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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 헤븐, 아직 충분하지 않아

by ou pire

https://youtu.be/tBh03PhRGew

크리스탈 헤븐

https://youtu.be/JKwB1XF00CA

아직 충분하지 않아

1980년대 일본이 얼마나 번영한 시대였는지 지리지리한 이야기는 필요없다. 당대의 세계 기업 중에서 시가총액 1위는 일본의 NTT였다. NTT는 한국으로 치면 KT정도의 그룹이다. 당시에 시가총액 2위였던 미국 IBM보다 4배가 높은 시가총액으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세계 시가총액 50위 중에서 일본의 그룹이 30개가 넘었다. 이렇게 번영한 나라가 순식간에 장기침체에 빠졌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일본의 번영은 때가 잘 맞은 우연에 가깝다. 속된 말로 뽀록이다. 에도 시대 이후로 변화가 없는 나라가 우연하게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가 에도시대화 되면서 우연히 성공한 것이다.(요나하 준, 중국화하는 일본 참조) 이러한 사관은 역사학에 있어서 최신의 연구이지만, 일본 내에서는 반일사관이라고 폄하당한다. 2021년 현재의 일본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부인의 단계에 놓여 있다. 자신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나라가 이 모양이 된 것이다.


에도시대화가 되면, 사회의 계급이 고정된다. 정치인의 아들은 정치를, 회사원의 아들은 회사원, 음식점 아들은 음식점이라는 식으로 직업과 계층이 고정화된다. 그러므로 취업걱정이 없고, 종신고용에 가까워진다. 또한 국가는 복지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기업이 복지를 맡아서 회사원과 그의 부인, 자식을 책임지고 보장하는 시스템이 보편화된다. 또한 한국전쟁의 여파로 대한민국이 공산권과 대결구도에서 최전선에 위치해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본은 전범국이라는 위치를 이용하여 군대에 큰 돈을 쓰지 않았다. 이렇게 아낀 돈을 지역에 재투입하면서 시골에까지 으리으리한 인프라를 제공함으로써 GDP를 상승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다이묘가 지역민들의 생계를 보장해주고 대대로 지역을 지배하던 것에서 유래했다.


황당한 일이지만, 복지국가가 지속되려면 어느 정도 계급이 고착화되어야 한다. 부르주아가 자신의 지배를 인정받는 대신, 막대한 세금을 내고, 국가는 그것을 분배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노동자 계급은 복지의 혜택을 받으면서 부르주아의 지배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인정과 분배의 관계가 정립되면 복지국가 건설의 큰 뼈대가 놓인다. 이처럼 일본 번영의 핵심은 어이없게도 계급고착화에 있었다.


학술적 입증은 되지 않은 것이지만, 일본이 외국인에 대해서 유난히 배타적인 이유도 여기서 기원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은 일본인의 계급구조에 속해있지 않은 그야말로 외부인이다. 계층구조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들어오면 시스템을 교란시킬 측면이 있기 때문에(마치 외래종이 토착종을 몰아내는 것처럼) 기존의 구조가 파괴되는 것을 원치않는 심리에서 외국인을 배척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에도시대의 핵심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나라라는 것이다. 업무처리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일왕에게, 수상에게, 관료에게 돌려막으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문화가 표준화되었다.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한 번 표준으로 굳어진 매뉴얼이 그대로 반복된다. 과거에 만들어진 시스템을 굳이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혁신이 사라진다. 관행에서 벗어난 자는 "비국민"취급을 하여 사회에서 배제한다.


에도 시대 이후 이렇게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이 혁명에 성공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메이지유신이다. 외세를 몰아내고 일본을 재건축하자는 원대한 이상을 품고 집권했지만, 정작 시간이 흐르자 그들도 에도막부와 똑같아졌다. 외세를 몰아내자면서 집권했지만 외국과 불평등조약을 맺고 "문명개화"를 주장하면서 태도를 바꿔 버린다. 에도시대와 똑같은 원형에 서구문명의 틀을 이식한 체제를 만들어버렸다.


