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 미술관 산책 41>

카페 드 플로르의 추억

by 에투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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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에서의 여섯 번째 날이 밝았다. 그날 나는 센강 좌안, 6구의 심장부인 생제르맹 데 프레(Saint-Germain-des-Prés) 지역으로 향했다. 미술관은 아니었지만, 이번 '미술관 산책' 코스에 반드시 포함하고 싶었던 장소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와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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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겨울, 카페 드 플로르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거리를 지나는 이들을 바라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만 해도 참 낯설고도 이국적인 풍경이었는데, 요즘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 장면이 그땐 왜 그리도 멋져 보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사이 우리네 풍경도 참 많이 변했고, 그만큼 우리의 삶도 풍요로워졌음을 새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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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지금처럼 거대해지기 전인 6세기, 빠리의 주교였던 제르맹은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왕에게 서슴지 않고 직언하던 '도시의 양심' 같은 인물이었다. 그가 묻힌 자리에 수도원이 세워졌고, 사람들은 그 주변을 '성 제르맹의 들판'이라 불렀다. 훗날 이곳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실존주의를 논하고, 피카소와 자코메티 같은 거장들이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시대를 고민하던 지성의 산실이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방금 구운 따뜻한 크루아상과 커피 한 잔으로 빠리의 아침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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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제르맹 데 프레의 좁은 골목 안쪽, 보석처럼 숨겨진 푸르스텐베르 광장(Place Fürstenberg)에는 낭만주의 회화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가 생의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머물던 집과 아틀리에가 있었다. 그날의 첫 목적지는 바로 들라크루아 미술관(Musée National Eugène-Delacroix)이었다. 굽이굽이 골목길을 돌아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했건만, 아뿔싸. 당분간 문을 열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미리 확인하지 못한 자책이 밀려왔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비록 내부는 보지 못해도 대가가 머물던 공간의 외관만이라도 눈에 담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여행이 주는 뜻밖의 묘미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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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뤽상부르 미술관(Musée du Luxembourg)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1750년, 프랑스에서 일반 대중에게 최초로 공개된 미술관이라는 기념비적인 역사를 품고 있었다. 루브르보다 무려 43년이나 앞선 시기, 국왕 루이 15세는 뤽상부르 궁전의 일부를 할애해 왕실 소장품 96점을 일반에 공개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딱 이틀, 그마저도 깔끔하게 차려입은 이들에게만 허용된 제한된 공간이었다.


또한 이곳은 '인상주의'가 국가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인상파 화가이자 수집가였던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사망하며 자신의 인상주의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했는데, 그때 그는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바로 "이 작품들을 반드시 뤽상부르 미술관에 전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897년, 보수적인 화가들의 거센 반대와 시위가 있었지만 결국 인상주의 작품들은 이곳 별관에 걸리게 되었다. 혁명과도 같았던 빛의 예술이 비로소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역사적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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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유서 깊은 곳에서 니키 드 생팔의 '나나(Nana) 시리즈'를 처음 만났다. 당시 내게는 왠지 모르게 낯선 '타자'의 모습으로 다가왔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 후 인연은 계속되었다. 일본 하코네 조각의 숲 미술관에서,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소장품 전시에서 나는 그녀와 몇 차례나 더 마주쳤다. 처음의 생경함은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오래된 친구처럼, 나나는 내게 아주 친숙하고 정겨운 여인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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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상부르 미술관을 나와 바로 옆 뤽상부르 공원을 가로질러 팡테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술과 역사가 층층이 쌓인 빠리의 공기는 그날따라 유난히 맑고 투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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