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빠리 미술관 산책

민들레 같은 웃음

by 에투왈

그리고 나는 다음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드가의 발레리나가 우아한 자태로 서 있었고, 르누와르의 햇살이 흩날리고 있었으며, 세잔의 산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드가, 무대 뒤편과 노동의 얼굴

드가는 인상주의 안에서도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야외풍경보다 실내, 빛과 색채보다 데생을 중시했다. 스스로 인상주의보다는 사실주의에 가깝다고 여겼으며 도시 노동자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14살의 작은 무용수>, 1881



드가가 이 작품을 처음 선보였을 때 빠리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영웅이나 신화 대신 발레 학교에 다니는 가난한 14살 소녀가 조각의 주제가 된 것이다. 리본을 묶은 머리와 튜튜 치마를 입은 작은 무용수는 연약했지만 곧게 든 고개와 단단한 자세 속에 삶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 조각의 형식적 혁신 – 현대 인물상
- 무용수의 자세와 표정 – 예술 뒤편에 가려진 사회적 현실

당시 빠리 발레 학교는 예술의 요람이자 동시에, 사교계 부유층 남성들의 후원과 뒷거래가 얽혀 있는 공간이었다. 드가는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그 뒤편에 숨어 있던 어린 무용수들의 애닮은 삶을 화폭에 옮겼다.


<레투왈(Etoile)> – 무대 위의 별



발레 댄서에게는 등급이 있다. 그중에서도 빠리 오페라 발레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발레리나에게는 ‘에투왈(Etoile, 별)’이라는 칭호가 주어진다. 드가의 파스텔화 <레투왈>은 무대 위의 빛나는 존재를 그렸다. 그러나 그 빛은 자유롭지 않았다. 무대 조명과 남성 권력 속에서만 허락된 빛이었다. 드가는 ‘빛나는 별이 되어야 하는 발레리나’의 찬란함 속에 그들을 구속하는 무대 뒤편의 아픈 현실을 화폭에 담았다.


<다림질하는 여인들(Repasseuses)>, 1884-86



드가는 발레리나와 더불어 세탁부를 자주 그렸다. <다림질하는 여인들>은 노동의 피로가 고스란히 담긴 그림이다. 한 여인은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하고 다른 여인은 무거운 다리미를 힘겹게 누르고 있다. 붓질에는 땀과 노동의 무게가 배어 있다.

에밀 졸라는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 <목로주점>의 여주인공 제르베즈의 직업을 세탁부로 설정했다. 졸라가 그린 서민 아파트의 비좁은 삶, 집세가 오르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시대적 상황은 드가의 그림과 맞닿아 있다.

“드가는 세탁소 노동세계를 관찰했고 회화뿐 아니라 문학, 예술가들의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 오르세 미술관 해설

나는 이 그림 앞에서 에밀 졸라의 문장을 떠올렸다.
“그건 말도 안 돼요, 구제 씨.
그건 아주 나쁜 짓이라고요… 난 결혼한 몸이에요.
잘 아시잖아요? 내겐 아이들도 있고요.”

쿠포와의 삶이 무너져가던 제르베즈에게 대장장이 구제는 마지막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구원이 되지 못했다. 드가의 세탁부가 보여주듯, 그 시절 도시 서민의 삶은 이미 파국을 향해 기울고 있었던 것이었다.




르누와르, 햇빛 속의 사람들


르누와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1876)는 벨 에포크의 빛을 가장 아름답게 담아낸 작품이다. 몽마르트의 작은 무도회장은 노동자, 재봉사, 학생, 연인들이 모여 춤추는 서민들의 낙원이었다.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흩뿌려지고 술잔과 웃음이 뒤섞였다.

처음 공개되었을 때, 일부 평론가는 ‘형체 없는 색채의 덩어리’라 비판했지만 젊은 세대는 그림 속에서 자신들의 삶과 희망을 보았다. 오늘날 이 작품은 인상주의의 걸작이자 “행복이란 결국 빛의 순간”이라는 대답으로 기억된다.

오늘, 나는 드가와 르누와르의 그림 앞에서 같은 울림을 느꼈다. 드가가 세탁부와 발레 소녀의 고단한 일상 속에서 묘사한 숨결, 르누와르가 무도회의 햇살 속에 담아낸 서민들의 웃음. 그것은 모두 짧고 덧없는 순간이었지만, 그 안에는 삶을 버티게 하는 작은 기쁨이 있었다.

문득 카뮈의 에세이 <시지프 신화>가 떠올랐고 그 책과 함께 음미했던 <시시포스>라는 시를 다시 읽었다. 끝없이 바위를 올려야 하는 형벌 속에도, 올려놓는 순간의 성취와 내려가는 길의 풍경이라는 작은 위로가 있듯이 말이다. 형벌이 영원하다면, 기쁨 또한 영원하다는 역설. 그 역설이야말로 드가와 르누와르가 그린 서민들의 표정과 맞닿아 있었다.

이 시 속에 “형벌과 위로의 산기슭에 서서, 민들레처럼 작은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장이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예술은 그 민들레 같은 작은 웃음과 기쁨을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 르누와르의 햇빛 속 웃음을 오래 바라보았다.
행복이란 그런 순간의 반짝임일 거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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