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변신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벌레로 변한 건 아니지만, 몇 년 전 은퇴 이후 나는 변신했다. 평생 한 회사에서만 일을 해 온 나는 퇴사를 했고, 은퇴자가 되었다. 더 이상 일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무렵부터 미술을 바라보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새해를 맞아 하루 한 장 명화 달력을 구입했었다. 매일 아침 한 장의 그림과 짧은 해설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 그림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 올렸다.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다음 해에는 매일 미술 퀴즈를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다. 미술 퀴즈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쉽지 않았다. 읽을 때는 이해했다고 믿었지만, 질문으로 바꾸는 순간 모호했던 지점들이 드러났다. 힘들었지만 꼬박 일 년 동안 이어 갔다.
마네가 졸라와의 우정을 기리기 위해 그린 '에밀 졸라의 초상'
그림 속에는 올랭피아와 벨라스케스의 바쿠스가 보인다.
에밀 졸라는 낙선적에 참가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을 위한 글을 기고했다.
졸라와 학생 때부터 친구였던 세잔도 졸라와 관련된 그림을 그렸다. 당시 졸라는 한 신문에 미술 비평을 연재하고 있었다.
세잔은 아들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가 '이 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세잔의 아버지는 이 신문을 구독하지 않았고 세잔의 바람이었다.
퀴즈를 만드는 동안 화가도, 아티스트도 아닌데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다. 세잔의 친구이자 미술비평가였던 에밀 졸라였다. 궁금함을 참지 못해 그의 대표작 <목로주점>을 읽었다. 그 후로 졸라의 삶을 따라가며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졸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악마의 섬으로 유배된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구명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나는 고발한다'를 신문에 실었다. 졸라는 권력의 부정에 맞서 진실을 외치다 망명길에 올랐고, 끝내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그가 죽은 뒤, 공화국은 그를 국가의 양심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유해는 팡테옹으로 이장되었다. 바로 어제는 드레퓌스를 찾아 몽파르나스 묘지에 갔었고, 오늘은 그를 위해 자신의 삶을 걸었던 에밀 졸라를 만나기 위해 팡테옹을 찾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미술 퀴즈를 만들고 에밀 졸라에 대한 글을 연재하며 그 내용을 지인들 앞에서 발표했던 일이 나의 변신을 알리는 첫 단추였다. 그 발표를 계기로, 오래도록 가장 좋아해 왔던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었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 프랑스 빠리와 프로방스로 떠났고, 그 여정에서 다녔던 미술관들을 엮어 <미술관 산책>이라는 이름의 강의를 시작했다.
에밀 졸라의 묘 옆에서 서서 나는 손을 얻고 위로했다. 에밀 졸라와 드레퓌스는 내가 변신하게 된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