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 미술관 산책 33>

단테의 신곡에서 나를 발견하다.

by 에투왈

고갱의 방을 지나 오뗄 비롱(로댕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서 나는 자연스레 걸음을 늦췄다. 세잔이 남긴 산의 단단함도, 고갱의 타히티 여인들이 뿜어내던 원시의 뜨거움도 서서히 멀어지고, 오래된 대저택의 윤곽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벽에서 스며 나오는 돌의 냄새, 정원 깊은 흙 속에 가라앉아 있던 시간의 향기. 오랜 세월 한 인간의 생애가 퇴적된 장소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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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으로 들어서자, 햇빛 아래 <지옥의 문>이 서 있었다. 문은 검게 번들거렸고, 표면의 수많은 몸들은 마치 부서진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로댕은 단테의 신곡을 읽고 이 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신곡> 지옥편 첫 문장이 떠올랐다.
“인생 반 고비에 문득 삶을 되돌아보니, 어두운 숲 속에서 올바른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한 빛을 발견하고 나아갔으나 표범, 사자, 암늑대가 길을 막았다." 이 짐승들은 욕망과 권력, 사악한 마음을 상징하며 결국 삶의 어느 지점에서 누구나 만나게 되는 그림자다. 인간이라면 자유롭지 못한 것들, 누구나 스스로를 속이며 지나쳐온 것들. 나는 그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나 또한 그런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68 혁명’이 떠올랐다. 세상의 억압과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려 했던 몸부림. 그러나 인간의 삶은 늘 그 안팎에서 흔들리는 존재임을 나는 안다.


비롱 저택 내부는 정원보다 더 낮고 깊었다. 오래된 마룻바닥이 사람의 체온처럼 은근히 따뜻했고, 방마다 로댕이 평생 다듬어온 돌과 석고의 잔해들이 놓여 있었다. 청동의 번들거림, 하얀 석고의 거칠음, 잘린 손과 얼굴들. 그것은 한 인간의 호흡이 굳어져 남은 파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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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나는 <장 드 피엔, 칼레의 시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두 팔을 벌린 채 앞으로 내딛는 그의 몸은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의 몸이었다. 1346년, 칼레시를 살리기 위해 여섯 명의 시민이 목숨을 내어놓았던 이야기. 그 희생의 결단은 영웅담이 아니라, 누군가의 몸이 온전히 짊어진 고통과 두려움의 무게였다. 역사책 속에 갇혀 있던 사건이 갑자기 내 피부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정원을 떠나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지옥의 문>을 돌아보았다. 태양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고, 문은 여전히 오후의 햇살을 받은 채 묵묵히 서 있었다. 나는 그 문 앞에서 잠시 더 머물렀다. 단테의 숲처럼, 그 문은 내 지난 시간을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 로댕의 세계가 남긴 무거운 울림을 가슴 깊이 담은 채 정원을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어둠을 향한 문, 고통을 향한 문, 스스로를 향한 문. 예술은 때때로 그런 문을 우리 앞에 놓는다. 그러나 그 앞에서 멈춰 서는 바로 그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조금은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남은 시간은 조금 더 단단하게, 그리고 조금 더 이타적으로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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