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펭귄드럼 작품리뷰
세일러문과 돌아가는 펭귄드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
먼저 돌아가는 펭귄드럼(2011)의 감독인 이쿠하라 쿠니히코에 대해 다시 말하면, 이 사람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감독을 맡았던 세일러문S(1994)에서 세일러 우라누스와 세일러 넵튠은 세일러 문과 대립한다.
우라누스와 넵튠은 평화를 위해서라면 약간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주장한다.
반면
세일러 문인 츠키노 우사기는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라면 모두를 감싸 안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이쿠하라 쿠니히코는 세일러 문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모두를 감싸안는 포용과 화해의 정신으로 작품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세일러 우라노스와 세일러 냅튠의 주장을 아예 배척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대립하는 주장 또한 포용하고 화해할 수 있는 세일러문의 무한한 정신이 이 작품의 테마이다.
당대의 일본사회에서 포용과 화해라는 테마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세일러문S가 나왔던 1994년은 거품경제가 무너지면서 일본이 붕괴하기 시작했던 때이다. 사람들 사이에 분노와 증오가 가득했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이 즈음부터 과거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다. 내부의 불만을 외부의 적을 만들어 돌리려고 하는, 전형적인 수법이 이때부터 다시 시작된 것이다. 이 시기의 일본은 자체적으로 분노와 증오를 재생산하는 체제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쿠하라 쿠니히코는 이 작품을 보는 아이들만이라도 포용과 화해의 가치를 알았으면 했던 것이다. 사실 그 정신은 이 사람의 작품에서 계속 반복된다.
그 내용을 표현하는 형식이 아방가르드(전위예술)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사실 깊이 탐구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작품이 아니다. 미스터리한 단어 몇 개를 통해서 포용과 화해의 정신을 전수하는 진리의 전달방식 자체가 이미 예술, 종교, 철학에서 오랫동안 수행되어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1.
인간은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동시에 “버림받았다는” 감정을 어렸을 때 겪고 나면 그것으로부터 헤어나오질 못한다. 그런 느낌을 가졌던 사람은 누구라도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돌아가는 펭귄드럼은 버림받은 아이들, 소외받은 아이들의 이야기다. 사회로부터 버림받아서 소외된 아이들은 언젠가 어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모든 등장인물은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던 인물들이다.
이 작품의 특이성은 현대사회의 잔인한 익명성을 애니메이션의 표현요소를 통해 확실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위의 화면에서 볼 수 있듯이, 주인공과 등장인물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이처럼 익명의 타자로 표현된다. 소외받아 내면의 상처를 입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철저히 관심이 없다. 사회는 철저히 익명의 타자이다. 이러한 사회의 모습으로부터 소외받은 사람들의 상처는 더욱더 깊어진다.
동아시아는 빠른 근대화를 이루기위해 사회가 필요로 하지않는 사람들은 철저히 배격하였다. 원래 자유주의는 배제를 은폐하고 성립된 체제1)이기 때문에, 그러한 소외는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동아시아 체제는 그 정도가 심했다. 체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같은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가혹하게 내버렸다. 인간이 인간에게 쓸모없다는 낙인을 찍고 버리는 체제가 도래하면서 현세는 지옥도가 되었다.
필요한 자와 필요없는 자를 칼같이 구분하고, 필요없는 자를 배척하는 시스템은 전쟁에서 비롯된다. 동아시아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이 해소되지 않은 곳이다. 대만과 중국, 한국과 북한이 서로 대립하고 있으며, 러시아, 일본, 미국의 제7함대가 끼어있어 아직도 열전인 곳이다. 그런만큼, 국가는 빠른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을 배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의미와 가치가 추구될리 없다.
