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그 단순한 사실을 젊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서 깨닫게 되지만,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많다. 이번 순례에서 먼저 삶을 마친 이들의 묘소를 찾아다니기로 한 이유다. 빠리 남쪽의 몽파르나스 묘지를 찾았다. 참으로 신록이 한창인 그곳의 풍경은 죽은 이들의 공간이라는 사실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보들레르 묘지에 누군가 두고 간 엽서를 보았다. 불과 며칠 전에 쓰인 것이었다. 그것도 한국인이 한글로 썼기에 쉽게 읽어 볼 수 있었다.
2025.03. 29
in Paris
샤를 보들레르,
당신의 시는 시간을 넘어
제 영혼을 울립니다.
‘악의 꽃’에서 피어난
아름다움과 고독을 마음에
품고 갑니다.
사랑합니다.
보들레르는 "현대생활의 화가"라는 책으로 모더니즘 회화의 이론적 배경을 정리했고 마네는 거의 매일 보들레르를 만났다고 한다. 보들레르는 거리의 풍경과 그림자, 죽음과 권태에 대해 시로 말했고 마네는 그것들을 그림으로 옮겼다. 나는 그들이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걸었고 그들의 마지막 안식처에 왔다.
이번 순례에서 꼭 가보려 했던 곳은 에밀 졸라와 알프레드 뒤레퓌스의 묘지였다. 졸라의 책 <목로주점>과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책 <나는 고발한다>를 읽었기 때문에 친밀감이 생겼고, 그들을 향한 애틋한 감정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와 보봐르, 보들레르, 모파상의 묘는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드레퓌스의 묘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몇 차례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나서야, 묘지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적다. 아니 이젠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불현듯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됐다. 그리고 나이 일흔이 되면, 이제 남은 시간이 정말 얼마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한다. 약 십년후면 나도 그런 나이가 된다. 더 젊을 때야 십 년이 긴 시간일 수 있지만 지금의 십 년은 금세 지나간다는 걸 알고 있다. 새해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일 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뭔가 도둑맞은 것처럼 속절없이 당하는 느낌이 든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회사원으로 직장생활을 할 때는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어려웠다.
이제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내가 원하는 삶,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그걸 찾아 한걸음 또 한걸음 묵묵히 걸어가기라. 새해가 시작되는 연초가 되니 이런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