매뉴얼과 관행의 나라, 무엇이든지 표준화하여 규격에 벗어나는 행위를 하면 비국민 취급하는 나라. 이것이 아름다운 나라 일본의 실상이다. 이렇게 답답한 사회인 탓에, 또한 끝없이 관행을 반복하고 혁신이 없는 탓에 일본은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라는 이야기도 듣는다.(중국화하는 일본)


이러한 시스템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카모리 아키나의 해답은 줄곧 반복된다. 지겨운 말 같은걸로 대충 때우려하지 말고 행위로 보여주라는 것이다. "크리스탈 헤븐"에서 꿈, 다른 세계, 영원의 파라다이스로 표현되는 것들은 지금과 다른 세계, 영원한 이상향에 대해 다시 상상해보라는 뜻이다.


"아직 충분하지 않아"가 크리스탈 헤븐의 뒷 곡으로 편성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영원한 이상향에 대해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불만족이 없다면, 행위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노래는 대중가요인 탓에 그것이 사랑에 대한 불만족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정열을 시험하는 여행이라는 가사는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정열은 영어로 Passion이다. 격노, 욕정, 열정과 같은 뜻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예수의 "수난"이라는 뜻도 포함한다. 신성한 이야기를 제거하고, 인간 예수의 삶만을 생각해보자.
평범한 목수였던 인간 예수가 신의 부름을 듣고 대형교회에 찾아가 신의 뜻을 따르고 있냐며 따지고 다닌다. 또한 가난한 자들, 몸이 불편한 자들을 찾아가서 도움을 주고,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신이 하신 일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신의 나라라는 이상향까지 제시한다. 그러므로 제국 로마의 입장에서 인간 예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인물임과 동시에 제국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역자였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위험한 행위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정열이 없으면 그 일은 불가능하다. 온갖 수난의 과정에도 자신의 정열을 포기하지 않은 예수는 베드로와 바울에 의해서 신의 위치에 오른다.


따라서 헤겔은 이러한 그리스도 수난의 역사를 모티브로 삼아 세계사를 이끌어가는 역사적 주체는 정열을 통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룬다고 정의한다.(역사철학강의 서문)

헤겔 체계의 가장 중요한 술어 중 하나로 "부정Negative"이 있다. 현존 체제에 불만족이라는 정서를 느낀 주체는 현재의 질서를 "부정"하는 운동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기에 이른다. 현존의 질서 - 부정 - 새로운 것으로의 생성이라는 과정이 헤겔이 말하는 삼중성(삼위일체에서 기원했다고도 본다)의 생성, 운동이다. 이러한 삼중성의 운동이 존재의 모든 질서에 재현된다는 것이 헤겔 철학의 기본적 생각이다. 정-반-합으로 설명되는 변증법은 이 과정을 지나치게 추상화하여 마치 고등학교 자습서처럼 만들어놓은 것이다. 원래 헤겔이 의도한 학문 체계의 진보는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생물학적인 모형에 기초한 것이므로 정-반-합이라는 추상적 도식으로는 그 과정을 온전하게 담아낼 수 없다.


이렇게 존재의 생성과정을 이끌어가는 주요 개념이 "정열"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정열이 없으면 주체는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는다.


나카모리 아키나 노래에 주로 등장하는 "정열"이란 이런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정열이 없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계속해서 그 단어를 주입한다. 대중가요는 사회의 무의식을 표현하기 때문에, 억압되어 있는 정열이라는 단어를 노래를 통해 의식화시킴으로써 무언가를 바꾸어보려는 시도가 들어가있다. 탁월한 예술가는 공부하지 않아도 느낌만으로 이 사회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과제를 반복수행하면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현재의 일본을 보면, 그 메시지는 확실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적어도 일본의 학계나, 예술계는 끊임없이 사회혁신의 메시지를 주장하고 있다. 다음 글이 될 예정이지만, 에반게리온의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 또한 마찬가지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에도시대 이후로 변화를 거부해버린 일본이라는 거대한 리바이어던은 폭주를 멈출 생각이 없다는 데에 있다.



보충 : 일본이 에도시대 이후로 변화를 거부한 나라라면, 북쪽의 그 나라 또한 한국전쟁 이후로 변화를 거부한 나라이다. 두 나라는 이상한 지점에서 서로 닮아있다.

요나하 준 "중국화하는 일본", '에도시대는 주체사상의 꿈을 보았는가', 110~111 / '북한화하는 일본?' 265~26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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