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멜랑꼴리

벤야민의 역사개념과 나카모리 아키나의 물에 꽂은 꽃

by ou 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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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시대가 다시금 파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북극 빙하의 면적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도,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지구온난화의 증거가 없다며 아마존 열대림의 벌채를 부추겼다. 이전의 브라질 정부에서는 아마존 열대림의 보호를 위해서 의도적인 파괴행위를 금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부정적인 보우소나루가 당선되자 규제는 느슨해졌고, 이에 열대림에 대한 의도적인 파괴행위가 진행된다. 산업의 부흥을 위해서 의도적인 화재를 일으킨 결과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고, 아마존의 수많은 열대림은 파괴되었다.


이 파국의 사건을 통해서 무한한 부의 추구와 진보에 대한 열망이 인류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진보에 대한 열망은 정밀한 기술주의와 함께 진행된다. 이윤을 뽑아내려면, 자연은 정복되고 파괴되어야만 한다. 인류문명의 진보라는 이념은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으로 제안되었으나, 기술중심주의와의 연합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쩌면 그 시작부터 진보와 기술중심주의는 인류가 스스로에게 놓은 덫 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우리는 흔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다른 체제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미 몰락했으며, 현실에 존재하는 공산주의 체제라고 하더라도 모두 자본주의의 외양을 띠고 있으니 둘은 전혀 다른 것이며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의 틀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사실 동일한 체제이다.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주의 경제는 말만 다를 뿐 근대경제라는 점에서는 결국 같은 뿌리다.”1) 그 이유는 두 체제가 같은 원리에 근거하여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할 것 없이, 프랑스 혁명 이후의 200년은 공통의 지표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는 경제합리성이며 또 하나는 기술합리성 내지 그것을 받쳐주는 생산력중심주의이다. 그 점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공통되어 있다.”2) 양 체제 모두 생산력을 향상해야 한다는 원리와 그것에 기초한 기술중심주의를 통해 작동한다. 중국의 체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중국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게 GDP 성장률을 할당한다. 몇 퍼센트까지 맞추라고 지시하면, 지방정부는 그 기준을 달성하고 자신의 성과를 뽐내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한다. 그 결과 아파트를 만들었다 파괴하고, 다시 만들었다가 파괴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렇게 호화스러운 아파트가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인 6억 명이 월 18만원의 급여로 겨우 살아간다.


중국이든 어떤 체제가 되었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생산력이 증진되면 빈곤은 사라지고 인류 모두가 번영할 수 있다는 진보사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열심히 일하면 가난을 탈피할 수 있다는 신화는 인류 공통의 꿈이었고, 우리는 오늘날 그 꿈을 어느정도는 이룬 것으로 보인다. 정말 자랑스럽고 놀라운 일이라고 뽐낼 수도 있지만 그 결과가 아마존의 열대림이 파괴되고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려 여름은 미칠 듯이 더워지고, 겨울에는 유례없는 한파가 몰아치는 것이라면, 도저히 미래세대에게 정말 잘 살아오셨군요. 감사합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기술에 대한 추구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세계를 계산하고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태도로부터 등장한 테크놀로지는 세계를 바꾸었다. 시계부터 인쇄술, 철도, 증기선, 비행기는 모두 인류의 커뮤니케이션을 증진시키고 모험과 꿈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게끔 했다. 자본의 유통을 빠르게 하여 번영을 촉진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술에 대한 열망은 곧, 합리적으로 사람을 살육하는 방편으로 나아간다. 아우슈비츠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계산하여 사람을 살육하는 장소이다. 얼마만큼의 사람을 한 공간에 몰아넣으면 더 값싸게 많이 죽일 수 있는지 기술적으로 고민한 결과 가스실이 나온다. “현대는 지구 상의 사회들을 기술에 의해 인간을 합리적으로 살해하는 장소로 바꾸었다.”3) 이에 테크놀로지는 정치나 경제와 결합되었을 때 파국을 불러온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인류는 진보할 수 있다는 공통의 꿈, 모두가 번영하며 꿈의 유토피아를 현실에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그 꿈은 경제위기를 통해 현실화되었다. 이 오래된 꿈은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고안되었거니와, “미국의 뉴딜, 스탈린의 계획경제, 독일의 나치즘이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사 통제경제 체제 등은 1929년 이후의 관리경제, 통제경제, 계획경제라 불려지는 것의 구체적 사례들이다. 여기서 이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동근성, 동질성이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4)


1929년 대공황의 위기로 인해 각 국가들은 민족단위 중심의 국민국가 체제를 확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은 경제적 번영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소련은 공산주의 혁명을 통한 인민의 부흥을 향해서, 파시즘은 민족과 그 민족의 터전인 국가의 부흥을, 통제경제 체제는 병영국가, 즉 군대 행정을 통한 국민국가 건설에 나섰다. 이들은 모두 기술의 힘을 빌어 생산력을 증진시킴으로써 체제를 통합하려고 한다.