나라에서 추구하는 삶의 궤적에서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바로 주변의 눈치가 몰려오고, 그는 낙오자가 된다. 이런 괴이한 상호감시의 체제가 구축되면서 동아시아에서 소수의 의견은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소수의 사람들은 버림받아 쓸쓸히 잊혀져갔다. 동아시아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혁명이 성공한 적이 없는 지역이거니와, 이러한 역사적 실패의 반복은 적대와 배제의 시스템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러한 국가의 배제시스템은 개인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부모가 자식을 배척하는 시대가 온다. 부모는 여러 명의 자식 중에서 이쁜 놈 하나만 골라서 예뻐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하는 방식대로, 부모가 자식에게 그대로 되풀이한다.
버림받았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의 슬픔을 살펴보자.
수정씨는 태어나 몇 개월이 지나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밑으로 남동생이 태어났고, 그 밑으로 또 동생이 생기면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1년이 지나서야 부모님께 돌아올 수 있었다. [...] 수정씨는 줄곧 다른 친구들처럼 부모님을 스스럼없이 대하고, 부모님을 가장 친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부모님은 한번도 수정씨에게 진정한 부모였던 적이 없는 듯했다. 그녀는 뭐든지 스스로 해야 했고, 그래야 부모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말썽을 피우거나 성가신 존재가 되면 다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할머니와 살았던 시간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동생들이 부모님과 살 때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버림받았다는 느낌으로 남아 있었다.
[...]
언젠가부터 수정씨는 타인의 눈에 엇나가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자신의 못난 모습의 원인이 엄마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있지 않을까 싶어 엄마가 미워졌다. 하지만 엄마를 완전히 미워할 수도 없었다. 엄마에게서 한 번도 제대로 사랑받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느끼게 되면 엄마를 미워하지 못할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승욱, 김은산, 애완의 시대, 문학동네, '유리멘탈'의 그녀들 부분에서 인용
2.
돌아가는 펭귄드럼에 등장하는 유리와 케이주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인물들이다. 유리는 천재 예술가 아버지를 두었다. 그런데 이 천재 아버지는 자신과 이혼한 부인을 닮았다는 이유로 딸 유리를 추하다고 이야기하고 학대한다.
또한 케이주는 피아니스트를 지망했으나, 그의 어머니는 동생이 더 재능이 있다고하여 편애하고, 케이주를 학대한다. 이들은 모두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유년기에 사회로부터 탈락할 위기에 처한다.
유리는 아버지로부터 학대받아 죽을 운명이었고, 케이주는 사회에서 쓸모없는 아이들을 보내는 장소인 “어린이 브로일러”에 끌려가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런데 이 비극적인 운명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해내는 인물이 등장한다.
모모카는 자신의 육체를 희생하면서 버림받은 아이들의 운명을 바꾸어놓는다. 운명을 역행했기 때문에 모모카는 온 몸이 불타고, 손목이 지져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모모카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희생한다. 유리와 케이주는 이렇게 자신들을 운명의 고리로부터 구해준 모모카와 친구가 된다. 절망에 빠졌던 유리와 케이주를 다시 살아가게끔 만들었던 존재가 모모카였던 것이다. 모모카는 유리와 케이주에게 버림받지 않아도 되며, 지금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기만 해도 된다는 확실한 생존전략을 부여해준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세 남매는 모두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피가 섞이지 않은 남남이다. 그런데 쇼마의 아버지, 어머니가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칸바, 히마리를 데려오고 셋은 가족이 된다.
그런데 이 세 남매의 부모가 속해있는 조직이 KIGA회이다. 이 조직은 확실히 옴진리교와 폭력운동을 섞어놓은 듯한 기괴한 조직이다. 이들은 어린이 브로일러와 같은 끔찍한 시설을 운용하는 일본사회를 파괴하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세 남매에게는 그런 조직의 실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님을 얻었고, 그 부모 밑에서 행복하였다. 부모가 사라지는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기가회에 소속된 그들의 부모는 어린이 브로일러를 파괴하려다가 당국의 수사를 받고, 죽음에 이른 것으로 묘사된다. 그들의 부모는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되었고, 아이들은 사회로부터 냉대와 차별을 받고 소외되어 버린다. 그들은 다시금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낀다.
