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인상주의의 탄생
지친 다리를 이끌고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으로 왔고 발바닥이 따끔 거리는 통증이 온몸에 퍼져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지하 전시실을 지나, 나는 마침내 한 폭의 그림 앞에 섰다. 햇살이 수면 위를 막 건너온 듯한 그 장면은 어딘가 낯설고도 익숙했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였다. 그 순간 내가 그토록 보기 원한 작품들을 대면하자 봄 눈 녹 듯 아픔이 사라져 갔다.
새벽빛은 아직 어둠과 섞여 있었고, 태양은 막 솟아오르는 중이었고 하늘도, 물도, 배도, 그 무엇도 또렷하지 않았다. 그림 전체가 마치 안갯속에서 부유하는 것 같았다. 그림 속 항구는 세느강이 대서양을 만나는 르 아브르였다. 화가들은 증가기관차를 타고 멀리 이동할 수 있었다. 소로가 월든에서 혐오한 기차였지만 산업화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기계가 매연을 토해내고, 항만이 분주히 깨어나던 산업의 도시. 모네는 그 도시의 소음을 지우고, 그 위에 물빛과 안개, 그리고 감정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 전시는 1874년 4월, 카퓌신 대로에 있던 사진가 나다르의 스튜디오 2층에서 조용히 열렸다. 30명의 작가가 165점의 작품을 내걸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모네의 <인상, 해돋이>였다.
그림 앞에 선 방문객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킬킬 웃었다.
“이게 뭐지? 완성도 없는 붓질에, 흐릿한 윤곽…해가 떴는지, 안개가 낀 건지 알 수가 없잖아!”
르 샤리바리 지의 평론가 르루아는 비웃음 섞인 글을 남겼다.
“이건 단지… 인상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조롱 속에 담긴, “겨우 인상(impression)이지"라는 조롱거리였던 이름이 아이러니하게 새로운 미술사조 "인상주의"로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대신, 그 순간 마음을 건드렸던 빛의 떨림, 공기의 온도, 색의 숨결을 붙잡는 일. 그것이 인상주의였고, 그 시작점에 이 <인상, 해돋이>가 있었다.
나는 그날, 그림 속 저 작은 배가 되어 수면 위를 천천히 떠다녔다. 모네는 해를 그렸지만,
그보다 더 선명한 건 물 위로 번져가는 오렌지빛이었다.
해는 잠깐이지만 그 빛은 오래도록 퍼졌다. 그건 감정 같았고, 사랑 같았고, 기억 같았다.
모네는 그 모든 것을 단 네 글자로 남겼다. <인상, 일출>
마치,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기 전에
먼저 눈빛으로 안부를 묻는 것처럼.
그림은 그렇게 내 기억 속 인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