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 미술관 산책 39>

루브르의 물결 안에서

by 에투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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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근처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했다. 일정은 빡빡했고, 일부러 맛집이나 좋은 식당을 찾을 여유는 없었다. 루브르 피라미드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데만 두 시간은 걸릴 듯 보였다. 검색대를 지나면 지하 2층에 이르고, 그곳에서 다시 한번 줄을 서야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다. 다행히 전날 원데이 투어 가이드가 알려준 방법을 떠올렸다. 피라미드가 아닌 건물 출입구로 들어갔다. 십여 분 만에 지하 2층에 도착했다. 루브르에 들어가는 방식에도 요령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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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는 원래 궁전이었다.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1793년 일반인에게 개방되었고 최초의 국가 차원의 박물관이 되었다. 소장작품은 61만 점, 전시작품만 35,000점에 이른다. 마음껏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인산인해, 사람들의 물결에 떠밀려 걸어 다녀야 할 정도였다. 딱 6개만 보기로 정하고 전시장 위치를 찾았다. 모나리자, 사모트라케의 니케, 밀로의 비너스, 민중을 이끄는 자유, 나폴레옹 대관식, 메두사호의 뗏목을 향해 달려갔고 지나가는 동선에 있는 작품들은 덤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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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가 있는 국가의 방에 들어갔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잘 보이지도 않는 그림을 위해 모여 있을까? 그리고 손에는 누구나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촬영하려고 할까? 작품 자체의 가치보다 오히려 이 광경 자체가 또 다른 예술작품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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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트라케의 니케에서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한 복판에 있다. 배가 삐걱거리고 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순간 하늘에서 내려오는 니케가 보인다." 이 작품은, 승리의 여신 니케가 전투에서 승리한 배에 사뿐히 내려앉는 바로 그 찰나를 포착한 작품이다. 이 조각의 백미는, 배꼽 위에 물에 젖은 옷감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실제로 보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조각이 아니라 대리석으로 빚은 시였다. 기원전 200년 전에 대리석으로 이런 섬세한 표현을 했다는 게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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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며 나는 깨달았다. 생은 다해도 한 인간이 남긴 삶의 궤적은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아 숨 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기억하는 소통의 시작이다. 이번 미술관 순례부터는, 먼저 삶을 완성한 이들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나는 몽파르나스 묘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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