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 미술관 산책 38>

오랑주리 <수련>을 바라보며

by 에투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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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의 4월 아침은 맑고 상쾌했다. 이른 햇살을 받으며 튈르리 정원을 가로질러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튈르리 정원은 루브르의 피라미드와 카루젤 개선문을 지나 곧장 샹젤리제 거리와 에투왈 개선문으로 이어진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하나의 긴 선 위를 걷는 듯한 길이었다. 봄을 맞은 나무들은 새 잎을 틔우고 있었고, 이름 모를 꽃들이 잔디 위에 수를 놓듯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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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리는 미술관이 아니었다. 프랑수아 1세의 며느리이자 왕비였던 카트린 드 메디치가 고향 이탈리아의 과일나무를 옮겨 오면서, 빠리의 혹독한 겨울로부터 오렌지와 레몬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지은 말그대로 '오렌지 온실'이었다. 튈르리 정원에 심겨 있던 오렌지나무들은 겨울이 되면 이 따뜻한 공간에서 계절을 지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과 빠리 코뮌을 거치며 튈르리 궁전과 오렌지나무는 사라졌고, 오랑주리 역시 한동안 역할을 잃은 채 남아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가 이어졌다. 폐허가 된 유럽에는 ‘평화’라는 단어가 무엇보다 절실했던 시기였다. 클로드 모네는 전쟁의 고통을 넘어서는 상징으로 대형 <수련> 연작을 완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백내장으로 시야가 흐려진 그는 중도에 포기할 뻔했지만, 친구 조르주 클레망소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네뿐이네”라며 끝까지 용기를 북돋웠다. 그리고 이 연작을 오랑주리에 영구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모네가 세상을 떠난 지 몇 달 뒤인 1927년, 오랑주리는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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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는 자신이 사랑한 연못을,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평화의 정원’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는 빛이 들어오는 방향까지 계산하며 이 명상의 방을 설계했다. 그래서 오랑주리의 둥근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모네가 의도한 고요와 빛의 호흡 속에 서게 된다. 그는 생전에 이렇게 바랐다고 한다.
“이 작품은 사람들 안에 평화로운 사색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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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수련> 연작 앞에 섰을 때, 빛은 위에서 내려와 곡면의 벽을 따라 부드럽게 퍼졌다. 그림에는 중심도 시작도 끝도 없었다. 캔버스는 관람자를 마주보기보다, 조용히 둘러싸며 감쌌다. 다른 미술관과는 다른 정적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을 잊은 듯했고, 숨소리마저 안으로 삼키는 것 같았다. 해설자의 목소리마저 속삭임처럼 낮아졌다. 모네는 세상을 바꾸려 했던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들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처럼 보였다. 나 역시 나만의 방식으로 누군가의 상처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졌다. 조용히 곁에 머무는 일, 말을 줄이고 귀를 여는 일. 그런 사소한 태도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랑주리를 나서 다시 튈르리 정원을 걸었다. <수련>의 고요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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