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에서 영원으로
지하철을 타고 트로카데로역에서 내렸다. 하늘은 온통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사이로 불쑥 솟아오른 에펠탑이 희미하게 보였고 아침은 잠에서 채 깨어나기 전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손꼽아 기다렸던 오늘의 일정을 위해 이른 아침 지베르니로 떠났다.
지베르니로 가는 길 위에는 유채꽃이 만발했다. 노란색 꽃잎은 마치 누군가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았고 파릇한 초록의 새순과 어우러져 있었다. 꽃송이들은 한 점 한 점 누군가 캔버스에 그려 놓은 점묘화처럼 보였다.
지베르니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모네가 묻혀 있는 가족묘지로 향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소리 없는 인사를 건넸다. 1890년, 모네는 지베르니 부지를 매입하고 연못과 정원을 조성했다.
40여 년 동안 이곳의 물, 연못, 수련과 버드나무 그리고 하늘과 구름과 그를 둘러싼 자연은 그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걸작은 나의 정원이다."라는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모네의 연못에는 세 개의 공간이 교차한다. 물에 비친 하늘, 유리창 너머를 보듯 바닥을 드러내는 심연, 투명하게 비치는 수면 그리고 그 위를 떠다니는 수련이다.
그 수련이 떠 있는 지베르니의 정원에서 그는 이 연못을 매일 바라보고 이곳에서 <수련 연작>을 그렸다. 일출과 구름, 해 질 녘의 일몰까지 그 순간순간을 캔버스에 옮겨놓았다. 그래서 이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타원형 방을 둘러싼 기념비적인 8점의 수련연작은 그의 집요한 관찰과 열정이 도달한 정점이었다.
내가 간 4월 첫 주는 지베르니가 막 겨울잠에서 깨어나 첫 손님을 맞이한 때였다. 그런데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연못 위에는 아쉽게도 수련을 볼 수 없었다. 지베르니에는 연못만 있는 줄 알았는데 꽃이 핀 정원도 있었다. 그리고 모네가 살던 집이 잘 보존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줄지어 그곳을 미술작품을 감상하듯이 그 집안을 조심스레 보고 있었다. 그의 공간이 이렇게 모두 잘 보존되어 있다니 놀랍고 그의 영감을 잠시나마 받을 수 있어 감동적이었다.
수련이 만개할 여름철을 생각했다. 찬란하게 피어날 수련의 모습과, 빗방울에 파르르 떨리는 수면 위로 구름이 흘러가는 풍경을 마음속으로 그렸다.
그런 상상에 마음은 즐거웠고 가슴속에 사무치는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