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주광장에서 만난 빅톨 위고
보주광장에 도착했다. 광장 안쪽으로 붉은 벽돌이 아치형으로 이어지고, 분수대는 부드러운 물소리를 뿜고 있었다. 이곳은 빠리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 하지만 마치 오늘 지어진 것처럼 생생했다. 봄 햇살 속에서 나뭇잎이 반짝였고, 풀밭 위에는 젊은 빠리지엥들이 누워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보주광장은 1612년, 앙리 4세에 의해 설계되고, 그의 아들 루이 13세의 약혼식을 기념해 완공되었다. 당시 이 광장은 프랑스 최초의 도시계획형 광장으로, 왕권의 질서와 미학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처음 이름은 Place Royale(왕의 광장)이었고, 광장을 둘러싼 일체형 건물들도 왕실의 기념 건축물로 설계되었다.
광장을 둘러싸는 네 면의 건물들은 파빌리옹(Pavillon)이라 불리는 개별 주거 건물로 나뉘는데, 건축적으로는 통일된 형태(3층 높이, 붉은 벽돌+백색 석재, 슬레이트 지붕)를 갖추고 있고, 이러한 파빌리옹은 중앙의 큰 입구를 기준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며, 대표적으로 Pavillon du Roi (왕의 파빌리옹), Pavillon de la Reine (왕비의 파빌리옹) 등이 있다. 이 파빌리옹 개념은 프랑스 고전주의 건축에서 흔히 쓰이던 것이고, ‘작지만 독립된 귀족 거주 건물’이라는 뜻도 있다.
위고가 살았던 건물은 그중에서도 "Pavillon de Rohan-Guéménée (로앙-게메네 파빌리옹)"이라 불린다. 보주광장의 6번지(6, Place des Vosges)에 위치해 있으며, 17세기 루이 13세 시기 건축된 이후 귀족 가문인 로앙-게메네 가문이 거주하면서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
1832년부터 1848년까지 이곳에서 빅톨 위고가 아내 아델과 함께 살았고, 훗날 그를 기리기 위해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이 건물의 이름 속 ‘로앙-게메네(Rohan-Guéménée)’는 브르타뉴 지방의 귀족 가문에서 유래했으며, 이 가문은 루이 16세 시대에도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유서 깊은 집안이다. 위고가 이 귀족 건물 안에서 혁명과 민중, 정의와 사랑을 노래하는 소설을 써 내려갔다는 점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장소다.
‘MAISON DE VICTOR HUGO’라고 적힌 간판 아래, 나는 손끝으로 위고의 이름을 짚었다. 14년 전, 아이들과 함께 빠리에 왔을 때도 이곳을 찾아왔었다. 그런데 그날이 마침 휴관일 이어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큰 아이가 제법 두꺼운 <레 미제라블> 5권을 다 읽을 정도로 좋아한 작가이어서 돌아서는 발걸음은 더 무거웠다. 그래서 이번엔 더 단단한 마음으로, 잊지 않고 찾아왔다. 아직도 이 책이 집에 남아 있는 걸 발견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프랑스혁명 후, 왕정의 상징인 'Place Royale'은 그 이름이 문제가 되었다. 1800년에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혁명 정부에 세금을 낸 지방인 보주(Vosges) 지역을 기려, 광장 이름은 Place des Vosges(보주 광장)가 되었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마치 한 시대가 온전히 박제된 듯한 위고의 아파트가 펼쳐진다. 벨벳 커튼과 짙은 목재 가구, 금박 장식과 붉은 벽지로 둘러싸인 방은 말 그대로 위고의 정체성이다. 화려함보다는 묵직함, 고요하지만 강렬한 내면.
방 한 켠에 세워진 흉상 아래엔 이렇게 적혀 있다.
“À Victor Hugo, son ami E. David d’Angers, 1838.”
그의 친구이자 조각가 다비드 당제의 작품. 그들의 우정은 예술로 새겨졌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콰지모도가 나를 맞았다.
이 작은 조각은 ‘노트르담 드 빠리’의 종지기, 콰지모도를 형상화한 것이다.
무언가를 껴안듯, 그는 거대한 종에 몸을 기댄 채 웅크리고 있다.
종은 단지 쇳덩이가 아니다. 세상이 그를 외면할 때,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기댈 수 있었던 벗이자, 그의 내면 깊은 외침을 세상에 울려주던 메아리였다.
조각은 섬세하거나 매끄럽지 않다.
굽은 등, 거칠어진 손, 뭉툭한 선들로 이뤄진 그 형상은 오히려 더 진솔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조각이 아니라, 고요한 절규 같았다.
사랑받지 못한 존재가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마음을 울리는 장면처럼.
괴물의 껍질 안에 숨은 따뜻한 심장.
이 조각은, 말 대신 종소리로 자신을 표현했던 한 영혼의 침묵을 들려준다.
“그는 괴물처럼 태어났지만, 그 안엔 천사의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에스메랄다가 처형된 다음날 밤, 시신은 지하실로 옮겨졌다. 그녀가 죽은 지 18개월이 지난 어느 날 인부들은 무언가를 찾으러 지하실에 왔다. 시체 중 하나는 여자였고 목에는 구슬 목걸이가 걸려 있었는데 그 목걸이에는 초록색 유리로 장식된 작은 비단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여자 시체를 꼭 끌어안고 있는 또 다른 시체는 남자였다. 등뼈는 휘어있었고 다리 하나가 다른 쪽 보다 짧았다. 목뼈가 부러지지 않은 걸로 보아 교수형 당한 시체는 아니었다. 마치 지하실로 걸어 들어와 거기서 죽은 것처럼 보였다.
"인부들이 그가 품에 안고 있던 여자 시체의 해골을 떼어내려 하자 남자의 유해는 부서져 먼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