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가 남긴 열정의 빛
이번 여행에서 단 한 곳만 갈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빈센트 반 고흐가 머물렀던 장소들을 선택했을 것이다. 빠리에 남아 있는 그의 흔적, 테오와 함께 살던 아파트, 탕기 영감의 화방이 있던 자리, 그리고 마지막 60여 일을 보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 이 세 곳은 그의 숨결이 남아 있는 장소들이고, 나는 그 발자국을 따라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1886년 6월, 빈센트가 빠리에 도착하자 테오는 형을 위해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는 테오의 도움으로 코르몽 화실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에밀 베르나르, 툴루즈 로트렉 같은 평생의 동료들을 만났다. 고갱과 함께 음식점에서 전시회를 열던 시절도 이 무렵이었다. 특히 로트렉은 외로운 이방인이었던 빈센트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폴 시냑과 피터 러셀은 그를 형처럼 따르며 우정을 나눴다. 러셀이 그린 빈센트의 초상은 그가 생전에 가장 아껴 보았던 초상이었다고 한다. 에밀 베르나르는 동생 테오 다음으로 많은 편지를 주고받을 만큼 빈센트와 가까웠으며, 그의 사망에 얽힌 당시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빈센트의 화풍은 이들과의 만남으로 급격히 달라졌다. 북유럽의 어둡고 칙칙한 색조에서 벗어나, 인상파 화가들의 빛으로 빠리의 거리와 센강의 바람, 몽마르뜨 언덕의 풍경이 그의 그림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곰브리치는 이렇게 말했다.
“빈센트 역시 인상주의와 쇠라, 시냐크의 점묘법을 흡수했지만, 그 기법은 그의 손을 거치며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모했다. 그의 붓놀림 하나하나는 자신의 격앙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를에서 보낸 편지에서도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때때로 너무나 강렬한 감정에 휩싸여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마치 말이 거침없이 쏟아지듯이, 붓도 저절로 움직인다.”
그 말은 마치 훗날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하게 되는 ‘자동기술법’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감정이 그대로 화면으로 흘러갔고, 빠리에서 형성된 이 화풍은 남프랑스에서 절정에 이르며 우리가 알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의 독창성을 완성하게 된다.
나는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 깊은 울림을 받았다. 쉽게 포기하고 돌아섰던 나의 지난 시간을 조용히 떠올렸고, 어쩌면 그 열정에 이끌려 이 먼 길까지 오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빈센트가 남긴 열정의 빛이, 지금의 나에게 또 다른 길을 비추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