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z4fBBMGRERU
잉걸불에서 "아듀"를 외치는 대상은 분열된 또다른 "나"이다.
근대사회를 살아가는 나는 필연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근대사회는 신이 사라진 사회이며, "목적"이 실종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최종목적을 모른다.
그런데 종국에 이르러 내 삶의 끝에 서있는 나는 나의 근본적인 목적을 알고 있다.
목적을 모른 채 고난을 겪으며 살아가는 나와, 목적을 알고 그 끝 지점에 다다라 나의 여정을 회고하는 초월적인 자기가 존재한다.
대상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순수하게 잉걸불을 불살르는 나는 고난을 겪는 주체이다.
반면에 "wait for me"의 주체는 모든 여정을 겪고 고난을 겪는 주체에게 너 자신을 믿고(자기확신) 목적에 다다르라고, 현재 상황을 뛰어넘어 자신을 믿고 기다리라고 제안하는 주체이다.
따라서 그 주체는 아름다운 것이며, 목적을 이야기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자기확신을 통해 진리가 도래하는 적절한 시간을 기다리다 보면, 주체는 다시 상승할 수 있다.
잉걸불에서 고난을 겪은 주체는 스스로에게 "아듀"를 외치고 마지막 곡에서 황금의 시간을 맞이한다.
결국 짧은 시간 속에서 한 순간의 진리를 엿보고 그것을 음미하며 안녕을 외치는 것이 죽을 운명으로서 유한자인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최선인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요약한 것이자, 나카모리 아키나의 "불가사의"의 개요이기도 하다.
유한자에게 정신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따라서 정신의 일부분을 맛보고 혼쾌히 안녕을 고하는 순간, 자신의 최선에 이른다.
잉걸불이 소멸되면 잿더미가 남는다. 잿더미 앞에 앉아 스스로를 돌이켜보며 진리에 이르는 것. 이것은 욥기에서 보여진 바 있다.
욥이 야훼께 대답하였다.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십니다.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린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
당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리하여 제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칩니다.
공동번역 성서, 욥기 42장 1-6절
야훼를 정신으로 해석해보자. 자기 안에서 정신을 발견한 주체는 잿더미 앞에서 뉘우친다. 정신의 위력 앞에서, 나를 이끄는 압도적인 숭고함 앞에서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나에게 기다리라고 이야기하는 것, 정신의 운동을 믿으라는 말 외에는 할 수 없다. 역시 진리는 이처럼 광기의 운동이며, 스스로 움직이는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