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의 물결 안에서
숙소 근처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했다. 일정은 빡빡했고, 일부러 맛집이나 좋은 식당을 찾을 여유는 없었다. 루브르 피라미드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데만 두 시간은 걸릴 듯 보였다. 검색대를 지나면 지하 2층에 이르고, 그곳에서 다시 한번 줄을 서야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다. 다행히 전날 원데이 투어 가이드가 알려준 방법을 떠올렸다. 피라미드가 아닌 건물 출입구로 들어갔다. 십여 분 만에 지하 2층에 도착했다. 루브르에 들어가는 방식에도 요령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루브르는 원래 궁전이었다.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1793년 일반인에게 개방되었고 최초의 국가 차원의 박물관이 되었다. 소장작품은 61만 점, 전시작품만 35,000점에 이른다. 마음껏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인산인해, 사람들의 물결에 떠밀려 걸어 다녀야 할 정도였다. 딱 6개만 보기로 정하고 전시장 위치를 찾았다. 모나리자, 사모트라케의 니케, 밀로의 비너스, 민중을 이끄는 자유, 나폴레옹 대관식, 메두사호의 뗏목을 향해 달려갔고 지나가는 동선에 있는 작품들은 덤이라 생각했다.
<모나리자>가 있는 국가의 방에 들어갔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잘 보이지도 않는 그림을 위해 모여 있을까? 그리고 손에는 누구나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촬영하려고 할까? 작품 자체의 가치보다 오히려 이 광경 자체가 또 다른 예술작품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모트라케의 니케에서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한 복판에 있다. 배가 삐걱거리고 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순간 하늘에서 내려오는 니케가 보인다." 이 작품은, 승리의 여신 니케가 전투에서 승리한 배에 사뿐히 내려앉는 바로 그 찰나를 포착한 작품이다. 이 조각의 백미는, 배꼽 위에 물에 젖은 옷감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실제로 보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조각이 아니라 대리석으로 빚은 시였다. 기원전 200년 전에 대리석으로 이런 섬세한 표현을 했다는 게 놀라웠다.
작년 봄,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며 나는 깨달았다. 생은 다해도 한 인간이 남긴 삶의 궤적은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아 숨 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기억하는 소통의 시작이다. 이번 미술관 순례부터는, 먼저 삶을 완성한 이들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나는 몽파르나스 묘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