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전설
헤겔철학을 공부해서 얻은 것이 있다면, 어찌보면 황당한 것이긴 한데, 다음과 같은 것이다.
모든 인간은 신의 현실화이다. 따라서 신적인 것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신의 다른 모습이다.
나는 비전문가이고, 철학을 전공했던 아마추어에 불과하기 때문에 멋진 말로 표현할 재능이 없지만, 권대중 선생님께서는 헤겔의 이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시공간 속에서 현실화된 신적 주체성
'성자'로서의 인간'을 헤겔은 보편적 차원의 인간 전체에 대해 사용하며, 따라서 현세에서 실현된 신성이 기독교에서는 오로지 '말씀의 육화'로서의 예수 한 사람에 대해서만 인정되는 반면, 그(헤겔)는 인간 자체를(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인간 일반을) 신성의 현실태로 보기 때문이다.
[...]
누구이건 인간이라면 자유로운 정신적 주체로서 자신의 순수한 이성적 사유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즉 반성을 행함으로써 타자에 의존하지 않는 자기 연관을 수행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자기연관이 참되게 수행될 때 바로 신과 인간의 '신비로운 일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인생교과서 헤겔, 최신한, 권대중 지음. 21세기북스에서 인용
분명 헤겔은 좀 황당한 철학자이다. 1770~1831의 연대를 살아낸 학자답지 않다. 그의 철학은 고대인의 사유방식을 가지고 있다. 먼저 정신이 있고, 그 다음에 인간이 살아가면서 정신을 깨닫고, 최종적으로 정신이 현실화되는 세계관. 시간의 무한한 흐름 속에서 정신의 역사가 현존할 것이라는 세계관은 근대혁명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의 사고관으로는 대단히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내가 헤겔철학을 공부한 점도 그런 정신이라는 테마 때문이었다. 아마 살아가면서 이런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듯 하다. 나는 선천적으로 돈계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경제적인 것에 대해서 관심은 있지만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예술이나 공부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자격증 취득에 있어서는 재능이 없다. 게다가 전자책을 읽기는 하지만 종이책이 진짜 책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중요한 책은 종이책으로 소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여러가지 점을 봤을때 나 또한 지금 시대와 딱히 어울리지 않는 면이 많다.
나카모리 아키나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핸드폰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핸드폰을 쓰지 않기 때문에 당연 SNS도 하지 않을테고, 가장 최근의 앨범 "아키나"를 보면 이 사람은 아직도 1980년대에 머물러있는건가?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변하는 시대에 대한 두려움이나 우울을 이미 1980년대부터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처럼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것. 또는 사회와 내가 외따로 떨어져있다는 감각은 어떤 점에서는 단점이 될 수 있다. 일단 사람들과 소통이 어려워지고, 더 나아가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면서, 자기만의 것을 온전히 향유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남들에게 이게 재밌다고 알려주는 일도 꽤나 좋은 일이다. 물론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작품만을 리뷰하거나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노래 "처녀전설" 역시 시대착오적인 노래. 당대에도 딱히 주목받지는 못했으리라 본다. 운명처럼 만난 남자와의 사랑. 그런 사랑의 순간들을 고대 그리스 시절의 미의 여신(아프로디테, 비너스)이 과거를 잃고 인간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로디테는 주위의 신이나 인간들로부터 찬미를 받지만, 이 노래에서 인간으로 변해버린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순간을 반복할 때마다 스스로를 찬미한다. 사랑을 하는 순간, 모두가 신적인 존재에 올라선다는 생각을 가진 노래이다.
어쩌면 이 노래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른 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헤겔이 말한 것을 다시 생각해보자. 인간이 신적인 존재의 현실태라면 그런 인간의 모든 행위 자체가 이미 진리이며, 선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인간의 행위 그 자체가 신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신적인 것이 내 몸을 빌어 자기의 뜻을 실현하고야 말 것이다. 그럼 도대체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하찮고 보잘것 없는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나카모리 아키나의 해답은 그래도 사랑을 하는 순간, 내 욕망을 불태우는 순간만큼은 신이 아니라 내가 더 소중해지는 순간이지 않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찬미받을만한 존재라는 것. 이런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이런 미약한 해석도 시대착오적인 생각일지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