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인상, 해돋이>

그리고 인상주의의 탄생

by 에투왈


지친 다리를 이끌고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으로 왔고 발바닥이 따끔 거리는 통증이 온몸에 퍼져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지하 전시실을 지나, 나는 마침내 한 폭의 그림 앞에 섰다. 햇살이 수면 위를 막 건너온 듯한 그 장면은 어딘가 낯설고도 익숙했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였다. 그 순간 내가 그토록 보기 원한 작품들을 대면하자 봄 눈 녹 듯 아픔이 사라져 갔다.

새벽빛은 아직 어둠과 섞여 있었고, 태양은 막 솟아오르는 중이었고 하늘도, 물도, 배도, 그 무엇도 또렷하지 않았다. 그림 전체가 마치 안갯속에서 부유하는 것 같았다. 그림 속 항구는 세느강이 대서양을 만나는 르 아브르였다. 화가들은 증가기관차를 타고 멀리 이동할 수 있었다. 소로가 월든에서 혐오한 기차였지만 산업화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기계가 매연을 토해내고, 항만이 분주히 깨어나던 산업의 도시. 모네는 그 도시의 소음을 지우고, 그 위에 물빛과 안개, 그리고 감정 하나를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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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는 이 그림에 '항구'나 '해돋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Impression, soleil levant> ‘인상, 해돋이’라고만 남겼다. 그저 떠오르는 태양이 남긴 인상. 그 순간이 마음에 닿은 방식 그대로를 붓으로 옮긴 것이었다.


인상으로, 세상을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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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을 거스른 전시회

1873년, 모네는 결심했다. 더 이상 살롱이라는 낡은 제도 속에서 관객의 박수갈채를 기다리지 않겠다고.

그의 곁엔 뜻을 함께한 동료들이 있었다. 마네, 베르트 모리조, 세잔, 드가, 피사로, 르누아르, 기요맹… 누군가는 고요한 강둑처럼 저항했고, 누군가는 들꽃처럼 조용히 피었다.

그리고 베르트 모리조, 메리 커셋 같은 여성 화가들도 이 전례 없는 항해에 용감히 배를 띄웠다. 그들은 이름을 <무명 예술가 협회>라 붙였다. 마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존재들처럼. 그러나 그 무명의 이름 속에는 세상을 다시 그려내려는 뜨거운 의지와 숨겨진 혁명이 있었다.



2_bi9Ud018svcbpfr1ovnymbw_bxeu2s.png?type=e1920_std 나다르 스튜디오
j_cibUd018svc72p5up76d8jc_bxeu2s.png?type=e1920_std 현재의 나다르 스튜디오 건물


그 전시는 1874년 4월, 카퓌신 대로에 있던 사진가 나다르의 스튜디오 2층에서 조용히 열렸다. 30명의 작가가 165점의 작품을 내걸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모네의 <인상, 해돋이>였다.


3_gicUd018svcnyr4q4hld7kf_bxeu2s.png?type=e1920_std 나다르 건물 벽에 붙은 안내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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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앞에 선 방문객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킬킬 웃었다.

“이게 뭐지? 완성도 없는 붓질에, 흐릿한 윤곽…해가 떴는지, 안개가 낀 건지 알 수가 없잖아!”
르 샤리바리 지의 평론가 르루아는 비웃음 섞인 글을 남겼다.
“이건 단지… 인상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조롱 속에 담긴, “겨우 인상(impression)이지"라는 조롱거리였던 이름이 아이러니하게 새로운 미술사조 "인상주의"로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대신, 그 순간 마음을 건드렸던 빛의 떨림, 공기의 온도, 색의 숨결을 붙잡는 일. 그것이 인상주의였고, 그 시작점에 이 <인상, 해돋이>가 있었다.


나는 그날, 그림 속 저 작은 배가 되어 수면 위를 천천히 떠다녔다. 모네는 해를 그렸지만,
그보다 더 선명한 건 물 위로 번져가는 오렌지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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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잠깐이지만 그 빛은 오래도록 퍼졌다. 그건 감정 같았고, 사랑 같았고, 기억 같았다.

모네는 그 모든 것을 단 네 글자로 남겼다. <인상,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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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기 전에
먼저 눈빛으로 안부를 묻는 것처럼.
그림은 그렇게 내 기억 속 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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