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 미술관 산책 32>

꿈을 향해 타히티로 간 남자

by 에투왈

고갱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세잔의 산이 남기고 간 단단한 침묵 위로 뜨거운 바람 한 줄기가 스며드는 듯했다.


고갱의 삶은 언제나 안정에서 멀었다. 페루의 공기, 빠리의 회색빛 거리, 브르타뉴의 습한 숲, 그리고 남태평양의 뜨거운 바람까지. 그는 어디에도 오래 머물지 못한 채 늘 떠돌았고, 동시에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빠리에서의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타히티로 향한 것도 그런 갈망의 연장선이었다. 그러나 그곳의 현실은 그가 꿈꾸던 낙원과는 달랐다. 식민의 그림자는 짙었고, 가난은 그를 끝없이 압박했다. 그럼에도 그는 말했다. “나는 눈으로 본 세계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낀 세계를 그린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화면 속 여인들은 실재의 누구라기보다, 그가 평생 찾아 헤매던 ‘순수’의 얼굴처럼 보였다.


한쪽 벽에는 노랗게 물든 그리스도와 그의 자화상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처럼, 고통 속의 예언자로 그려 넣었다. 과장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절망에 가장 가까운 고백처럼 느껴졌다. 문명으로부터 도망치듯 떠났던 사내는 결국 그 어떤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한 사람의 몸으로 세계와 싸우고 있었다. 화면 곳곳에서 그 싸움의 흔적이 보였다. 갑자기 솟구치는 어두운 색, 화해하지 못하는 원색의 충돌. 그는 결핍과 욕망, 자유와 죄책감 사이를 쉼 없이 떠도는 사람이었다.


그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내 지난 시절을 떠올렸다. 돌이켜보면, 고갱이 타히티로 떠난 것처럼 나 역시 회사 안에서 이리저리 떠돌았다. 남들이 기피하던 부서에 자처해 옮겨 가기도 했고, 새로운 환경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으며 지냈다. 요즘 화제가 되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짧은 영상을 몇 편 보았다. ‘이건 완전히 내 이야기네. 나랑 똑같아.’ 속으로 그렇게 말하며, 기억 깊은 속에 있었던 나의 지나간 시간들이 잔잔하게 가슴을 울렸다. 견디고 버텨내던 시간들이 서서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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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눈앞에 <아레아레아 Arearea, 기쁨>이 있었다. 두 여성은 유럽에서 보던 우아한 정제미와는 다른, 원시의 대지 위에서 솟아오른 듯한 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어깨를 드러낸 전통 의상, 단단한 팔다리, 꾸밈없는 눈빛. 그들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포즈가 아니라, 자신들의 세계의 리듬을 그대로 지니고 앉아 있었다. 한 여인은 조용히 속삭이고, 다른 여인은 그 속삭임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문명의 피곤함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순한 기쁨이 그들의 표정에 머물러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고갱이 왜 유럽을 떠났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이상화된 미가 아니라, 태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생의 기쁨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오르세의 이 방에서 나는 오래 서 있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떠났지만, 나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붉은 개의 날카로운 몸짓, 두 여인의 깊은 눈빛, 강렬한 원색들이 내 마음속에서 식지 않는 열기를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속삭이던 말이 다시 들려오는 듯했다. “세상은 늘 고개를 숙여 6펜스를 바라보지만, 나는 꿈을 그린다.” 고독한 꿈이었지만, 그 고독이 새로운 길을 열었다.


나는 그 길의 여운을 가만히 안은 채, 오귀스트 로댕이 있는 비롱저택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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