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2)
<에밀 졸라> 연재를 마치며, 지난번에 이은 두 번째 그림들이다.
20c 초 현대미술의 출발점은 마티스의 야수주의와 피카소로 대표되는 Cubism인대 이 두 사조 모두 폴 세잔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세잔을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 1936년 뉴욕의 MOMA(현대 미술관)에서는 'Cubism과 abstract Art 기획 전시'를 열었고
이때 초대 관장인 알프레드 바 주니어는 1890~1935년까지 미술사조 표를 만들었다.
Self Portrait with Bowler Hat(모자를 쓴 자화상)
Paul Cézanne
1883-1887
뉘 칼스버그 글립토테크 미술관, 덴마크
Paul Cézanne
Pommes et oranges(사과와 오렌지)
1899
Musée d'Orsay
Table, Napkin and Fruit
1900
Barnes Foundation, Philadelphia, PA, US
Mont Sainte-Victoire(생트빅투아르산)
1895
Barnes Foundation, Philadelphia, PA, US
세잔과 졸라는 중학교 동창이고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졸라가 먼저 엑상프로방스를 떠나 파리로 갔고 정착한 후 세잔을 불렀다.
Le Déjeuner sur l'herbe(풀밭 위의 점심식사)
Édouard Manet
1862–1863
Musée d'Orsay
세잔은 졸라의 주선으로 인상주의 화가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마네, 모네, 피사로, 르누아르 같은 이들이었다. 당시, 마네의 그림 <풀밭 위의 점심>은 당선전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졸라가 이를 옹호하는 글을 써 주었고 마네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림에서 보아야 할 것은 풀밭 위의 점심 식사가 아니라, 빛의 큰 부분으로 모델링 된 이 단단한 살, 이 유연하고 튼튼한 직물,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경에 녹색 잎 가운데 사랑스러운 흰색 점을 만드는 셔츠를 입은 여성의 맛있는 실루엣입니다. 마침내 이 광활하고 공기가 가득한 앙상블, 이렇게 단순하게 표현된 자연의 한 구석, 예술가가 그 안에 있던 특별하고 희귀한 요소들을 모두 담아낸 이 감탄스러운 페이지 전체 말입니다."
- 1867, 에밀 졸라의 비평 중 발췌
La Pendule noire(검은 괘종시계)
Paul Cézanne
1869-1871
Sammlung Mr. und Mrs. Stavros Niarchos(개인소장)
졸라는 세잔의 고향집에 그의 부모님을 뵈러 갔다. 세잔의 그림을 선물로 가지고 갔다. 졸라의 집안을 그린 그림이었다. 괘종시계에 바늘이 없는 이유는, 그 둘의 영원한 우정을 상징한다.
Paul Cézanne
Le Poêle de l'atelier(작업실의 난로)
1839~1906
National Gallery, London
이 그림의 첫 번째 주인은 세잔의 죽마고우였던 예술가 에밀 졸라였다.
Théodore Géricault(테오토르 제리코)
Le Radeau de la Méduse(메두사호의 뗏목)
1818~19
Louvre, Paris
1880년
세잔은 졸라의 친구 모임에 초대되었다. 한 여성이 루브르 미술관에 있는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을 침실에 걸어 놓고 싶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들은 세잔은 과격한 행동을 자제하지 못했다. 세잔도 제리코의 리얼리즘을 싫어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세잔이 사물의 재현을 탈피하고자 하는 시도는 영화의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아마도 세잔의 이러한 생각이 이런 과격한 행동을 유발한 것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에는 세잔뿐 아니라 많은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등장한다.
L'Atelier du peintre(화가의 아뜰리에)
귀스타브 쿠르베
1855
Musée d'Orsay
Les Déchargeurs de charbon(석탄을 내리는 사람들)
Claude Monet
1875
Musée d'Orsay
졸라의 소설 <작품> 속 주인공 랑티에는 분명 세잔과 닮아 있다. 하지만 다른 화가들의 모습도 짐작케 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세잔을 통해 에밀 졸라를 알게 되었고, 이 글을 연재하게 되었다. 이 질문을 끝으로 <에밀 졸라> 연재를 마치고자 한다.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