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매달아 조종되는 나무인형인 마리오네트를 이야기하는 이 노래는 하나의 은유를 통해서 인간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마리오네트는 인간 그 자체이다. 인형극에서 등장하는 마리오네트는 인간의 의도대로 조종되는 조그마한 나무인형이다. 그들은 주체성이 없으며, 인간에 의해서 실로 조종되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런데 인간의 처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의 주관대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확실히 인간은 환상에 의해서 살아간다. 어떤 플랫폼에 접속하더라도 등장하는 광고의 행렬을 보면 알 수 있다. 광고의 요체는 간단하다. 즐기지 못하는 당신에게 즐기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주말로 넘어가는 새벽에 TV를 보면, 맥주 광고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맥주 한 잔으로 시원한 청량감을 느끼며 행복해보이는 모델의 모습과 더불어 시원한 해변가를 뛰어가며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즐기라는 명령이 수행된다. 맥주라는 “상품”을 구매하고, 그것을 즐긴다면 구매자의 기분 또한 청량하게 바뀔 것이라는 암시가 들어있다. 상품을 통해 즐기라는 명령인 것이다. 이렇게 즐기라는 명령은 어떤 상품에든 적용된다. 즐기지 못하는 것은 죄와 다름없다는 죄책감 또한 내포된 절대적 명령인 것이다.
이러한 광고를 보고 상품을 구매한다면, 그건 마리오네트와 비슷한 삶을 산다는 뜻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이 광고로부터 흥미를 끌어 상품에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마리오네트의 삶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나쁜 삶인 것도 아니다. 현대인의 삶 그 자체가 "마리오네트화"되었다는 사실판단일 뿐이다.
이 노래는 거기서 더 나아간다. 마리오네트적 인간은 추억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 자기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는 애처롭다. 이렇게 인간은 기억을 통해 살아간다. 자기에게 영향을 끼쳤던 타자의 흔적, 즉 기억이 없다면, 나의 존재도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타자의 흔적, 세계의 흔적에 상처받고 그로부터 아물지 않는 흉터를 스스로 보듬으며 살아가는 기억의 존재이며, 그래서 마리오네트에 불과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