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단어, Bonjour(봉주흐)! 그리고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다시 빠리의 거리를 걸으며 또 다른 위로를 발견했다. 몸을 달래주던 김칫국처럼,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두 개의 마법 같은 단어.
"Bonjour! 그리고 Pardon?"
아침에 빵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점원이 환히 웃으며 “Bonjour!” 하고 말했다. 그 짧은 인사가 단순한 인사처럼 들리지 않았다. 바게트를 받아 들고 문을 나설 때, 하루가 새롭게 열리는 듯한 기분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지만, 나도 용기 내어 “Bonjour!”를 건네자 낯선 이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리며 오래된 이웃을 다시 만난 듯 따뜻함이 번졌다.
그 힘은 도시를 벗어난 곳에서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2017년, 알프스 몽블랑 둘레길을 걸을 때였다. 안개가 걷히는 산등성이에서 땀에 젖은 등산객이 숨을 고르며 내게 “Bonjour!”라고 말했다. 나도 숨을 몰아쉬며 같은 말을 건넸다. 짧은 인사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서로가 같은 하늘과 길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작은 의식 같았다. 도시에서의 Bonjour가 잠깐의 온기를 전한다면, 산길에서의 Bonjour는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인사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마법, “Pardon?”
빠리 지하철은 출근길의 복잡한 공기와 섞여 숨이 가빠지는 곳이다. 플랫폼의 차가운 공기, 철로 위에서 울려오는 쇳소리, 옆 사람의 우산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까지, 모든 게 분주하게 얽힌 그곳에서, 누군가가 부드럽게 “Pardon(빠흐동)?” 하고 말하면 공기가 순간 달라진다.
앞사람이 조금씩 옆으로 비켜서고, 길이 스르륵 열린다. 억지로 밀 필요도, 불편한 눈치를 줄 필요도 없다. 단 세 글자 안에 예의와 배려, 그리고 공존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한국에서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릴 때, 입구에 사람들이 가득 서 있으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망설여질 때가 있다. ‘저기요’, ‘잠깐만요’, ‘내릴게요’라고 말할 수 있지만, 어쩐지 따지는 것처럼 들릴까 봐 조심스럽다. 그럴 때 Pardon이 얼마나 부드럽게 길을 열어주는지 알게 된다.
모파상이 그린 ‘빠리의 군중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이루는 거대한 생물처럼 묘사되었다.
도시의 대로와 카페, 다리 위를 가득 채운 군중은 각자 다른 표정과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흐름처럼 움직였다. 그 속에는 사치와 빈곤, 환희와 고독이 뒤섞여 있었고 모파상은 이 대비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가끔은 예기치 않게 예술이 이 흐름 속에 스며든다. 카르디날 르무안(Cardinal Lemoine) 역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채운 로베르 들로네의 추상적 색채가 눈앞을 덮친다. 원과 곡선, 겹쳐진 색들이 빠른 발걸음을 붙잡고 잠시 숨을 고르게 한다. 수십 년 전 들로네가 색과 형태로 담아낸 ‘도시의 리듬’이, 지금도 이 지하 공간에서 살아 숨 쉰다. 그 복도에서 들려오는 “Pardon?” 한마디는, 마치 짧은 시의 첫 줄처럼 사람과 사람을 부드럽게 이어준다.
이 단어들은 단지 거리에서만 울리는 소리가 아니다. 감정 속에서도 같은 울림을 낸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슬픔이여 안녕‘, 프랑스어 제목 <Bonjour Tristesse(안녕, 슬픔)>는 이렇게 시작된다.
“Bonjour tristesse. Bonjour tristesse. Tu es inscrite dans mes yeux comme un nom grave sur du verre, tu es inscrite dans mes yeux comme un nom sur le sable, et j’aime ton visage.”
“안녕, 슬픔. 안녕, 슬픔. 너는 내 눈 속에 새겨진 이름처럼, 유리 위에 새겨진 이름처럼, 모래 위에 적힌 이름처럼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너의 얼굴을 사랑한다.”
사강은 이 문장에서 슬픔을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맞이한다. 피할 수 없으니 인사하고,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 여기서의 Bonjour는 환한 웃음이 아니라, 차분하고 묵직한 수용이다. 슬픔과도 손을 맞잡을 수 있다는, 어쩌면 가장 성숙한 인사다.
도시의 플랫폼에서 들려오는 “Pardon?”이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부드럽게 덜어낸다면, 몽블랑 산길의 “Bonjour!”는 그 거리를 기꺼이 좁혀 주었다. 그리고 <Bonjour Tristesse>의 Bonjour는,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감정까지도 품게 한다.
나는 그날, 몇 해 전 몽블랑 산 위를 걸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주친 이들과 나누었던 따뜻한 인사, Bonjour!를 새삼 떠올렸다. Bonjour와 Pardon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가장 따뜻한 주문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지하철에서 처음 배운, 마법 같은 한마디 Pardon?를 조심스레 따라 해 보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그 인사들이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마치 빠리의 저녁 바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