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여 나에게 돌아와 (정신을 차려)

돌아가는 펭귄드럼의 음악에 대하여 - 야쿠시마루 에츠코

by ou pire


1. 엇나가버린 약속


근대체제는 그 성립 때부터 인민들에게 하나의 약속을 했다.

일본의 역사학자 요나하 준에 의하면, 서구사회는 약육강식의 자연적 폭력상태로부터 “한정된 영역”의 폭력을 독점하는 국가가 인민들과 계약을 맺으면서 등장했다. 국가의 합법적 폭력을 인정하는 대신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준다는 사회계약을 통해서 서구의 근세가 시작된다. 반면, 동양의 세계는 도덕이념을 추구하는 절대군주가 모든 사람을 통치하고 자애롭게 지배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통해서 근세를 맞이했다. 즉 서양과 동양은 모두 근세에 이르러 국민국가체제라는 글로벌스탠다드(국제표준)를 추구하면서 “약속의 대지”라는 질서를 구축했다. (요나하 준, 신초 2012년 에세이, 또 한 척의 타이타닉)

이 약속의 땅, 약속의 장소는 인민들에게 자유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그들을 국가에 소속된 국민으로 바꾸고 체제를 향해 헌신할 것을 촉구한다. 양 체제의 대결은 양차 대전이 끝나면서 극에 이르렀다. 냉전시대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이 동일한 목표, 즉 모든 국민의 번영이라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체제경쟁이었으며, 이 꿈의 시대는 1991년에 끝났다. 이 시절을 기점으로 아무도 유토피아를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체제경쟁도 사라지고,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한 슈퍼파워가 되었다.

결국 우리들이 맞이한 현대사회는 무엇이냐면, 약속된 꿈의 장소가 사라져가는 순간들이었다. 국민국가는 아무런 약속도 지키지 않았으며, 폭력의 시대만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을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배신에 배신이 거듭되는 세상이었으며 그래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장소가 되었다.


이러한 약해진 고리를 밀고 들어오는 것이 사이비-의미론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언더 그라운드의 후속작으로 “약속된 장소에서”라는 책을 낸다. 이 책에서 그는 옴진리교 신자(옛 신자)들을 찾아간다. 전작인 언더 그라운드가 지하철 사린가스테러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했다면, 이 책에서는 반대편 사람들의 입장과 의견을 듣는다. 이 인터뷰를 통해서 “일본사회라는 메인시스템에서 벗어난 사람들(특히 젊은 층)을 받아들이기 위한 유효하고 정상적인 서브시스템=안전망이 일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왜 바뀌지 않는 것인지를 탐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약속된 장소에서,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12~13쪽)


이러한 일은 비단 일본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정상이라고 간주되는 사회의 착실한 루트에서 벗어난 사람들, 소외받은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지대가 현대사회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나라가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사실 칼 슈미트의 말대로 자유주의 국가의 이념은 그 속에 배제와 차별을 은폐하며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대 비판의 정신으로부터 생각해보면, 국가는 약속을 저버렸고, 이에 방황하는 사람들은 다른 약속을 찾아 맴돈다. 그 약한 고리를 파고드는 것이 사이비-의미론이며, 옴진리교였다. 그들은 또 다른 약속을 찾아 헤매다가 옴진리교라는 종착지에 이르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적어놓는다.

“그들은 매사를 좀 더 성실하게 깊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에 조금쯤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주위 사람들과 원만하게 소통할 수 없어 약간은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표현 수단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해 자존심과 열등감 사이를 격렬하게 오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위험성을 내포한 컬트 종교 사이에 가로놓인 한 장의 벽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얇을지도 모른다.”(약속된 장소에서, 332쪽)






2. 야쿠시마루 에츠코



“돌아가는 펭귄드럼”의 OST인 “소년이여 나에게 돌아와(정신을 차려)의 작곡과 작사를 맡은 가수는 야쿠시마루 에츠코이다. 그녀는 그룹 ”상대성 이론“의 보컬이기도 하다.


이 가수는 독특한 아방가르드 정신을 가지고 있다. 인류가 음악을 즐기며 살았다는 것을,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를 고민한 야쿠시마루 에츠코는 커뮤니티가 소실되고, 국가가 몰락하고,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미생물은 살아남는다는 생각에 이른다. 따라서 음악을 유전정보에 담아 미생물에 집어넣는다. 이렇게 하면 인류 멸망 후에 새롭게 생겨난 지성체에게 “인류는 음악을 향유하며 살았다”라는 사실을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보를 복원하여 음악을 다시 향유하는 일이 가능하다. 따라서 인류가 만들어낸 음악은 불멸한다.