기술중심주의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양적으로, 숫자로 계산하는 태도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생산력중심주의 또한 등장한다. 자아는 합리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어떤 합리성인가? 바로 계산하는 합리성이다. 이제 이성은 계산하는 능력이 된다. 이 능력을 통해서 생산력을 계산하고 그것을 늘리기 위해 전력한다.






2.


이 태도들은 어떤 파국을 향해 전진하는 태도의 하나가 아닌가? 기술중심주의가 지향하는 진보라는 이념은 그 누구도 막아낼 수 없는 것일까? 발터 벤야민(1892~1940)은 이러한 사실에 깊이 절망하면서도 그 해결법을 찾아내기 위해 분주히 연구하였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대교적 메시아주의를 그 방법론으로 가지고 있는 독특한 학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마르크스는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알고 있는데, 어째서 벤야민은 마르크스주의와 유대교적 메시아주의를 함께 연구했던 것일까?


서구 사상의 비밀은 대부분 신비주의적 측면을 일정 부분 가진다는 것에 있다. 그 안에는 이 시대가 절망의 시대임과 동시에 그로부터 구원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어떤 낙관적인 신념이 깃들어있는, 이중의 결합이 형성되어있다. 구원이 일어나려면 어떤 기적이 행해진다던가,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존재해야만 한다. 그래서 성서에는 복음, 기쁜 이야기가 등장하거니와, 예수가 기적을 일으키는 사건들을 세세히 서술해놓는다. 기독교의 시간관은 곧 헤겔이나 마르크스에 영향을 끼쳤다.


이 기독교의 직선적 시간관은 동시에 다른 시간관을 함축하고 있는데, 이것이 순환적 시간관이다. 공식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종말이라든가 신의 강림과 같은 일은 무한히 연기된다. 그러한 복음의 시간, 언젠가 다가올 기쁜 날을 찬미하는 일은 교회를 통해 영원히 반복된다. 교회에서 행해지는 예배를 통해서. 예배를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 신자의 의무인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 교회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신의 시간이란, 구체적으로는 부푼다든지 준다든지 하지 않고, 영원히 똑같은 것으로서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연의 시간인 순환 시간을 말하며, 애당초 인간이 그것을 사용하여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그런 신성한 것이었다.”5)


따라서 중세의 교회는 시간을 독점한다. 시계는 오로지 교회에만 존재했다. 자연의 순환질서에 기초한 수도원의 시간이 곧 세계의 시간이었으며, 그 타임스케줄에 맞추어 우주가 돌아간다. 그런데 이 시간관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등장했으니, 그들이 바로 고리대금업자와 환전상이었다. 상업은 “시간차를 이용하여 화폐를 부풀려 돈을 버는 행위였다.”6) 자본주의의 기원이라고 이야기되는 고리대금업과 환전은 이처럼 중세의 시간관을 부정함으로써 등장했다. 순환이 아니라 직선으로, 미래를 현재로 당겨와 화폐를 부풀리는 기술. 이것이 합리적이면서 계산적인 이성이다. 근대가 발견한 이성은 계산적 이성이었다.


이마무라 히토시의 책에서는 헤겔을 근대의 옹호자로 보고, 직선적 시간관의 대표주자로 파악하는데, 당연히 헤겔은 근대를 확립한 학자이기 때문에 이 평가는 옳다. 그런데 헤겔을 읽다 보면 직선적 시간관뿐 아니라 과거로 회귀하려는 시간관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과거부터 기쁜 소식이 미리 정해져 있어야만 한다는 의식, 이것은 성서로부터 받은 영향일 것이다. 미래에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라는 목적을 세우고 차근차근 살아가는 주체는 동시에 이 모든 것이 과거부터 미리 결정되어 있던 것임을 깨닫게 된다.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 모든 것을 회고하는 주체는 모든 것이 시작부터 끝까지 이미 결정되어 있던 것임을 깨닫게 된다. 역사는 주체가 행위하는 무대이며 동시에 정신이 자기를 실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진행과정에서는 알 수 없지만 이성의 원칙 아래 모두 결정되어 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최종 지점에 이르러 거꾸로 바라보고 반성함으로써 과거의 순간들에서 그 진리의 계기들을 음미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정신현상학에 존재하는 두 가지 주체이다. 하나는 전진하는 주체, 하나는 배후에서 관조하는 주체다.7)



3.


