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혹되어
가사는 https://blog.naver.com/kilman1237/222120654126
후기로 넘어가면 통합의 이미지 대신, 언어가 신체에 가하는 "충격"이 중요해진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언어세계로 진입하면서 한 번 죽고 다시 태어난다. 언어의 존재를 통해 기존의 시스템이 포맷되고, 새로운 언어 시스템이 인스톨되며 다시 태어난다. 이때 가해지는 최초의 언어는 신체에 침투에 침투하면서 충격을 준다. 이렇게 자연적 존재는 죽음에 이르고, 언어적 존재로 새로 태어나면서 하나의 쾌락이 일어난다. 최초의 언어와 마주친 순간 일어나는 쾌락은 언어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최초의 신체적 만족으로 각인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번개"라는 가사는 신체에 가해진 최초의 충격을 일컫는다. 이제 가사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오로라의 저편은 금단의 유혹이라는 언어-이미지로 제시되는데, 동시에 오로라는 자신이며, 나는 우울증에 빠져있다는 가사가 나온다. 이 가사를 풀어보면, 오로라의 저편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동시에 고정관념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쾌락을 향해 나아간다는 뜻이다. 기존의 쾌락과는 다른 방식의 만족인 것이다. 그런데 그 오로라는 동시에 "나"이며, 우울증에 빠져있다는 가사가 나온다.
사회의 고정관념으로부터 이탈하여 다른 세계를 얼핏 엿본다면, 거기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백지점임을 깨닫게 된다. 세상의 모든 규격화, 재단화로부터 벗어나 다른 세계로 나아가면 거기는 아무런 규격도 정형화도 질서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무의미의 세계를 바라다보면, 우울증에 빠진다.
우울증은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무슨 일을 하고싶지도 않고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으며 만족이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우울증이란 환상을 만들어내지 못하거나, 기존의 환상이 파괴된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얼어붙은 일루젼이라는 가사는 우울증의 상태를 일컫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시 환상을 만들어내려면,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에게 충격을 주었던 언어적 사건, 하나의 기표, 나만의 일자를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현대인은 자신에게 최초의 쾌락을 주었던 나만의 언어, 나만의 일자에 중독되어 그것을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이러한 의존적인, 중독의 시대에서 설령, 중독되어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건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만족이기 때문에 욕망할만한 값어치가 있는 사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