애초에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왜 이 가수에게 OST를 부르게 했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참신한 시도이기는 하지만 과학주의적 성격이 느껴져서 약간은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불멸에 이르기 위해 유전정보를 이용한다는 발상은 범인(凡人)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야쿠시마루 에츠코의 인터뷰를 읽어보고, 이 예술가가 추구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따라서 작품의 OST를 맡긴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지점은 이쿠하라 쿠니히코의 작품과 일치하는 지점이 있기에 그대로 옮겨놓는다.


인터뷰어 :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야쿠시마루씨의 경우에는, 노래 가사 속에서 지구가 사라진다거나, 인류가 멸망하는 것을 말해오셨으니까, 멸망 전의 최후의 인류는 어떠한 것들을 생각해야 됩니까?

야쿠시마루 에츠코 : 서로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프로그램의 지배를 통해서 완전히 효율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거기로부터 벗어나서, 그런 프로그램의 외부로 나가서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을 할 수 있는, 그러한 인류의 의지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와이어드 인터뷰에서 발췌
https://wired.jp/waia/2019/19_yakushimaru-etsuko/



야쿠시마루 에츠코의 노래들은 대단히 형식주의적이다. 그러면서도 그 엄격한 형식의 외부를 같이 담아낸다.

상대성이론의 보컬을 맡고 있는 그녀는 작곡과 작사, 프로듀싱을 도맡아 하는데, 초창기에 냈던 “지옥선생”이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잘 정돈된 리듬과 보이스를 가지고 노래를 부르는데 가사 내용은 선생님에 대한 사랑고백이다.


게다가 뮤직비디오는 간호사들이 옥상에서 단체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보여주고 끝이다. 2009년 즈음에 이런 형식으로 음악과 영상을 제시했다는 것은, 형식주의적 사회로부터의 탈출을 표현한다. 학교나 병원은 그 어느 곳보다도 형식이 중요한 장소이다. 이곳에서 통용되는 규칙이 어긋나면, 곤란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어느 곳보다도 엄격한 장소들이다. 이 엄격한 곳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그 바깥으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런 점에서 독창성이 나온다. 외부로의 탈출, 의미의 출현이 엄격한 형식주의로부터 나온다는 점이 새로움의 원형이다.




3. 고전의 형식, 링 콤포지션

이러한 시도를 포스트모던의 일종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하다는 것은 의미가 불명확한 말이어서, 사실 이런 식의 평가는 아무 곳에나 다 붙여지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포스트모던하다는 평가를 받아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포스트모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직 근대의 약속도 실현되지 못한 땅덩어리에 살아가는데, 포스트모던이 가능할 리 없기 때문이다.

야쿠시마루 에츠코는 포스트모던이라기보다는 역시 형식주의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 형식주의라고 하면 규칙을 잘 지키는 완고하고 고집불통인 사람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지만, 본래 형식주의란 칸트적 의미에서 형식주의를 뜻한다.


칸트의 도덕은 형식주의적 도덕이라고들 하는데, 붙어있는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사실 의미는 아주 간단하다.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이 쓰러졌다고 해보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이라면 마땅히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남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도덕성에 입각해서 쓰러진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 내면에 존재하는 남을 도와줘야 한다는 도덕의 형식을 그대로 실천하면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도덕의 형식을 그대로 행위하면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칸트의 선의지는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는 내면의 형식을 그대로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이게 칸트의 형식주의이다. 동시에 형식주의는 고전주의이기도 하다.


야쿠시마루 에츠코가 작사, 작곡을 맡은 상대성이론의 앨범 천성징글은 첫 번째 곡 천지창조 SOS와 마지막 곡 플래쉬백이 연결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 앨범은 계속해서 순환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구조는 거듭해서 강조하지만 고전의 형식인 Ring Compositon이다. 시작부터 끝에 이르러 다시 시작이 되고, 다시 끝에 이르러 다시 시작하는... 순환의 구조이며 동시에 시작과 끝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형식이다.


이렇게 형식주의를 해내면 무엇이 남는가? 또한 과학의 법칙을 따라서 미생물에 음악을 주입하면, 무엇이 남는 것일까? 그렇게 형식을 지켜서 무언가 해내면 거기로부터 의미가 출현한다고 보는 것이다. 형식주의적 완결성에 도달하면 끝내 창조에 이른다는 것은 고전주의자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형식이 인류에게 있어서 아주 오랜 전통을 가진 진리, 의미의 전달방식이다.