그렇다면 논의를 다시 벤야민으로 돌리도록 하자. 유대인 출신의 독일인 학자였던 벤야민은 파시즘과 근대체제의 기술주의적 측면을 파악하고 이를 비판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히틀러의 파시즘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근대가 가지고 있는 잔인한 폭력성의 한계를 논의하였다. 파시즘은 끝을 모르게 폭주하였다. 벤야민은 모든 직장을 잃고 프랑스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벤야민은 절망에 빠질 법도 했지만, 계속해서 연구하고 글을 쓴다. 사실 당시의 프랑스도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파시즘의 망령이 파리에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근대의 아케이드 그 자체와 같은 곳인 파리(도시)를 연구해야만 한다는 목적의식이 존재했다. 이 연구를 통해서 구원의 계기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그는 프랑스에서의 가난한 삶을 견뎌내며 글을 쓰면서 하루를 보냈다. 소수의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긴 했지만, 그 망명의 나날은 고독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고, 파리가 파시즘의 손아귀에 넘어갔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남아 도시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그리고 이내 버틸 수 없게 되어 피레네 산맥을 넘어 도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불시검문에 걸렸고 그의 도피 행렬은 저지되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벤야민은 준비해 간 모르핀을 투여하여 자살한다.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옮김, 민음사. 349쪽. (이하 문예이론)



벤야민이 죽은 해인 1940년에 쓴 글로 “역사철학테제”가 있다. 이 글은 그의 유작이다. 여기서 9번 테제는 파울 클레가 그린 천사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 천사는 우리가 흔히 아는 천사가 아니다. 새로운 천사는 메시아적 계기를 통하여 사회를 구원하리라 전망되는 벤야민의 학적 상징이다. 동시에 벤야민이 바라본 천사는 자신의 망명생활 겪었던 우울과 고독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 인간 세계의 비탄을 바라보고 충격에 빠진 천사이기도 하다.


나의 날개는 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나는 기꺼이 되돌아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비록 내가 영원히 머물더라도 나는 행복을 갖지 못할 테니까. - 게르숌 숄렘, 천사의 인사

클레가 그린 새로운 천사라고 불리는 그림이 하나 있다. 이 그림의 천사는 마치 그가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고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묘사되어 있다. 그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고, 그의 입은 열려 있으며 또 그의 날개는 펄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바로 이렇게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 ... 단 하나의 파국을 바라보고 있다. 천사는 머물러 있고 싶어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일깨우고 또 산산히 부서진 것을 모아서는 이를 다시 결합시키고 싶어한다. 그러나 천국으로부터 폭풍이 불어오고있고, ...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쪽을 향하여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앞에 쌓이는 잔해의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러한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문예이론, 348쪽.


지금까지의 글은 벤야민의 유고를 읽기 위한 예비지식이었다. 천사의 멜랑꼴리는 여기서 성립한다. 이 파국을 정지시키고 파괴된 것은 결합시키고 싶어하며, 비탄에 빠진 인간들 곁에 머무르고 싶어하지만 진보라고 일컫는 폭풍이 천사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폭풍은 음미하고 회고하고 반성하는 자들을 거세게 몰아붙여 갈기갈기 찢어놓을 뿐만 아니라 진보의 대열에 합류하라는 절대명령을 내린다. 천사의 우울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벤야민은 여기서 역사적 유물론을 통해 이 파국을 돌파하자고 제안한다. 지나간 과거를 그대로 서술하고 승자의 기억만을 반복하는 것에 그치는 역사주의를 거부하고, 벤야민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진리의 순간들을 음미하는 것이다. 과거에 억압되었고, 현재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들로부터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과도기로서의 현재의 개념이 아니라 시간이 그 속에 머물러 정지상태에 이르고 있는 현재의 개념을 포기할 수 없다. 그 까닭은 이와 같은 현재의 개념에 의해서만 역사를 쓰고 있는 현재가 정의되기 때문이다. 역사주의가 과거의 <영원한> 이미지를 나타낸다면, 역사적 유물론자는, 일회적인 과거와의 유일무이한 경험을 보여준다.

