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오기 전, 나는 나를 단련했다
2024년, 지난해의 일이다.
나는 사주를 많이 보았다. 수없이 보았다.
어디를 가든 같은 말을 들었다.
대운이 들어오는 시기가 있다고 했다.
2026년부터, 오십 살까지 그야말로 대운이 터진다고 한다.
나는 사주를 믿는다.
하지만 운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운은 문 앞까지 온다.
문을 여는 건 사람이다.
열지 않으면, 운은 돌아간다.
열어도, 잘못 열면 부딪힌다.
운이 나쁠 때는 이상하다.
열심히 해도 안 된다.
힘을 줘도 헛돈다.
그런 시기가 있었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그랬는지도 모른다.
사주를 보는 사람들은 말했다.
주변에 질투하는 사람이 많다고.
끌어내리려는 사람이 늘 가까이에 있었다고.
그래서 친구가 없어도 괜찮다고 했다.
혼자 가는 팔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
사람이 사람 없이 사는 건 아니다.
다만, 사람 때문에 멈추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나는 대운을 찾고 있다.
억지로 찾지는 않는다.
찾으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냥, 몸이 먼저 움직인다.
시선이 가는 쪽이 생긴다.
손이 먼저 가는 일이 있다.
그럴 때가 있다.
생각보다 본능이 빠를 때.
나는 내 본능이 틀린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나를 배신한 적은 없었다.
운은 아마 그렇게 들어올 것이다.
요란하지 않게.
예고 없이.
내가 준비한 만큼만.
동트기 직전
어쨌든 그렇게 대운을 맞이했다.
사람들은 대운을 축복처럼 말한다.
하지만 내게 운은 늘 사건의 얼굴로 왔다.
2022년, 암 수술을 했다.
몸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회복은 오래 걸렸다.
살아남았다는 말은 그때 잘 와닿지 않았다.
그저, 하루가 끝나면 다음 날이 왔다.
그렇게나 사랑하는 방송을 모두 내려놓아야 했다.
다행히 항암치료없이 방사선만 쏘았기에 머리가 빠지는 고통은 없었지만,
영원히 팔 한 쪽을 못쓰며 환자로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다. 무게를 치는 상체 웨이트는 언감생심이라 했다.
그 의사 지금 얼굴 보면 어퍼컷이다. 내 바디프로필을 봐라. 이 사연은 뒤 챕터에서 무게잡고 쓰겠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박사동료 H 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야, 나 암이래.. 암 수술이래.. 당분간 방송도 못 해..”
“언니 잘됐네. 이 참에 박사논문 마쳐봐. ”
덤덤하게 내 암 사실을 받아들이며 다음으로 채찍질을 한 동료 덕분에, 이렇게 엄연히 박사를 달고 여러 활동을 하게 되었다. H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다.
이 역시 박사 이야기도 나중에 무게잡고 쓰려고 함.
2023년, 박사논문을 마쳤다.
문장을 증명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논문은 끝났지만, 확신은 남지 않았다.
공부는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2024년, 학위를 받았다.
박수는 짧았다.
나는 다시 혼자였다.
다음 장면은 여전히 공백이었다.
2025년, 사람을 만났다.
나는 오랜만에 미래를 생각했다.
둘이서 가는 방향을 상상했다.
결혼이라는 단어도, 마음속에서 조용히 꺼내보았다.
그 사람은 이미 누군가가 있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이 나를 무너뜨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른이고, 현실을 감당할 줄 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시간은 나를 깊은 나락에 빠뜨렸다.
왜 믿었을까.
질문은 많았지만 답은 오로지 내 안에 있었다.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폭로가 아니다.
누군가를 단죄하기 위함도 아니다.
다만, 같은 자리에 앉아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2025년을 접었다.
깔끔하게는 아니었다.
접힌 자국이 남았다.
그래도 접었다.
지금은 동트기 직전이다.
가장 어둡다는 시간.
그래서 나는 펜을 들었다.
나는 금의 기운을 타고났다고 한다.
단단하고, 무르지 않다.
2026년은 화의 해라고 한다.
불은 쇠를 태우지 않는다.
단련한다.
이제는 미루지 않기로 했다.
눈치 보지 않기로 했다.
하고 싶은 말은 쓰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운이 다시 온다면,
이번에는 받는다.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연다.
이 글이
어둠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