이 작품은 맨 처음 히마리가 죽으면서 시작한다. 가장 막내인 소녀 히마리는 불치병을 앓고 있어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고 병원에서 퇴원한다. 그래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히마리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자 수족관 여행이 시작된다. 그곳에서 히마리는 오빠들과 펭귄모자를 구입하다가 사라지고, 쓰러져 사망한다.
그런데 수족관에서 오빠들이 사준 펭귄모자를 쓰자 장례식장에 누워있던 히마리가 되살아난다. “생존전략!”이라고 외치면서.
1화에 등장하는 생존전략 파트는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자세히 분석한다. 먼저 되살아난 히마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에 가족이 다시 뭉쳐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런데 그들에게 각자 자신의 캐릭터를 상징하는 펭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펭귄모자를 쓴 히마리는 다시 “생존전략!”을 외치며 크리스탈의 여왕에 빙의되어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한다. 히마리가 빙의되어 말하는 대사들을 보도록 하자.
생존전략!
이매진!
분명 아무 것도 될 수 없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핑드럼을 손에 넣어라
나는 너희 운명의 종착점에서 왔다
생존전략을 시작해보자
히마리가 크리스탈의 공주로 변신하면서 등장하는 노래가 "Rockover Japan"인데, 이 노래의 가사를 들어보면 록정신(록스피릿)으로 가득차서 여러 마을과 사람들을 전전하며 노래해왔고, 그들에게 충격을 주어왔다. 길고 긴 겨울이 지나가면 여전히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이 곡은 생존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기본조건으로서, 인간의 정열을 상징한다.
그리고 위의 대사가 등장한다. 히마리가 빙의한 크리스탈의 공주는 역사의 급격한 진보를 정지시키고, 파국을 막는 존재다. 그래서 역사의 종착점으로부터 히마리라는 개인에게 빙의하여(이것은 당연히 신적인 존재가 인간의 몸을 빌어 육화되는 것이다) 인간들을 구해내려고 하는 것이다.
3.
이 작품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자 세 남매와 얽히게 되는 링고(일본어로 사과라는 뜻)는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소녀이다. 링고의 부모는 오래전에 이혼했는데, 갑작스럽게 죽은 언니를 두고 부부관계가 극에 이르러 이혼하게 되었다. 링고는 지금은 고인이 된 언니의 역할을 자신이 대신 해내면, 아빠와 엄마가 재결합하고 가족이 다시 화목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을 버리고 언니가 되기로 결심한다. 따라서 언니의 남친이라고 여겨진 케이주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며, 그의 아이를 임신하려고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히마리와 친구가 되고, 세 남매와 같이 핑드럼을 찾아내기위해 애쓰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링고의 죽은 언니는 바로 유리와 케이주를 구해주었던 모모카이다. 또한 뒤에 밝혀지지만, 모모카는 1995년에 일어난 사네토시의 악행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고 소멸한 인물이다. 모모카는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며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능력을 통해서 소외받은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한다. 따라서 눈치챘겠지만, 모모카가 히마리에게 빙의된 크리스탈의 공주이다.
따라서 모모카의 생존전략은 인류를 구하는 것이다. 소외받은 사람들 전부를 품어내는 포용과 화해를 통해서 인류를 구하려는 인물이다. 히마리의 오빠들에게 생존전략을 실행하라고 촉구하는 것은, 히마리를 구하고 동시에 세계를 구하라는 것의 촉구이다. 파국으로부터 세계를 구하는 것을 생존전략으로 삼는다.
반면에 모모카와 대립하는 사네토시 또한 1995년에 이어서 다시 한 번 생존전략을 실행하려고 한다. 이 생존전략은 모모카의 것과 정반대이다. 그는 타락한 인간사회를 심판하려고 한다.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어린이들을 가차없이 배제하고 소멸시키는 인간 사회를 파괴하려고 한다. 소외받은 사람들의 분노를 담아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생존전략은 인류를 공허로 돌리는 것, 세상을 카오스에 빠뜨리는 것이다.