야쿠시마루 에츠코가 작사, 작곡한 돌아가는 펭귄드럼의 OST 역시 형식적으로 완결되어 있다. 소년이여 나에게 돌아와(정신을 차려)의 가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기로 하자.




4. 소년이여 나에게 돌아와(정신을 차려)


https://youtu.be/9liVljr-1cs


소년소녀 둥글게 모여

뻗은 손은 허공으로 향하다 떨어지네

교차하지 않는 이매지너리


소년소녀는 미래의 상징이다. 가정이나 학교, 모든 생활의 현장에서 무언가를 공부하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허공을 향해 손을 뻗지만, 세상은 그걸 쉽게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그 손은 떨어지고 만다. 따라서 이러한 세상은 상상력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가사를 통해 사회와 청소년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 동작을 표현하며 드러낸다.


회전목마가 하늘을 날아

싸움의 막이 열리네

비밀을 밝히는 홀리나이트


회전목마는 놀이동산의 상징이다. 놀이동산은 보통 꿈의 장소로 은유되며, 엑스포와 같은 장소를 지칭한다. 인류는 자신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무언가를 제작하고 세상에 내보였다. 그렇게 기존의 세상과 투쟁하며 만들어진 상상력의 무대 그 자체가 지금의 세상이다. 그러한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홀리나이트로 비유된다. 이 가사에서 과학자와 인문학자가 비유되고 있다고 본다. 그들은 근대사회를 만들었으며,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엘리트들이기도 하다.


한밤중에 열리는 창문

손짓하는 수수께끼의 목소리

진홍빛 커튼을 휘날리며

미소를 숨기면서

소년이여 나에게 돌아와(정신을 차려)



이 가사는 괴테 파우스트와 비슷한 면이 있다. 파우스트는 이 세상 모든 진리를 알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절망하는 인물이다. 그는 밤중에 서재에 앉아 무력한 인간의 한계에 절망하며 자살을 생각한다. 그런데 그에게 미소를 숨기며 나타나는 악마. 그는 파우스트에게 삶의 모든 향락을 알려주겠다며 거래를 제안한다. 악마는 파우스트를 회유하고 그를 자신의 게임에 초대한다.


따라서 이 가사 부분부터 악의 유혹, 일종의 잘못된 길로 들어가는 소외된 사람들이 묘사된다.


특급열차 태우고

네버랜드에 데려가줘

남김없이 빼앗아줘


소외받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묘사한다.



손가락질 받는다고 해도

눈 감고 도망쳐버려도 좋아

전부 마음 내키는대로



사이비-의미론을 전파하는 목소리. 눈 감고 도망치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제의 본질을 보지 않고 회피하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부터 반주가 조금 이어진다.


빨간 사과가 호를 그리며

만유인력에 의해 떨어져

지루한 날은 엔들레스



사이비-의미론은 그야말로 허망한 의미론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루함은 해결될 수 없다. 본성, 자연의 세계는 잘 돌아가고 있지만, 소외받은 사람들의 내면은 사이비-의미론에 잠식되어 고통에 빠져있다.


둔감이 버릇이 되고

칭찬은 거짓일 뿐

나른하고 달콤하며 마비되는 애프터눈


소외받은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가사이다. 이제 다음 가사에서 전환이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고전에서 줄곧 등장했던 진리의 출현을 상징하는 단어, “갑자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갑자기(突然, 도츠젠) 열린 문

내리깔리는 수수께끼의 목소리

미래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눈빛이 어두워져

소년이여 나에게 돌아와(정신을 차려)



“갑자기” 열린 문을 통해 다시 수수께끼의 목소리가 나타난다. 앞의 가사에서 나오는 수수께끼의 목소리는 “한밤중”에 등장했으나, 여기서는 “갑자기” “열린 문” 사이에서 목소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미래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따라서 화자는 눈빛이 어두워지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갑자기 등장한 천사는 나에게 돌아오라고, 정신을 차리라고 외친다.



