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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주는 위로

매일 읽기

by 천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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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에 부산 여행을 떠났다. 2박 3일의 일정이었다. 아이가 장염으로 퇴원하고 일주일 만에 떠나는 여행이라 내심 불안했었다. 2주간 혼자 아이를 보았기에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를 여행을 통해 기분전환하고 싶었다. 최대한 군것질 안 하고 아이에게 좋은 음식만 먹이겠다는 각오로 떠났다. 차를 가져가면 많이 막힐 것 같아서 기차여행을 택했다. (이 선택이 후에 얼마나 큰 폭풍을 몰고 올 것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5월 1일이 되었다. 날씨는 괜찮았는데, 오전 10시부터 천둥이 치고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불사..내 마음은 롯데월드에 있는데 비가 오면서 빠르게 현실 세계를 직시했다. 남편과 나는 한숨을 내셨다.


숙소 예약도 했으니 일단 우산을 들고 가자였다. 택시를 타고 지하철에 도착해서 서울역까지 한 시간이 좀 넘어 도착했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기차도 입석이었지만 운 좋게 자리가 있어서 앉아서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역은 비가 많이 내리고 돌풍이 불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택시를 타려고 했기에 우리는 부산역을 나와 건너편 거리로 가서 택시를 잡고 숙소가 갔다.



숙소는 택시가 알려준 곳이 아니었다. 하필 돌풍이 더 세차게 몰아쳤고 우산은 뒤집어지고 캐리어와 유모차, 우리 겉옷까지 적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6시 30분이 넘어갔다. 배가 무척 고팠다. 고깃집을 예약해 놓았는데, 나갈 수도 없어 돼지국밥과 수육을 시켰다. 부산 대표 음식이니 배달이라도 시켜 먹고 싶었다.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열어 음식을 가져왔는데 인터폰이 말썽을 부렸다. 방범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삐삐~삐삐' 아.. 국밥을 먹을 수 없었다. 남편과 내가 인터폰에 매달려있는 사이 아이가 어린이 국밥을 혼자 다 먹고 수육까지 해치운 것이다. 느끼했을 텐데, 걱정이 앞섰다. 또 배 아프다고 하면 어떡하지.. 숙소가 편하지 않았고 부산 여행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새벽부터 배가 아파서 잠을 못 잤다. 울기 시작했고 새벽 1시에 119에 전화해서 숙소 근처 응급실 연락처를 알아냈다. 택시를 타려고 밖으로 나선 길에 아이는 저녁밥을 다 토했다. 얼른 내 목도리로 아이 얼굴을 닦고 응급실에 도착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날 수도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 장염으로 퇴원해서 며칠 많이 먹지 못했는데, 배가 고파서 아이가 다 먹었던 것이다. 처방약을 받아서 택시를 불러 숙소에 왔다. 새벽 2시 반. 아이에게 약을 먹이고 잠을 재웠다. 배가 편안한지 푹 잠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속이 상해서 아무 말도 안 한 채 남편은 작은방, 나는 아이와 함께 안방에서 잠을 청했다.



이튿날, 부산 롯데월드를 갈 계획이었지만 다 취소했다. 아이 컨디션 때문에 센텀 신세계 백화점으로 갔다. 날씨는 화창했지만 바람이 많이 불러서 택한 선택지였다. 근처에 있는 키즈카페도 가고 그곳에서 하루 일정을 소화했다. 성남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 아침에는 아이가 열이 났다. 부산 기장 숙소 근처 소아과를 가서 약 처방을 받고 바로 부산역으로 갔다. 역에서 2시간가량 카페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부부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부산 여행 가서 매일 블로그를 하려고 노트북도 가져갔지만, 한 번도 켜질 못했다.




존 버닝햄 저 / 보림

우울한 마음에 책을 폈다. <이 나이에 그림책이라니>에서 그림책 <장바구니>에 대한 소개 글이 나왔다. 주인공 스티븐은 엄마의 심부름으로 마트에서 물건을 사오지만 중간에 친구들에게 물건들을 빼앗기고 만다. 결국 몇 개의 물건만 남긴 채 집에 돌아온다. 책은 "인생의 계획이란 때때로 늘어지고 변경되며 방향을 잃기도 하는 것이었다. 집에 가는 길이 늦어지고, 바구니의 물건이 조금 소실되었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한발 내딛는 것, 그게 내가 아는 인생이었다."(p.168) 라고 말한다.


맞다. 기분 전환용 여행이 비록 여러 가지 일로 인해 망쳤어도 새로운 경험을 했고 지혜를 얻었다. 한 편의 글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소설 <노인과 바다>의 명언이 떠오른다. "인강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이제 다시 일상이다. 오늘도 최선을 다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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