텝스크에 있었고, 그 해에 벨라와 결혼했다. 밖은 전쟁이고, 미래는 불확실했다. 하지만 샤갈은 벨라와의 사랑을 그림으로 남긴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세상이 아무리 무너져도 내 사랑은 공중을 날고 있다”는 선언 같기도 하다.

샤갈의 그림에는 진짜 감정이 있다. 러시아 유대인 공동체에서 자란 작가답게, 그의 그림엔 항상 민속적인 분위기, 고향의 기억이 배어 있다. 꽃, 천, 테이블 같은 오브제들도 그냥 장식이 아니고, 샤갈의 기억, 정서, 그리고 벨라와의 사랑을 상징한다.

“여러분, 사랑해 본 적 있나요? 진짜 사랑에 빠지면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기분, 아시죠? 샤갈은 그걸 그림으로 표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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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워있는 누드, 모딜리아니, 1917~8, 롱뮤지엄(상하이)


모딜리니아의 <누워있는 나부>는 그가 빠리에서 가장 고통스럽고도 열정적으로 살던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술과 담배 연기, 값싼 카페 와인, 예술가들의 허세와 방황이 뒤섞이던 거리에서
모딜리아니는 매일처럼 캔버스를 들고 다녔다. 그의 누드 연작은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그림이 바로 이 <누워 있는 나부>다.

화면을 채운 여인의 몸은 부끄러움도, 연출도 없다. 그저 자신의 몸을 숨기지 않고,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림 속으로 관람자를 끌어당긴다. 긴 팔과 다리, 매끄럽게 이어지는 윤곽, 단순한 배경. 이것은 욕망의 시선으로 소비되는 누드가 아니다. 오히려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육체는 하나의 조각 같고, 정적인 형식미를 지닌다.

이 그림의 모델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모딜리아니의 삶과 사랑의 중심에는 단 한 명의 여인이 있었다. 바로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 그는 이탈리아계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조용한 미술학도였고, 모딜리아니와 만나면서 그의 세계로 깊이 들어왔다.

잔은 그의 모델이었고, 연인이었고, 삶의 마지막까지 함께였던 사람이다. 그녀 역시 누드로 여러 번 그의 캔버스에 등장했고, <잔 드 에뷔테른의 초상>은 모딜리아니의 가장 서정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비극적이었다. 모딜리아니는 1920년 1월, 병든 몸으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고, 그로부터 단 이틀 뒤, 잔은 임신한 몸으로 건물 5층에서 투신해 세상을 따라갔다. 그녀는 겨우 스물한 살이었다.

<누워 있는 나부>에 등장한 여인이 잔이었는지, 아니면 잔과 닮은 또 다른 여자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딜리아니가 그린 모든 여인의 육체에는, 그가 사랑한 사람의 향기, 그리움, 그리고 구할 수 없던 평온이 묻어 있다. 그것은 사랑의 그림이고, 삶의 기록이며, 예술가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림은 침묵하고 있지만, 그 침묵 속엔 말보다 깊은 감정이 흐른다.


보주광장, 햇살 아래에서 살아나는 역사

정사각형의 기하 속에 고요와 질서가 깃들어 있는 이곳은, 빠리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이다.
1605년, 앙리 4세가 처음 이 광장을 설계하게 했을 때, 그 의도는 단순한 ‘광장’이 아니었다.
이곳은 프랑스 최초의 왕립 광장으로서, 건축의 통일성과 도시의 이상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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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둘러싼 붉은 벽돌 아치와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들은 같은 높이, 같은 구조로 지어졌고, 광장의 정중앙에는 루이 13세의 기마상이 세워졌다. 그는 앙리 4세의 아들이자, 프랑스를 절대왕정 시대로 이끈 군주였으며, 광장의 상징적 중심에 그를 놓는 일은 곧 왕권과 질서의 중심을 여기에 두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지금의 석상은 복제품이다. 원래의 청동상은 프랑스 대혁명 때 파괴됐고, 현재 이 석상은 19세기 중반에 복원된 것이다. 이 단순한 동상이 품고 있는 역사의 무게를 생각하면, 광장을 걷는 발걸음마저도 조금은 더 조심스러워진다.


빛이 머무는 곳에서 사람들은 살아난다

계절은 4월 초.
빠리는 이제 막 우중충한 겨울과 긴 흐린 날들을 지나, 첫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한 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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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위로 햇살이 부드럽게 퍼져 나무마다 작은 싹이 돋기 시작했고, 잔디는 겨울의 탁한 색을 벗고 연초록을 되찾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작은 광장을 향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들어 누군가는 잔디 위에 얇은 코트를 깔고 누워 있었고, 또 누군가는 책을 읽다가 햇살에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뒤로 젖혔다. 마치 이 빛이 사라질까 두려운 듯, 모두가 태양의 따뜻함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있어 마치 자연이 주는 축복을 받는 것 같았다.


그 가운데, 나도 그 빛의 일부가 되었다. 아무 말 없이 벤치에 앉아 있었고, 주변의 웅성거림과 아이들의 웃음소리, 분수의 물소리와 커피잔이 부딪히는 소리들이 마치 한 곡의 음악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모두가 햇살 아래에서 새싹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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