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빠리 미술관 산책 : 불빛이 꺼진 노란 집

두 태양의 충돌

by 에투왈

빈센트가 아를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빛의 왕국’을 만난 듯했다. 론강의 물결은 유리잔 속의 햇살처럼 반짝였고, 하늘은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순수한 푸름으로 가득했다. 그는 그 빛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홀로 그리지 않고, 함께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집. 그것이 그가 꿈꾸던 공동체였다.



* les-alyscamps, 반 고흐, 1888



* les-alyscamps, 고갱, 1888


빈센트의 꿈은 막 스케치가 그려지듯 윤곽을 드러냈다. 1888년 10월, 고갱이 아를에 도착한 것이다. 빈센트는 그를 ‘형제’라 불렀다. 두 화가는 처음엔 호흡이 잘 맞았다. 낮에는 함께 들판으로 나가 그림을 그리고, 밤이면 카페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예술의 미래를 논했다. 그들의 대화는 빛으로 물든 캔버스처럼 뜨거웠다.


서로 다른 빛의 방향

하지만 예술을 향한 두 사람의 시선은 달랐다. 고갱은 이성과 구성을 중시한 화가였다. 그는 인상주의의 즉흥성을 넘어, 형태와 상징, 정신적 깊이를 회복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색을 절제하고, 구도를 계산하며, 그림을 하나의 사유의 공간으로 다루었다.

반면 빈센트는 감정의 화가였다. 그에게 색은 감정의 언어였고, 붓질은 영혼의 호흡이었다. 그는 눈앞의 풍경보다 그 순간의 ‘심리적 진실’을 그리고자 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즉흥적이고, 격렬하며, 때로는 불안정했다. 둘은 서로를 존중했지만, 그만큼 쉽게 충돌했다. 고갱은 빈센트의 즉흥성을 '통제되지 않은 열정'이라 여겼고, 빈센트는 고갱의 계산된 구성미를 '생명의 온기를 잃은 이성'이라 느꼈다. 하나의 집, 하나의 아틀리에에서 이 두 세계는 끝내 공존하지 못했다.
고갱은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그의 붓질은 불길과 같았다. 그는 불 속에서 빛을 찾고 있었다.”


균열의 밤

* 아를의 미스트랄, 2025년 10월



1888년 12월 23일, 미스트랄이라 불리는 북서풍이 아를의 밤을 흔들었다. 노란 집의 불빛은 요동쳤고, 두 사람의 대화는 날이 서 있었고 심하게 다투었다.
“너는 너무 즉흥적이야.” “그리고 너는 너무 계산적이군.” 그렇게 마지막 말이 오간 뒤, 고갱은 짐을 꾸려 문을 나섰다. 그 말이 떨어지자 빈센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날 밤, 그는 절망과 고독 속에서 면도칼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왼쪽 귀를 잘라, 매춘업소에서 일하던 라셸이라는 여인에게 건넸다. “이건 내 마음이야.” 피로 얼룩진 천 조각은 사랑, 광기, 그리고 인간의 고통이 뒤섞인 상징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아를은 공포에 잠겼다. 사람들은 경찰에 신고했고, 빈센트는 피투성이가 된 채 아를 시립병원(Hôtel-Dieu)으로 실려 갔다. 급히 내려온 테오가 그의 곁에 앉았지만, 형의 창백한 얼굴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갱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평생 만나지 않았다.








이 병원은 16세기에 세워져 오랫동안 아를 주민들의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석조 회랑과 분수, 정원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건축 예술이었다. 1888년, 귀 부상을 입은 빈센트 반 고흐는 바로 이곳에 입원해 몇 주 동안 요양했다. 그는 병상에 누워서도 창문 너머의 정원을 바라보며 스케치북을 폈고, 퇴원 후 그 기억을 바탕으로 <아를 병원 정원>을 그렸다. 푸른 하늘 아래 회랑이 감싸 안은 정원, 중앙의 분수와 꽃들의 원형 구도, 그 그림 속에는 병의 고통보다 더 깊은 평화가 있었다.





이곳은 1974년 의료 기능을 중단한 뒤 복원되어, 지금은 ‘에스파스 반 고흐(Espace Van Gogh)’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화가가 머물던 병실은 전시 공간으로 바뀌었고, 그가 바라보던 정원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분수의 물소리와 꽃의 향기 속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숨결을 느낀다. 이곳은 단순한 기념지가 아니라, 고통과 예술이 만난 자리다. 삶이 예술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공간이다.

그 사건은 빈센트에게 값비싼 깨달음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나는 광인이 아니라 병든 사람이다.” 그렇게 쓴 그는 며칠 뒤, 주치의 펠릭스 레(Félix Rey)에게 말했다. “다시 자화상을 그리고 싶습니다. 내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는 거울 앞에 앉아 천천히 붓을 들었다. 창문 사이로 들어온 아를의 햇살이 붕대를 감싼 얼굴을 비추었다. 붓끝은 고통을 넘어,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의 선율이 되었다.




“내 안엔 나만 볼 수 있는 뭔가가 있다.
그럴 땐 나는 말하곤 한다.
나만 볼 수 있는 걸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빈센트에게 그림은 단순한 치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희망의 전달이었다.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그는 대신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그는 자신의 색으로 그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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