두 생존전략의 대립을 통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이 대립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물론 두 인물이 선악과로 상징되는 사과 위에 앉아있는 장면이 오프닝부터 등장하긴 하지만, 이들은 선과 악을 오가는 존재들이다. 어떻게보면 이들 또한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존재들이기도 하다.
사네토시는 괜찮은 사람이다. 느끼한 점만 빼면. 그는 의사2)이며, 히마리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하고, 내면의 아픔에 대해서 심리상담도 해준다. 사네토시는 기가회의 핵심인물인 것처럼 보이는데, 세 남매의 부모 또한 여기에 소속되어 있다. 그들은 분노한다. 어린이 브로일러와 같은 것을 만들어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시스템에 분노하여 그것을 파괴하려고 한다. 따라서 세 남매의 부모 또한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애니메이션을 잘못 보면 옴진리교를 옹호하는 것으로 느껴질수도 있다. 기가회는 분명 실제 역사의 옴진리교가 모티브인데, 거기에 소속된 사람들이 꽤나 정의롭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선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순수함에 대한 강박은 필연적으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쿠하라 쿠니히코는 옴진리교의 테러범들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들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와 벌이라는 테마가 반복되어 표현된다. 부모의 행위를 인식하고 있는 히마리의 오빠들은 죄의식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이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쿠하라 쿠니히코가 밝히고 싶은 것은, 그들이 왜 그런 테러를 하게 되었는지, 어째서 그런 행위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관련된 내면의 문제이다. 정말로 말도 안되는 행위이지만, 왜 고등교육도 받고 정의를 생각하던 순수해보이는 사람들이 그런 행위에 이르렀을까? 사네토시의 복장색깔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들은 순수함을 추구했기 때문에 오히려 폭력적 행위로 나아갔다.
4.
그들은 자신들에게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내쳐버린 이 사회를 저주하였다. 그들은 의미를 알지 못했고, 의미를 알려주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으며, 의미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조차 알지 못했다. 따라서 자신의 존재의의를 찾고자 끊임없이 돌아다니다가, 옴진리교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끌려들어갔다. 따라서 옴진리교가 주장하는 생존전략에 자신의 목숨을 바쳐버리고 말았다. 인간의 존재의의를 규정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 비극이 도처에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가회와 사네토시에 대립하는 모모카, 크리스탈의 공주는 새로운 생존전략을 들고 나온다.
너희들은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대로 남아있어라.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몸이 불살라지고, 온 몸에 상처를 입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더라도 너희들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너희들의 생존을 위해서 희생하겠다는 것이다.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것 자체를 생존전략으로 제시한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너희들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런 무한희생의 주체는 아주 예전에 철학에서 말해진 바 있는 것이다. 개별자들의 자유라는 목적을 위하여 세계의 모든 것들의 화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사상인데, 그것이 헤겔의 역사철학이다.
우리의 역사고찰은 이 점에서는 신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변신론이다. 그것은 라이프니츠가 그의 독특한 솜씨로 애매하고 추상적인 범주를 사용하여 형이상학적으로 기도한 변신론으로, 죄악마저도 포함하는 세계 안의 해악 일반을 개념적으로 이해하여 사유적 정신과 악이 유화되는 일종의 신의 변명이다. 실제로 세계사만큼 이와 같은 유화적 인식이 치열하게 요구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이 "화해"는 앞에서 말한 악이라는 부정적인 것이 지니고 있는 힘을 잃게 하여 지배하고 극복하는 긍정적인 인식에 의해서만 달성된다. 바꿔 말하면 한편으로는 무엇이 진정 세계의 궁극목적인가 하는 의식, 다른 한편으로는 그 궁극목적이 세계 안에 실현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며, 죄악은 결국에는 그 존립기반을 잃는다는 것을 의식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
헤겔 역사철학 강의, 서문(역사 속에서의 이성), 동서문화사 (""는 인용자의 강조)
따라서 모모카의 메시지를 깨달은 히마리의 오빠들은 히마리와 링고를 살리고 자기희생한다. 이렇게 사네토시의 계획은 실패하고 세계는 평화를 되찾는다.
