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순간에서 영원으로

by 에투왈


꿈결 속으로


지하로 내려가는 그 길은 마치 오래된 꿈 속으로 들어가는 계단 같았다. 수련 앞에서, 나는 조용히 침잠했다. 그것은 물의 표면이 아니라, 내 마음의 표면 같았다. 빛이 희미해지고, 발걸음이 조용해질수록 나는 점점 나 자신과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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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수련, 그건 정원도 아니고, 연못도 아니었다. 푸른색은 하늘 같았고, 물결은 기억처럼 흘렀으며, 늘어지는 수양버들은 누군가의 오래된 편지처럼 마음을 덮고 있었다. 나는 말을 잊었다. 시간도 잊었다. 오직 바라보는 일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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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 모네는 지베르니에 정착했다. 1893년 저택 남쪽 땅을 추가로 매입하고 정원을 가꾸기 위해 산책로를 만들고 웅덩이를 파서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이 연못에 일본산 수련을 심고 연못 주변에는 붓꽃과 등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식물들을 심었다.


7_a2gUd018svc39g4093lj2bf_bxeu2s.jpg?type=e1920_std * 지베르니 일본식 다리에서(2025년 4월)


수련을 그린 첫 작품은 1897년경이었다. 초기 작품은 수련이 주제를 이루기보다는 1895년에 연못 한쪽에 설치한 일본식 다리를 중심 테마로 해서 주로 멀리서 보는 연못의 전경을 다루고 있었다.

1903년에 이르러 원근법이 서서히 사라지고 물과 수련만이 클로즈업된 작품들로 변화했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물 위에 비친 하늘빛과 빛에 따라 변화하는 수련의 모양이 다양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물에 비친 명암의 반사를 통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의 오묘한 빛깔을 집약적이고 단면적인 풍경화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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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제프루아는 모네의 첫 번째 전기에서 그 모습을 이렇게 적었다.

"그는 맑은 물이 고인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자신이 고른 나무와 소관목, 꽃을 연못 주위에 심었고 수면은 다양한 색감의 수련으로 장식했다. 봄에 활짝 꽃이 피어서 여름 내내 화사한 모습,
꽃이 핀 수면 위로 일본풍의 나무다리가 살포시 지나가고, 수련 잎 사이로 하늘이 비추고 나뭇잎을 간질이는 공기와 바람의 흐름이 묻어나며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평온한 주위 자연이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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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라와 에메랄드, 회청색과 장밋빛이 물처럼, 안개처럼, 감정처럼 서로를 스치며 번져갔다. 그림은 점점 현실로부터 멀어졌고, 그래서 더욱 가까워졌다.
“이건 꽃이 아니라 시간이다”

피고 진다는 사실보다, 그 사이의 머무름이 더 중요했다. 모네의 수련은 늘 같은 연못을 바라보며 다른 순간들을 붙잡은 것이었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그는 계절이 아니라, 그 사이의 공기를 그렸다. 물결은 기억처럼 흩어졌고, 잎사귀는 침묵처럼 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수련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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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가 말년에 그렸던 수련 연작은 더 이상 ‘무엇을 그릴까’가 아니라 ‘어떻게 느낄까’에 대한 화답이었다. 그의 시선은 흐릿해졌지만, 마음은 점점 더 또렷해졌고, 경계는 흐려졌지만, 감정은 더욱 또렷이 번져갔다. 꽃을 그린 것이 아니었다. 그 꽃을 바라보던 한 인간의 마음, 한 시대의 꿈, 한 생의 침묵을 그려낸 것이었다.


그 시대, 많은 예술가들은 빠리의 소음과 문명의 그림자를 피해 자연으로의 도피를 꿈꾸었다.
고갱이 남태평양으로 떠났듯, 모네는 자신의 연못 속에서 현실을 지워내고 시간을 넘어선 세계를 빚어냈다.

<수련> 속에는 사람이 없다. 그림자는 있지만, 얼굴은 없고, 발자국도 없다. 오직 물과 공기, 빛과 땅, 자연의 네 가지 원소만이 회화라는 공간 안에서 유영하고 있을 뿐이다. 그림이 아니라 세계였다. 그 안엔 시작도, 끝도 없고 오직 ‘존재하는 감각’만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한 송이 수련이 꿈꾸는 것처럼,
그 꿈속에 우리는 머물고,
영원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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