문예이론, 354쪽.



과거의 순간들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며, 그 순간들로부터 현재는 형성되었다. 그러나 천사와 벤야민은 그 섬광처럼 스쳐지나가는 순간이 사라져버릴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 순간이 사라지면 온전한 현실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의 순간들로부터 나타나는 섬광의 순간을 살펴보아야만 한다. 지금의 현실이 은폐하고 있는 과거의 순간들을 살펴봄으로써, 지금의 현실을 만들어온 그 계기들을 음미하고 반성했을 때 우리는 구원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과거는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어떤 은밀한 목록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8)


벤야민이 바라본 천사는 진보가 낳아놓은 비탄의 순간에 함께 고통하고 머무르고 싶어하는 천사였다. 이 천사는 잔혹한 인간들의 살육행위를 목격하였고, 그 파국을 염려하고 있기 때문에 우울하다. 이 멜랑꼴리를 바라본 벤야민은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섬광처럼 스쳐지나가는 과거의 순간을 파악하려고 애쓴다. 그 순간이 있기 때문에 충만한 현실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신념이 천사의 멜랑꼴리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4.


이 천사의 멜랑꼴리는 일본의 예술가에게로 전이되는데, 나카모리 아키나가 1991년 발표한 노래인 “물에 꽂은 꽃”에서는 천사와 대화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녀는 1989년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문제들로 인하여 자살을 시도했다. 1982년 중학생의 나이로 데뷔한 이후부터, 가족들은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고 오직 그녀의 수입에만 의존하여 생활했다. 결혼을 해서 가정까지 있는 언니나 오빠들마저 그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요구했기 때문에 사실 1989년 당시 그녀가 느꼈던 압박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게다가 하나뿐인 여동생은 언니인 자신에게 상의도 없이 누드집을 발간하기까지 했으며, 어머니가 유일한 버팀목인 듯 했으나, 일본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가부장제 사회이다. 집안에서 어머니의 의견이 수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그녀가 의지하길 바랐던 애인 콘도 마사히코는 다른 이와 바람을 피우기도 했으며, 가정을 꾸리자는 요청을 매번 거부하기도 했다. 콘도 마사히코 본인도 아이돌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연애는 여러모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이러한 끝없는 관심은 그녀를 더욱더 압박했다. 게다가 평소 친분이 있던 후배 가수 오카다 유키코가 1986년 투신자살하는 등, 여러 가지 사건이 그녀를 압박해왔다.

이러한 외적인 사건뿐 아니라 본인의 일에 있어서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끊임없이 압박했을 것이며 이러한 내면과 외면의 사건들이 합쳐져 1989년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수시간에 걸친 봉합수술 끝에 겨우 살아남았지만 일본 사회는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일이 생기면 모두에게 폐를 끼쳤다는 의미로 대국민사과를 해야 한다. 다만 그 방법이 문제였다.


나카모리 아키나는 애인이었던 콘도 마사히코 집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이에 콘도 마사히코의 소속사는 이 사건을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그녀에게 약혼식을 치른다고 거짓말을 해서 사과기자회견에 불렀으리라는 팬들의 추측이 존재한다. 이는 아직 추측의 영역이지만, 사과기자회견에 약혼식에나 쓸법한 금병풍이 쳐져있는 등, 여러모로 이상한 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 모든 사건으로 인해서 그녀는 음악을 하지 못하게 됐다. 1년여를 방황하던 그녀는 기존과 다른 밝은 곡으로 복귀한다. 어쩌면 다시 복귀한 것 자체가 기적일지도 모른다. 이 밝은 곡에 이어서 1991년에 본 곡인 “물에 꽂은 꽃”을 발표한다. 이 곡은 복귀곡과 달리 매우 어두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아이돌출신 가수가 부르기에는 다소 독특하게도, 천사와의 대화를 그 테마로 잡고 있다.


https://youtu.be/6Bpi6dEUphM

1991. 물에 꽂은 꽃


내가 이 곡을 집중해서 들었던 것은 작년 즈음이었다. 신종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 이 팬데믹을 기점으로 세상이 많이 바뀔 거라고 혼자 넋이 나가 생각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이 노래를 집중하고 들어보았는데, 이 곡에서 등장하는 천사는 벤야민이 주목했던 “새로운 천사”라는 확신이 들었다.


