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펭귄드럼/ 출처 나무위키
1. 감독인 이쿠하라 쿠니히코에 대하여
돌아가는 펭귄드럼(2011)의 감독인 이쿠하라 쿠니히코는 세일러문 시리즈로 유명하다. 그리고 소녀혁명 우테나를 통해서 자신의 연출 스킬을 확립했다. 세일러문의 연출을 통해 놀라움을 보여줬다면, 소녀혁명 우테나를 통해 그만의 독특한 연출법이 확립되었고, 믿고 볼 수 있는 작가로 인정받은 사람이다.
감독 이쿠하라 쿠니히코 / 출처 나무위키
문제는 소녀혁명 우테나(1997) 이후 감독을 맡은 작품이 없었다는 것에 있다. 그런데 2011년에 감독으로 복귀한 그는 “돌아가는 펭귄드럼”을 통해 애니메이션 역사에 영원히 회자될 작품을 만들어냈다.
어렸을 때 세일러문을 보았던 분들이라면, 그 작품은 나쁜 녀석들을 물리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소녀들의 이야기이거나, 달의 요정이라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진 마법소녀물이라거나, 추억이 가득 차 있는 작품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세일러문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마법소녀물이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소녀물의 원형이기도 하지만,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은 울트라맨과 더불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으며, 에반게리온 이후 애니메이션 판도를 바꿔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에반게리온의 감독 안노 히데아키는 이쿠하라 쿠니히코와 친밀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세일러문을 보고 이쿠하라의 연출력에 감동받아 무작정 제작현장으로 찾아가 아르바이트 애니메이터로 참여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이다.
세일러문은 악의 조직과 대적하여 싸우는 전투 미소녀를 다루는 작품이며, 이는 정신분석적으로도 논할 것이 많기에 학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따라서 일본의 정신분석가 사이토 다마키는 전투 미소녀의 정신분석에서 이 작품을 논하기도 했다.
확실히 이쿠하라 쿠니히코는 섹슈얼리티의 요소를 존재론과 결부시킨다. 정신분석에서 인간의 섹슈얼리티는 존재의 문제 그 자체가 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은 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시대의 진행에 따라 섹슈얼리티의 변화요소를 잘 살피면 변해가는 인간 존재 그 자체를 탐구할 수 있다.
소녀혁명 우테나 / 출처 나무위키
이쿠하라 쿠니히코는 소녀혁명 우테나를 통해서 진짜 혁명이 뭔지를 묻는다. 본래 혁명은 정치적 변화로부터 촉발된 사람들의 생활양식의 변화를 일컫는다. 정치적 혁명만 한다고 혁명이 아니다. 중세까지 농사를 지으며 자연의 시간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산업혁명 이후 공장의 타임스케줄에 맞춰 살아가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클래식 공연장에 입장하여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것이 진정한 혁명이다.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혁명이다.
소녀혁명 우테나에서 혁명의 형식은 소녀혁명의 방법론이다. 백마 탄 왕자님이 공주님을 구해내는, 수동적인 주체가 능동적인 주체의 손길과 사랑을 통해 구원을 받는 스토리를 근본적으로 파괴해버린다.
이 작품의 주제는 모든 주체는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구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구원해야 한다는 정신분석의 주제와 일치하게 된다. 이 주제까지 나아가는 과정이 여성의 욕망을 분석하면서 등장한다는 점도 동일하다. 이 지점만큼은 소녀혁명 우테나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정신분석의 약점 중의 하나는 주체의 마음을 탐사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같은 테마를 반복한다는 데에 있다.1) 물론 주체의 마음만을 탐사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당신의 내면의 슬픔, 고통, 우울이나 과도한 행복, 욕망, 사랑에 대해서 탐사하여 그것의 기원을 밝혀내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해낸다는 자체는 정신분석의 업적이다. 문제는 개인이 그렇게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구조의 문제를 해부하는 일에는 관심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사회문제에 있어서는 분석가마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사회구조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든지, 남들이 다하는 유행에 대해서 분석하고 그것을 돌파하는 새로운 자기만의 욕망을 창조해야 한다든지,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 구조의 한계를 논하고 새로운 혁명의 가능성을 상상해야 한다든지... 이런 것들은 모두 좋은 이야기지만, 그 논증이 빈약하다는 점이 약점이며, 이는 사회에 대한 그들의 관심도가 상당 부분 떨어진다는 것에 그 약점이 있다.
이쿠하라 쿠니히코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본적으로 아방가르드 예술(전위예술)을 지향하기 때문에 탐미주의적 성향이 있고, 그에 따라 사회구조 속 개인의 내면에는 관심이 있지만 사회구조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소녀혁명 우테나를 보고 감명받기는 했지만, 사회구조에 대한 관심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그 작품을 분석하는 것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돌아가는 펭귄드럼”은 다르다. 이 작품의 기획 자체가 일본의 사이비종교 옴진리교가 주도한 지하철 사린가스테러(1995)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95년의 지하철 사린가스테러는 일본의 사회구조 자체를 바꿔버린 충격적인 일이며, 이 테러로 인해 일본의 전후 구조는 붕괴하고 말았다.
