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게 그리운 그곳
오랫동안 프랑스어를 가르쳐 온 어느 유명한 선생님에게 사회자가 물었다.
"만약 빠리에 갔는데 여섯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면, 딱 한 군데만 갈 수 있다면 어디를 가야 하나요?
그 선생님은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즉시 이렇게 말했다.
"오베르 쉬리 우아즈요"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가슴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곳, 바로 그곳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생레미 드 프로방스에 있는 '생폴 드 모솔수도원(Monastère Saint-Paul de Mausole)'에서 치료를 받았다. 중세 수도원을 개조한 정신요양원(asylum)이었다. 그는 1889년 5월 8일부터 1890년 5월 17일까지, 약 1년을 그곳에서 버텼다.
그 무렵 그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하느님 맙소사.
1년이 넘도록 참아왔다.
다른 사람의 감시하에, 자유를 희생하고 사는 것,
오직 그림 그리는 일뿐인 채 사회에서 동떨어져 지내는 것은
정말 못 할 짓이다.
지금까지 참아보려고 노력해 왔다.
나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나에게도 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한다.”
— 1890년 5월 4일
테오는 형을 자기가 있던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데려오기로 했다. 카미유 피사로의 소개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주치의였던 폴 가셰박사의 돌봄을 받기로 한 것이다. 반 고흐가 그의 생애의 마지막 70일을 보낸 곳이 바로 이 마을이다.
내가 탄 차는 노르망디 끝자락에 있는 지베르니 연못을 빠져나와 일 드 프랑스(빠리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로 접어들었다. 햇살은 눈부시게 맑고 아름다웠다. 오베르 시청 앞에 도착하자, 맞은편에 그가 머물던 라부 여인숙이 보였다. 그가 살았던 2층의 작은 다락방은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여인숙 옆의 작은 공원에는 빈센트의 동상이 있었고, 한 무리의 한국 여행객을 위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작은 마을에는 식당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그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 빈센트의 동상을 바라보며 바게트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신했다. 빠리에서 먹었던 그 맛은 아직 잊지 못하고 있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렸듯이, 언젠가 내가 그 공원 벤치에 앉아 먹었던 바게트 샌드위치를 다시 먹는다면, 아마도 내 몸의 세포는 그날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것만 같았다.
시청 앞 작은 광장과 라부 여인숙을 지나 빈센트 형제가 나란히 안장되어 있는 마을 공동묘지로 향했다. 길 옆으로 넓은 밀밭이 펼쳐져 있었다. 빈센트는 이곳에서 <까마귀 나는 밀밭>을 그렸다. 그리고 이 밀밭에서 권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여인숙까지 걸어왔다. 약 800미터, 총에 맞은 사람에 걸어오기에는 결코 짧지 않은 거리다. 그가 스스로 방아쇠를 당겼는지, 아니면 동네 불량배가 쏜 총에 맞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의혹은 영화 <러빙 빈센트>에서 자세히 다뤄진다.
나는 그 말없는 밀밭길을 지나 두 형제가 나란히 누워 있는 묘지 앞에 섰다. 절이라도 하고 묘비를 쓰다듬고 싶었지만 마음속으로 조용히 인사와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와의 만남은 스쳐 지나가듯 짧았다. 그토록 내가 보고 싶었던 그곳에 갔지만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많은 대화를 하지도 못한 채, 첫 대면에 인사만 하고 돌아선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시 오기로 했다.
서두르지 않고, 하룻밤을 묵으며,
밤이 깊도록 밀린 이야기를 함께 나눌 날을 기약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