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빠리 미술관 산책

별빛 아래의 빈센트

by 에투왈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사람들의 영혼을 울렸다.

이번 여행길, 단 한 명의 화가만을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날 것이었다. 르누아르의 햇살을 뒤로하고 그의 방으로 들어섰다. 빈센트를 연구하던 수많은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르세 미술관, 그곳에는 주로 아를 시기의 반 고흐 작품이 소장되어 있었다.


눈 덮인 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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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2월, 빈센트는 2년간의 빠리 생활을 정리했다. 그리고 무작정 남프랑스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16시간 만에 닿은 곳은 아를. 론강이 흐르는 남프랑스의 도시는 마치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새하얀 캔버스처럼 눈으로 덮인 채 그를 맞이했다.

빈센트는 그곳에서 자신이 동경하던 일본의 고요하고 이국적인 정취를 발견했다. 론강의 도시, 낯선 남쪽의 햇빛. 눈으로 덮인 풍경은 새하얀 캔버스 같았다. 그는 그 빈 화면 위에 자기의 꿈을 그려 넣으려 했다.


바람이 빚은 소용돌이

아를은 프로방스 지방에 속한다. 알프스 산맥과 코트다쥐르 해안이 있는 곳. 산과 강이 맞닿고 지중해가 펼쳐져, 독특한 기후가 형성된다. 특히 이곳에는 '미스트랄(Mistral)'이라 불리는 강한 북서풍이 분다. 하늘을 휘몰아치는 바람. 빈센트의 그림 속 소용돌이치는 별빛, 하늘로 솟구치는 사이프러스, 달무리의 떨림은 바로 이 바람이 만들어낸 자연의 숨결이었다.

문학의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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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가 아를로 향한 이유는 단순히 햇빛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젊은 시절 알퐁스 도데의 『풍차 방앗간의 편지』를 읽으며 남프랑스를 동경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 도데가 묘사했던 풍차는 여전히 마을 어귀에 서 있었다. 빈센트는 그 풍차와 함께, 자신이 꿈꾸던 예술의 남쪽을 비로소 만난 것이다.

노란 집의 꿈

아를에 도착한 빈센트는 그 해 9월, 허름하지만 넓고 저렴한 집을 임대했다. 1층은 부엌과 작업실, 2층은 침실 두 개. 그는 화가들이 함께 살고, 함께 그리고, 함께 번 돈을 나눌 공동체를 꿈꾸었다. 그래서 이곳에 ‘남프랑스 아틀리에’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림은 홀로 그릴 수 있어도, 예술은 홀로 완성할 수 없다고 그는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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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노란 집>이 태어났다. 햇빛에 번지는 벽, 밝은 노랑의 꿈. 그 색은 벽돌의 색이 아니라, 빈센트가 꿈꾸던 세상의 색이었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Träumerei)>처럼 서정적인 선율이 흐르는 듯, 노란 집은 그의 이상과 열망을 품은 하나의 음악 같았다.

두 개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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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지낼 <침실>을 그리며, 그는 꿈을 색으로 표현했다. 두 개의 의자, 두 개의 베개, 나란히 걸린 옷. 실제로는 흰 벽이었지만, 그는 푸른색과 노랑으로 칠했다. 색으로 감정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빈센트는 테오에게 편지에 썼다. “나는 이 방에서 휴식을 그리려 한다. 단순하고도 편안하게.” 그것은 희망의 그림이었다. 화가 공동체에 대한 간절한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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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강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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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오자 그는 밖으로 나갔다. 론강 위로 별빛이 쏟아졌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은 훗날 생레미에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과 구별하기 위해 '론강의'라는 수식어가 덧붙여 불린다. 나는 이 제목을 들을 때마다 문득 학창 시절의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가 떠오른다. 아마도 그 방송의 타이틀은 빈센트의 그림에서 차용한 것이 아닐까. 그 시절 수많은 청춘들이 라디오를 들으며 위로받았듯, 빈센트의 밤하늘 또한 누군가에게는 영혼의 위로였을 것이다.

물결 위에 늘어선 불빛은 마치 음악의 화음처럼 흔들렸다. 그는 미국 시인 롱펠로의 시를 떠올렸다. “정복되지 않는 의지의 별, 그 별이 내 가슴속에 떠오른다.” 빈센트의 별은 단지 하늘의 불빛이 아니었다. 그는 별빛 속에 인간의 의지를, 꿈의 떨림을 보았다.


별까지 걸어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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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나는 묻는다. 왜 저 별까지 갈 수 없는가? 타라스콩에 가려면 기차를 타듯,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가는 것과 같다.”

빈센트에게 별은 죽음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또 하나의 여행이었다. 그 별빛이 <별이 빛나는 밤>으로 이어졌다. 소용돌이치는 하늘, 검은 사이프러스, 노랑과 푸른빛의 전율. 그는 인상주의의 빛을 넘어, 자신의 내면을 색으로 쏟아냈다.

오르세의 시간 여행

나는 오르세의 이 작은 방에서, 빈센트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의 붓질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장으로 들이마시는 것이었다. 마치 그림이 나를 향해 뛰어드는 듯했다.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말했듯, “그의 그림은 사람을 고양시킨다. 신념과 힘, 창조성이 우리를 향해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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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현듯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영국 드라마 <닥터 후> 속 한 장면. 타임머신을 타고 오르세에 온 빈센트가,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서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한 평론가는 말한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가장 위대한 인간 중 한 사람입니다.” 그 순간 빈센트의 눈가가 젖는다. 그는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지만,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사람들의 영혼을 울렸다.


별빛에 스며들다

나는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별빛처럼 반짝이며 흩어지는 그의 붓질 속에서, 예술이란 결국 사랑을 늦게라도 전해주는 또 하나의 언어임을 알았다. 그는 살아 있을 때 거의 그림을 팔지 못했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작품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감동과 위로를 건네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빈센트는 이미 저 하늘의 별빛 속에 스며들어, 지금도 우리 곁에서 쉼 없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그 순간의 울림은 별빛처럼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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