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트빅투아르의 산, 사유의 회화
나는 다음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빈센트의 푸른 회오리와 별빛의 울림이 아직 가슴에 남아 있었지만, 그다음 방은 전혀 다른 공기의 밀도를 품고 있었다. 벽면에는 세잔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엔 그가 평생 탐구했던, <생트빅투아르 산>이 걸려 있었고, 산은 마치 고요한 심장처럼 서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선과 묵직한 색의 층, 그리고 바람조차 조용히 숨을 고르는 듯한 풍경. 모네가 찰나의 인상을 그렸다면, 세잔은 영원의 구조를 그렸다. 빛을 쫓는 대신, 형태를 세웠다.
그 방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인상파들은 일찍부터 자신만의 개성과 자율성을 주장했다. 르누아르와 세잔은, ‘인상주의를 박물관의 예술처럼 견고하고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세잔은 프로방스의 햇살 아래 그것을 실제로 증명했다. 빛의 순간이 아니라 사물의 구조, 인상의 감정이 아니라 형태의 논리. 그에게 그림은 감각이 아니라 사유였다. 그는 말했다.
“회화의 진실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이 되었다.
나무는 원통, 산은 원뿔, 사과는 구체로 단단히 구성되었다. 그의 붓은 자연을 해체하지 않고, 다시 ‘조립’하는 철학자의 손 같았다. 그 길이 피카소와 입체주의로, 그리고 현대미술로 이어졌다. 그래서 미술사는 그를 이렇게 부른다. “모든 것이 그에게서 왔다.” 현대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빛은 사라졌지만,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것은 시간의 파도에도 무너지지 않는 영원의 형태, 생트빅투아르의 산이었다.
그 산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세잔이 그리고자 한 것은 눈앞의 풍경이 아니라, ‘보는 이의 내면에 세워지는 세계’였다는 것을. 그의 회화는 눈이 아니라 마음의 시선으로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빠리의 한 미술관 벽 위에서도,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그리고 사과를 그린 정물화와 승리의 산을 그린 풍경화와 함께 세잔의 기념비적 승리의 또 다른 하나는 인물화다. 오르세에는 인물화도 있었다.
세잔은 산을 바라보듯, 인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인물화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사유의 침묵이었다. 오르세의 벽에는 푸른 옷의 여인,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남자가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교차하지 않았고, 손끝은 멈춰 있었다.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Les Joueurs de cartes>은 세잔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20세기 미술시장 역사를 바꾼 작품이었다.
*오르세(2025년 4월)
* 오르세 소장, 엑상 프로방스 뮤제 그라네 전시(2025년 10월)
그 그림 앞에 서면, 시간은 고요히 멈춘다. 두 남자는 담배를 문 채, 단 한 장의 카드를 바라본다. 술잔도, 말도, 감정도 없다. 그 사이의 침묵이야말로 세잔이 그린 진짜 이야기였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해부하지 않았다. 대신,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형태의 균형’을 그렸다. 테이블은 안정된 사각형, 몸은 원통, 머리는 구체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것은 절제되어 있고, 질서 속에 놓여 있다. 세잔에게 회화란 ‘사물과 인간이 함께 이룬 구조의 조화’였다.
2011년, 바로 이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한 점이 세잔의 이름을 다시 세상에 울렸다. 카타르 왕실이 개인 소장가로부터 이 그림을 구입했다. 그 가격은 2억 5천만 달러, 약 2천8백억 원이었다. 그전까지 최고가였던 잭슨 폴록의 <No.5>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싼 금액이었다.
그의 다른 인물화들도 마찬가지였다. 푸른 옷을 입은 여인 <La femme à la cafetière>는 고요한 긴장 속에 앉아 있다. 커피 포트와 찻잔, 그리고 그녀의 손. 일상의 사물이 인물의 일부처럼 융합되어 있다. 감정의 묘사 대신, 존재의 무게가 있다. 또 다른 그림 <서재의 남자>는 책과 인간이 뒤섞인 하나의 세계처럼 보인다. 세잔의 인물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은 깊고 단단하다.
그 방의 마지막 벽에는 세잔의 자화상이 걸려 있었다. 거칠고 무거운 붓질, 파도처럼 밀려드는 푸른 그림자,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 그 얼굴에는 고독한 사유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세잔은 자신을 화폭 위에 던지며 묻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본다는 것인가.’ 그 눈빛은 관람객을 향해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자기 안의 깊은 세계를 응시하고 있었다.
세잔의 길은 피카소와 현대미술로 이어졌다. 1906년, 그는 폭풍우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빗물에 젖은 캔버스 위에서 마지막까지 산을 그렸고, 결국 폐렴으로 생을 마감했다. 마티스는 그를 “회화의 신”이라 불렀고,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Cézanne est le père de nous tous.” (세잔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다.) 그의 화폭에서 태어난 소리 없는 혁명은 이후 미술의 모든 길을 바꾸었다.
오늘, 그의 작품은 전 세계 미술관에 700점이 넘게 걸려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세잔의 작품은 어쩌면 그 캔버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평생 바라보던 생트빅투아르의 산처럼, 세잔은 지금도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서 변함없이 서 있다. 변하지 않는 산, 사유의 그림, 그리고 영원의 화가. 그는 여전히 그 산 위에서, 붓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세잔을 생각하며, 다음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