마지막 순간, 다시 사네토시와 재회한 모모카는 세계를 파괴하려고 했던 그를 소멸시키지 않는다. 이 죄악의 역사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사네토시는 열차는 다시 올거라고 모모카를 향해 경고한다. 하지만 모모카는 그래? 하지만 나는 이제 가겠다고 말하며 조용히 떠나간다.
악을 제거함으로써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악은 선을 통해 그 힘을 잃고 선이 자신의 생존전략을 실현하는 순간 세계의 궁극목적인 정의와 자유가 실현된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운명이 바뀌고 세계는 포용과 화해로 나아간다.
운명을 바꿔놓는다는 것, 정해진 것으로부터 자유라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은 철학에서는 화해이며, 이 작품 또한 포용과 화해로 규정된다. 모두 그 방법은 숭고한 희생을 통한 것이다. 헤겔철학에서는 사변적인 그리스도 수난의 날3)이라는 희생의 모티브가, 돌아가는 펭귄드럼에서는 주인공들의 여동생과 연인을 향한 희생이라는 모티브로 각각 포용과 화해가 실현된다. (둘 다 연인을 위한 자기희생이라는 정황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여기서 세세히 논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이를 위한 자기희생을 통한 포용과 화해의 성취라는 점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모카가 역행하여 히마리에게 빙의하고, 동시에 세일러문의 자세를 취하며 등장하는 이유 등이 설명된다. 세일러문에서 표현하려고 했던 포용과 화해의 정신을 다시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모모카, 크리스탈의 공주는 "운명의 종착점"으로부터 등장한다. 이 작품은 플래쉬백, 회상이 매회마다 등장한다. 헤겔 역사철학의 독창성은 저자가 인류 역사의 목적, 종말지점을 관념적으로 미리 겪어보고나서, 회상하는 구조를 통해 플래쉬백하듯이 써져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헤겔을 전적으로 의식했을리는 없지만, 플래쉬백을 통해서 드러내려는 효과는 비슷할 것이다. 1995년의 그 사건, 역사를 바꿔버린 비극의 사건을 다시 살펴봄으로써 현대사회의 아픔을 다같이 반성해보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는 새로운 운명, 새로운 역사를 다시 창조하자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따라서 플래쉬백을 통해 소외받은 사람들까지 포용하며 함께 나아가자는 의의가 초출된다.
앞서 보았듯이 벤야민이 말한 새로운 천사는 파국을 막는 존재였다. 역사의 종착점에 이르러 인류의 진보를 되돌아본 천사는 파국을 막기위해 다시 인류 앞에 나타난다. 그 모든 폭풍을 견디면서 천사는 인류를 위해 자기희생을 한다. 낭만파와 헤겔로부터 배워 자신의 철학을 만든 벤야민의 새로운 천사라는 모티브는 이 작품에서 또 한 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계속되는 비극을 막아내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위한 생존전략이 제시되었다. 포용과 화해의 정신을 통해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품어내야만 한다. 그 어려운 길은 서로에 대해 공감하는 태도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1) 자유주의 정신이 적대와 배제를 교묘하게 은폐한다는 것을 밝혀낸 사람은 칼 슈미트이다.
칼 슈미트,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 나종석 옮김, 도서출판 길 참조.
2)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가스 범죄의 가해자에는 의학대학 출신의 인물이 있었다. 사네토시라는 캐릭터에는 그 인물의 반영이 어느정도 들어가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3) 헤겔, 믿음과 지식, 황설중 옮김, 아카넷, 268~269쪽 참조.
2021-10-19수정
제목을 더 확실하게 수정하였습니다.
몇몇 문장의 전체 구조를 재배열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