초승달로부터 플라티나의 빛이 들어와
분위기에 눈을 뜬 방의 한구석에서
흔들리는 천사를 봤어


방 한구석에서 레이스자락을 휘날리며 등장한 천사는 이내 달콤한 제안을 한다. 이 제안은 “자 쇼조노 코로니”로 시작하는 부분이다. 왜 천사는 이러한 제안을 하는 것일까? 인간의 비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천사에게, 그 비탄을 극복하는 길은 과거의 섬광처럼 지나가는 순간으로 아예 복귀하는 일이다. 벤야민이 인용한 게르숌 숄렘의 문구처럼, 천사는 "기꺼이 되돌아가고 싶었다."


소녀의 시절로
되돌려 드릴게요
예전에 사랑받았던 시절로
다시 한번 돌아갈 수 있어요


천사는 머무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랑을 잃어버리고 갈기갈기 찢어진 내면을 가진 인간에게 다시 예전의 시절로, 기억의 공간으로 되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코이스루토키로 시작하는 부분이다.


사랑할 때 영원함을 묶지는 않아
누구나 상처 입고 죄가 있지만
그것 또한 사랑스러운 걸
아아 미안해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어요
형태를 바꾼 아픔만을
손에 넣을 뿐이니까요


이것이 인간의 대답이다. 천사는 제안과 동시에 사랑받았던 과거를 보여준다. 이것은 행복했던 순간이지만, 인간은 사랑할 때 그 순간은 영원과 연결되지 않으며, 순간에 불과한 것임을 말한다. 과거의 순간은 섬광처럼 스쳐지나가는 순간이다. 그 뒤에 그 시절로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답한다. 그리고


코시테히토리로 시작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혼자서
어깨를 감싸고
꿈을 꿔요


천사의 멜랑꼴리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되는가? 과거 그 자체로 돌아가버리면 안 된다. 그것은 반동에 불과하다. 과거에 섬광처럼 스쳐지나갔던 진리를 더듬어 그것을 파악한 이후에, 그로부터 충만한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 이 현실을 살아가게끔 하는 것은 섬광처럼 스쳐지나갔던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꿈의 존재. 그것을 내면에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간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다. 이 능력을 발휘하여 순간과 같았던 과거를 현재시간의 충만함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은 벤야민의 말이기도 하다. “역사는 어떤 구성이나 구조물의 대상인데, 이 구조물이 설 장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현재시간>에 의해 충만된 시간이다. ... 그것은 이를테면 과거를 향해 내딛는 호랑이의 도약이다.”9)


과거의 순간들, 섬광처럼 지나가는 순간들은 진리의 계기이다. 그것은 벤야민이 전망한 메시아적 구원의 순간이다. 이 과거의 순간들은 재빨리 지나가므로 놓치기 쉽지만, 오히려 그 순간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현실은 충만해질 수 있다. 현실을 만들었던 과거의 순간들은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의 아우라를 통해 출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이유이며 멜랑꼴리의 극복이다.


그렇다고 천사의 멜랑꼴리가 전부 극복되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내면의 상처는 그 여파를 남기며 서서히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가려면, 구원받기를 갈구한다면 현재를 있게끔 만들었던 과거의 흔적을 더듬으며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하나의 해답이다.


그렇다면 천사는 이제 어디로 향할 것인가? 천사는 사이보그의 외양을 띠고 우리에게 나타나 존재의 초월을 이야기한다.




1)이마무라 히토시, 근대성의 구조, 이수정 옮김, 민음사. 39쪽.(이하 "근대성") / 이마무라 히토시의 책 말고도, 수잔 벅모스 또한 동일한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책으로 낸 바 있다. 수잔 벅 모스 "꿈의 세계와 파국 - 대중유토피아의 소멸", 윤일성, 김주영 옮김, 경성대학교 출판부 참조.

2)근대성, 39쪽.

3)근대성, 31쪽.

4)근대성, 51~52쪽.

5)근대성, 68~69쪽.

6)근대성, 69쪽.

7)강유원, 책읽기의 끝과 시작, 라티오출판사. 130~143

8)문예이론, 344쪽

9)문예이론, 353쪽.




2021-10-19수정

주석1의 내용을 보충하였습니다.

문단을 나누었습니다.

문장을 삭제, 수정, 보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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