2. 근대화와 옴진리교
무라카미 하루키 - 언더그라운드/ 출처 알라딘
무라카미 하루키는 옴진리교 테러사건을 열정적으로 취재하여 “언더 그라운드”라는 책을 내놓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고작은 물론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일지 모르지만, 100년이 지나도 기억될만한 책은 “언더 그라운드”이다. 이 르포 에세이를 통해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의 당대사회를 그려내며,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 사회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를 탐구한다.
이 책은 일본 사회의 최대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결론 낸다. “내가 그보다 더욱 심각하게 위기감을 느낀 것은, 당일 발생한 수많은 과실의 원인이나 책임, 그에 이르기까지의 경위, 또한 그런 과실에 의해 발생한 결과의 실태가 아직도 정보의 형태로 일반에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과실을 외부에 명확히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일본적 조직의 체질이다. ‘집안 창피니까’라는 것이다.”(언더그라운드, 725쪽)
언더그라운드가 1997년 발간되었으니, 일본은 2011년 도호쿠 대지진 때까지도 그런 조직의 관행을 개선하지 못하다가 재난을 맞이한 것이다. 이 일본 조직의 체질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근대화를 아시아에 퍼뜨렸다고 뽐내고 다니는 일본 극우들의 허망한 역사인식은, 아직도 그 체질의 개선을 방해하고 있다. 일본은 아시아에 근대화를 퍼뜨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특유의 조직 체질을 널리 퍼뜨렸다. 이 조직 체질이 아시아를 좀먹고 있으며, 경제발전과 특이한 조직 체질을 맞바꾼 동아시아 체제들의 미래 전망이 불확실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근대화가 그리도 대단한 것인가. 근대화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명, 청이나 조선은 이미 동양적 근대를 맞이하고 있었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하며, 제국주의 국가들이 퍼뜨린 것은 서구적 근대화의 모델이다. 그 서구적 근대화는 막스 베버의 말대로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관료제 조직에 의해 서늘한 쇳조각의 울타리를 만들어내는, 냉혹한 자기 최면의 도구이다. 이 근대화의 핵심가치는 기술 중심주의이며, 기술과 관료제를 통해서 국가의 생산력을 강화시켜 모두가 잘 살아보자는 유토피아가 생겨난다. 그래서 무엇이 바뀌었는가. 우리는 기존의 생활방식을 잃어버리고 인간관계를 상실했으며, 그로 인해 내면의 고독과 우울만이 싹트게 되었다.
하이데거의 말대로 근대 기술 중심주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닦달하는 태도”로 이루어진다. 자연을 닦달해서 그것을 유형의 상품으로 만든다. 내버려두면 자기들의 존재양식에 맞게 성장할 자연의 성장물들, 돼지나 소나 닭을 울타리에 가둬놓고 인간의 취향에 알맞도록 닦달함으로써 적절히 사육한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최대의 고기를 얻어낸다. 이것이 기술 중심주의와 결합된 생산력 중심주의의 결과이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놔두지 못하고, 인간의 편의에 알맞은 도구로 바꾸어버리는 태도. 따라서 자연은 친숙한 것이 아닌 생산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닦달해야 하는 도구가 된다. 하이데거의 이야기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자연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인간이 인간을 닦달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삶의 고통이 시작된다.
일본은 고도성장을 통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도국가가 되었고, 이를 통해 문화예술과 학문의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면 된 것이 아닌가?라고 일본인들은 대부분 생각했다. 그래서 1980년대를 열심히 즐겼다. 문제는 거품경제가 붕괴에 이르고, 자산가치가 증발하자 예전의 사치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그들만의 축제가 끝나고 고요한 침묵만이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그때가 1995년이었다. 이때 옴진리교가 지하철에 사린가스테러를 감행한다.
옴진리교는 고도성장의 결과 공허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노렸다.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종말론이나 불교, 힌두교, 예언록, 음모론을 잡다하게 섞어서 삶과 죽음을 초월하고 해탈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알려주겠다며 교세를 확장한다. 잔치가 끝나고, 공허해진 마음을 어디에 둘지 몰라 방황하다가 기이한 것에 끌린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았을 때 어느 정도 이치에 맞는다. 문제는 옴진리교와 아사하라 쇼코는 일본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종교국가를 세우려는 목적으로 여러 가지 테러사건을 일으켰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신도들이 아사하라 쇼코의 말을 최면걸린듯이 그대로 실행했다는 것. 이것이 충격이었다.
연속되는 테러로 옴진리교에 대한 감시와 수사가 강화되자, 그들은 대규모 테러를 일으킬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시행한다. 그 테러가 바로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였다.
“당신은 여느 때처럼 아침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한 다음, 아침을 먹고 옷을 입고 역으로 간다. 그리고 늘 그렇듯 붐비는 전차를 타고 회사로 향한다.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딱히 다른 날과 구분할 필요도 없는 당신의 인생 속 하루에 지나지 않았다.