특급열차 태우고

도원향에 데려가줘

남김없이 재로 만들어줘



아까와 비슷한 가사지만 무언가가 달라졌다. 중국문학에서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도원향에 데려가 달라고 말하면서, “재(ash)”로 만들어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앞서 야쿠시마루 에츠코가 형식주의자인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건 이런 가사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성서의 욥기에서 하느님의 진노가 있고 난 다음, 욥은 “잿더미”에 앉아 뉘우친다. 고전에서 재(ash)는 반성으로 들어가는 것의 상징을 가리킨다. 이러한 상징의 형식을 가져다 쓴 이후, 노래가 급격히 전환된다.


손가락질 받는다면

긴급회피하면 돼

전부 마음 내키는대로



여기서는 도망가버려도 좋은 것이 아니라, “긴급회피”로 그 방법이 바뀐다. 도망 → 긴급회피의 뉘앙스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자가 그저 문제로부터 회피하고 피해버리는 태도라면, 후자는 방법을 찾아서 역경을 해쳐나가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바뀌고 있다는 암시가 단어 선택에서 드러난다.


여기서부터 전환이라는 것을 암시하듯, 반주가 길게 이어진다.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니까 곤란해해줘

네가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거니까 용서해줘


이것은 확실히 돌아가는 펭귄드럼에 등장하는 크리스탈의 공주=모모카의 목소리이다. 천사가 무언가를 알려주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밤중에 열린 창문

손짓하는 너의 목소리

그림 속에 그려져있는

짐승이 혼자 울고 있어



천사는 소외된 사람들의 슬픔을 인식하고 그를 구해주러 이 땅에 돌아온 것이다.



“어찌됐든 나를 기억해줘

언젠가는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의 장소에서“



여기서 정확히 “약속의 장소(약소쿠노 바쇼데)”에서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약속된 장소에서”라는 책을 읽고서 썼다는 추측이 가능한 부분이다. 천사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 외침에 화답한다. 그리고 진정한 약속의 장소로 데려가 주겠다고 말한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있어도

행복한 너를 지켜줄게

그 누구라도 좋지만 나만이

유일한 나이트(기사)로 있기를 바라



이것이 천사의 화답이다. 돌아가는 펭귄드럼에서는 크리스탈의 공주=모모카의 화답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완행열차는 너무 늦어

날 두고 가지 마 같이 가 줘

어째서? 빼앗아줘


특급열차 태우고

네버랜드에 데려가줘

남김없이 빼앗아줘


손가락질 받는다고 해도

눈 감고 도망쳐버려도 좋아

전부 마음 내키는대로



천사의 회답에도 불구하고 소외받은 사람은 원래대로 돌아와 다시 사이비-의미론의 영역으로 돌아가버렸다. 따라서 천사는 그 파국을 막기 위해 지친 목소리로 마지막 가사를 말한다.


소년소녀 둥글게 모여

뻗은 손은 허공으로 향하다 떨어지네

돌기 시작하는 데스티니



천사는, 즉 모모카는 애니메이션의 내용대로 파국은 막았지만 지치고 말았다. 처음의 가사는 마지막에 와서 돌기 시작하는 데스티니가 된다. 이 노래는 돌아가는 펭귄드럼의 오프닝곡이다. 다시 말해서, 이 곡은 작품의 전체 내용을 집약해서 보여줌과 동시에, 이 작품에서 진행되는 현재시점 이전의 천사(모모카)의 희생에 대해서 미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곡은 파국을 막았던 과거의 모모카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절망 - 희망 - 절망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소년이여 나에게 돌아와라는 제목의 외침 이면에는 소년이여 정신을 차려라는 이중의 해석이 가능하게끔 의도되어 있다. 이 곡에서 모모카는 세계의 파국을 겨우 막아내지만, 어쨌든 비극이 발생된 상황이다. 이 곡이 끝나고 진행되는 애니메이션의 시점에서 모모카는 히마리에게 빙의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고, 소년들이 그에 감응하여 비극은 정지되고 새로운 운명이 창조된다.


이 곡은 오프닝이므로 절망 - 희망 - 절망이라는 모모카의 과거를 표상한다.

오프닝이 끝난 애니메이션의 시점은 희망 - 절망 - 희망이라는 모모카의 현재를 표상한다.

오프닝곡이 애니메이션의 진행시점에서 플래쉬백하면서 보완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모모카의 모습


모모카는 한 번 희생해서 세상의 파국을 막았다. 애니메이션이 진행되는 시점에서는 히마리에 빙의하여 소년들에게 운명을 바꾸라고 촉구한다. 그 메시지를 통해(매개로 해서) 각성한 소년들은 숭고한 희생을 통해 히마리와 링고를 살리고 세상의 운명을 바꾼다.


