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의 김칫국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을 나섰다. 다리는 다시 따끔거렸지만, 마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인상, 일출>을 눈앞에서 마주했고, 그 감동이 아직도 가슴 안에서 미묘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도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길 건너 라넬라 가든(Jardin du Ranelagh)에는 햇살이 잔디 위에 부드러운 담요처럼 깔려 있었다. 어른들은 책을 읽으며 오후를 느릿하게 넘기고, 아이들은 풀잎 위에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그 소리가 바람에 실려 공원 전체를 감싸 안았다. 작은 부스 앞에서 목을 축이고, 차가운 한 모금이 몸을 타고 내려갔다.
원래 오늘 계획은 훨씬 화려했다. 미술관을 나온 뒤, 볼로뉴 숲을 가로질러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을 들를 예정이었다. 유리와 빛으로 빚어낸 듯한 건물, 마치 바람에 돛을 펼친 배처럼 보이는 건축물이 숲 속에서 반짝일 것을 상상했었다. 그 옆에는 한국정원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어, 먼 타국에서 잠시 고향의 공기를 느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리고 몽소 공원까지 걸어가, 반 고흐와 모네가 즐겨 찾았던 그곳의 나무 그림자를 밟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마지막은 라파예트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화려한 불빛을 배경으로 저녁을 먹기로 했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오후 햇살처럼 금세 사라졌다. 발바닥은 불씨처럼 따끔거렸고, 다리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한 걸음 더 걷는 건 무리였다. 숲은 멀리 초록 물결처럼 보였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이 아득했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 초록빛 그림자가 발끝에 붙어 따라왔다. 라 무에뜨(La Muette, ‘무음’ 혹은 ‘벙어리’) 역은 이름부터 조금 묘하다. 이곳에는 옛날 왕족이 머물던 성이 있었고, 프랑스 최초의 유인 열기구가 날아오른 곳도 바로 이 근처였다. 전쟁 때는 레지스탕스 지도자가 잡혀간 아픈 기억도 품고 있다. 그런 사연을 알고 나니, 이 역은 단순한 출발지가 아니라 오래된 이야기를 품은 문처럼 느껴졌다.
열차 문이 닫히자, 오후의 빛이 창밖으로 미끄러져 갔다.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탄다. 이 역은 원래 샹젤리제 거리 이름을 따서 불렸지만, 전쟁이 끝난 뒤 프랑스의 동맹이었던 미국 대통령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빠리의 지하철은 도시의 혈관처럼 촘촘하게 얽혀 있다. 어디서든 15분만 걸으면 역에 닿고, 철로는 깊지 않아 몇 계단만 내려가면 바로 열차를 만난다. 가장 놀라운 건 공기였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자, 서늘한 바람이 동굴 속의 숨결처럼 몸을 감싸왔고 비 온 뒤 숲 속처럼 맑았다. 지상의 공기보다 오히려 더 깨끗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구불구불 미로 같은 통로 속에서도 이 신선함을 지켜내는 비밀이 궁금했다. 다만, 비싼 요금과 부족한 편의시설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서울의 지하철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편리한 이동수단일 것이다.
루브르궁전(Palais Royal – Musée du Louvre)역에 도착해 지상으로 올라오자, 바람 속에 도시의 오후 냄새가 스며 있었다. 루브르 옆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 내 마음속엔 여전히 모네의 바다가 잔잔히 출렁이고 있었다.
첫날, 나는 2만 9천 보를 넘게 걸었다. 발끝이 땅에 닿는 순간마다 피로가 쌓였다. 결국 탈진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저녁도 건너뛴 채, 겨우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데도 만 보를 훌쩍 넘겼다. 식당 의자에 앉을 힘조차 남지 않은 하루였다.
다행히 낮에 마레 지구에서 사둔 빵이 있었고 한국에서 챙겨 온 ‘비상식량’ 김치국이 기다리고 있었고 뜨거운 국물에 스며든 익숙한 향이 혀끝을 스칠 때 그것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감싸는 위로였다. 작은 용기 속 김칫국이 온몸으로 번져 나가며 조금은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창밖에는 고요한 밤하늘이 흘렀다. 오늘의 긴 여정을 조용히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