변장한 다섯 명의 남자가 그라인더로 뾰족하게 간 우산 끝으로 묘한 액체가 든 비닐봉지를 콕 찌르기 전까지는..."(언더그라운드, 24~25쪽)
이 테러사건으로 14명이 사망하고, 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상당했다. 이 사건은 사이비종교가 대규모 살상무기를 이용하여 테러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일본 사회가 더 충격을 받은 이유는, 범인 다섯 명이 모두 엘리트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도쿄대나 게이오대 의대 출신인, 일본 사회의 엘리트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이었다. 어째서 그들은 누가 봐도 수상한 교주 아사하라 쇼코에게 감화받아 테러리스트가 되어버린 것일까?
옴진리교를 둘러싼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읽었던 문헌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문서는 다음의 것이었다.
옴진리교 신자 아들을 둔 어머니가 아들에게 묻는다.
“지금 생활에 뭐가 불만이니? 뭐든지 다 사주었고 하고 싶은 일은 다 하게 해주었잖아. 아무런 부족함 없이 자유롭게 키웠는데.”
도쿄대학을 졸업한 30대 아들이 답한다.
“부모님은 이것저것 간섭은 했지만 남녀 관계라든가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같은 것은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때 옴진리교를 알게 되었고 이거라고 생각했다.”
(일본 전후의 붕괴, 107~108)
일본 사회는 아이들에게 의미를 알려주지 않았다. 삶의 의미, 남녀관계의 의미, 인간의 의미, 존재의 의미... 일본 사회는 빠른 경제성장과 선진국 진입이라는 목표 아래 학생들에게 암기와 성적만을 강요했다. 그것은 산업 성장을 이루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었을지 모른다. 그 결과 경제성장이라는 과실을 획득했으나, 의미의 상실이라는 뼈아픈 결과를 낳았다. 의미의 부재가 가득 한 사회에는 필연적으로 사이비-의미론이 판치게 된다.
물질적 번영에 가로막혀 의미가 부재했던 일본에 등장한 것이 바로 옴진리교다.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신비스러운 일면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배우지 못한 의미를 그에게서 배웠다. 그들은 삶을 살아갈 이유를, 옴진리교로부터 배우고 말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돌아가는 펭귄드럼”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세심하게 분석할 것이라서 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옴진리교 사건 이후, 파국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핵심 대사는 무엇이냐면, “생존전략”이다.
3.
한국사회 역시 의미의 부재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느 곳보다도 위험한 장소임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현재 우리 사회의 상태는 “내면의 균형과 조화, 모든 특성의 실현, 인간의 본성과 그것의 성장이라는 이제는 진부한 표현으로 남은 교육의 과제가 제대로 실현될 기회도 없이 많은 아이들은 자기만의 특성과 개성을 억압한 채 성장했다. 부모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존재를 성형해가며 앞만 보고 달려온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인정받고 싶은지조차 모른 채 부모의 인정을 갈구한다.”(애완의 시대)
“그렇게 교육이라는 망령된 미명하에 아이들을 하루종일 책상머리에 앉혀놓고 공부만 강요하다보니, 신체와 정신에 자리한 아이들의 에너지와 감각은 사라져갔다. 그렇게 아이들은 삶이라는 실체를 감각할 기회를 잃어버렸다.”(애완의 시대) 생존 그 자체가 문제가 되어버린 한국사회에 시사할 점이 많은 작품이기에 더더욱 세세하게 분석할 것이다.
애완의 시대/ 출처 알라딘
이 작품의 분석은 “애완의 시대”라는 책과 함께 이루어진다. 두 작품 모두 한국과 일본 사회 모두에 새로운 사회구조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전망을 제시하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주
1) 정신분석이 아예 개인의 내면만을 탐사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분석에서 이야기하는 대타자는 사회의 고정관념에 의해 수행되는 기표의 무한한 운동이기 때문에, 이 대타자에 지배받는 현대사회의 분석주체들은 모두가 사회적 구조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정신분석의 목표는 대타자의 지배로부터의 이탈인데, 그 이탈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회비판이 행해지곤 한다. 어느 것을 주안점에 두느냐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의 사회적 역할은 확실히 사회적 비판보다는 개인의 내면을 탐사하여 그로부터 삶을 살아내게 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내면에 대한 탐사가 이론적인 작업으로 전제된 이후에 사회적 비판이 행해진다는 점에서 이 학문은 실천학이긴 하지만, 그 실천이 사회비판에 직접적인 주안점을 두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이론적 개념을 활용하여 사회비판을 수행하는 분석가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참고문헌
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이승욱, 김은산, 애완의 시대, 문학동네
권혁태, 일본전후의 붕괴, 제이앤씨
2021-10-19수정
제목을 수정하였습니다.
언더 그라운드 인용을 수정하였습니다.
주석 1번을 추가하였습니다.
전체 문장을 가다듬고, 삭제하고,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