이 곡은 15회 때부터 오프닝곡으로 등장하는데, 옴진리교 지하철 테러사건이 일어난 역이 마루노우치선 15번째 역이다. 따라서 15회 때 그 사건을 상기시키는 이 곡이 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15화를 기점으로 운명이 바뀌고 포용과 화해로 전환될 것이 작품의 시작과 함께 표현되어 있는 셈이다.


이 노래의 작사와 작곡을 살펴보니, 왜 야쿠시마루 에츠코를 기용했는지 잘 알게 되었으며 작사한 것의 퀄리티에 놀라게 되었다. 작중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모모카의 희생을 선제적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숭고한 자기희생과 “행복한 너를 지켜주겠다”는 가사를 제시해 포용, 화해라는 작품의 테마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전의 구조를 따라서 노래 자체가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결국 노래에서 모모카는 파국을 막아냈고, 애니메이션에서는 모모카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소년들이 정신을 차려 파국을 막는다. 파국을 막는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타인에 대한 믿음, 즉 무한한 신뢰의 태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야쿠시마루 에츠코가 가사로 표현한 것처럼,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있어도 행복한 너를 지켜줄게"라는 포용과 화해의 태도는 신뢰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화는 소외된 사람들을 만들었다. 그 약속은 허망한 것이었으며, 소외된 사람들은 다른 약속을 찾기 위해 방황하다가 좌절을 겪곤 했다. “우리는 고유한 힘과 생기를 가진 한 생명을 사라지게 했다. 그 과정을 겪으며 우리는 다른 생명의 씨를 말릴 수 있는 존재로 길들여졌다. 다른 종을 거침없이 파괴할 수 있는 개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가 송두리째 빼앗긴 감각, 훼손되어버린 것은 바로 우리도 한때 길들여지지 않은 존재였다는 사실이다.”(애완의 시대)


근대화가 만들어놓은 난관을 극복하려면, 앞서 말했던 타인에게 공감하는 태도로부터 시작하여 그 아픔을 함께 공유하고 그로부터 포용과 화해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머나먼 길은 이제 겨우 시작이다.







이렇게 미약하지만 "돌아가는 펭귄드럼"의 요소들을 살펴봄으로써 일본 예술을 통해, 난관을 돌파하는 열정의 중요성, 꿈의 회복, 또한 파국을 직면한 천사의 멜랑꼴리와 초월의 개념, 그리고 파국을 막기 위해 자기희생하고 포용과 화해에 이르는 천사의 이미지가 도출되었다. 미약하지만 이 주제들은 여기서 일단 끝이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작품에서 꾸준히 이런 메시지들이 등장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 나라의 현실이 너무나도 잔인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본의 헌법은 천황제 국가를 규정하면서 시작한다. 그 나라의 주요 상징은 국민이 아니라 일왕이다. 그런데 일왕이라는 존재도 생각해보면 공허한 상징에 불과하다. 정치적 실권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결단도 내리지 못한다. 따라서 프랑스의 기호학자인 롤랑 바르트는 일본 체제의 존재양식을 텅 비어있음을 가운데 놓고 촘촘한 구조를 만들어놨다고 말한다. 일본의 학자인 가라타니 고진의 경우, 일본 정신분석에서 마루야마 마사오의 분석으로부터 가져와, 일본인들에게는 주체가 없다고 말한다. 지켜내야 할 "내"가 없기 때문에 이것저것 가져다가 수용하고 융합하고 베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판이 과연 일본에만 적합한가?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가뜩이나 일본과 사이도 안 좋은 시대에, 일본의 예술을 다루면서 현대사회를 비판한다는 것은 어이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프로젝트를 해 본 이유는 일본이라는 타자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 같은 타자의 시선을 통해서, 그리고 그 타자를 비판하고 있는 그 타자 내부의 예술적 정신을 통해서, 그들의 한계를 살펴보고 동시에 나에게로 되돌아와 우리의 한계를 생각해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완전한 끝을 위해서 현재 시도되고 있는 철학의 새로운 개념인, 탈합치에 대해서 이야기할 생각이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정교한 안정만을 추구해왔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합치되어야 한다는 논리로부터 벗어나 탈합치하는 것으로부터 새로움이 나타날 가능성이 열린다. 이 생각은 프랑수아 줄리앙의 책을 요약한 것에 불과하다.





2021-10-19수정

진한 글씨 부분을 추가했습니다.

전체 문장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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