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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ht or Flight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거나

by 낫밷

불안하거나 두려울 때, 우리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감각이 예민해지며, 근육에 힘이 들어갑니다.

자율신경계는 이름 그대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이 현상을 'Fight or flight reaction(투쟁-도피 반응)', 즉 싸우거나 날르는(도망가는) 반응이라고 부릅니다.



투쟁-도피 반응은 사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생물에게 생존을 위해 필요한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사냥을 하다가 갑자기 마주친 멧돼지가 무시무시한 엄니를 세우고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선택은 두가지 :
1. 잽싸게 도망쳐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거나
2. 손에 있는 창으로 급소를 찌를 준비를 하거나

그려면 아무리 피곤해도 잠도 확 달아나며,
혈압과 심장 박동수를 급격히 높여 온 몸의 근육에 피를 공급해 힘을 쓸 준비를 하면서
혹시나 엄니에 찔리더라도 부푼 근육이 갑옷처럼 내부 장기 손상을 막아주고,
오감을 날카롭게 하여 주변 상황을 슬로모션처럼 살피게 되고,
당장 필요하지 않은 소화기능, 성기능 등은 셧다운하여 에너지를 필요한 곳에 몰아줘야 한다.



원시시대에서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직접적인 공포를 느끼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불안을 느낄 이유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습니다.


공포와 불안의 차이는,

공포원인이 직접 눈 앞에 있어 느끼는 감정이고

불안은 지금 내 눈 앞에는 없지만 앞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거나, 내면에 있는 것에 대해 두려운 마음입니다.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적과 하루 종일 싸우면서 몸에서 투쟁-도피 반응이 자꾸 일어나고,

그것이 반복되어 만성화되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신체 반응과 함께 불길한 감정과 생각들이 딸려옵니다.


우울증,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강박장애, 섭식장애....

다양한 질병으로 자리 잡아 우리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답은 "그럴 순 없습니다."


병적으로 너무 커진 불안을 일시적으로 줄여 주어 급성기를 벗어나는 정도는 해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불안은 없어질 수 없습니다. (생존에 필수적인 반응이라 없어지면 죽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싸움과 전쟁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도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수많은 것들과 싸우며 지내지 않나요?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불안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습니다.


전쟁에서는 사상자, 패배자도 있지만 분명 승자와 영웅도 있는 법입니다.



불안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불안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불안을 잘 컨트롤하는 방법은,

도망치고 싶은(flight) 대상을 정면으로 맞서 싸우자(fight)는 마음가짐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도망가는 것보다 싸우는 편이 덜 고통스럽습니다.


싸움을 이기겠다는 명확한 목표 아래,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계획을 세우면

오히려 몸에서 일어나는 여러 각성 반응을 나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도망가는 것은 잠시 벗어난다 해도 금세 또 길을 잃고 불안해집니다.

그러면 자율신경계의 긴장 반응은 점점 더 나를 괴롭히게 됩니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강력한 적에게서 위기에 몰리다가 결국 마지막에

"이렇게 된 이상, 배수의 진을 치고 너 죽고 나 죽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놀라운 힘을 발휘해 반격하여 악당을 물리치는 모습.


아마 모든 사람들이 그 장면에서 희열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싸움도 계속하다 보면 지치기 마련입니다.


평생에 걸친 싸움을 이어 나갈 수 있는 힘을 내기 위해서는,

그리고 종종 싸움에 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내려면,


내가 이 힘든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싸우고자 하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무엇'은 제각각 다를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행복하게 하는 것
지키고 싶은 신념
예술적인 아름다움
사회나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뜻


특히 요즘은 그 '무엇'이 실종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개개인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습니다.


상담하는 분들에게 '무엇을 위해 사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무엇을 위해 산다.'고 하는 경우보다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는 것 같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계층 간, 집단 간 싸우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

이 역시 '이걸 지키겠어!' 하며 싸우기보다는, '그건 되기 싫어!' 하며 서로 물어 뜯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살면서 한번쯤, 아니 되도록 자주


내가 평생, 죽어도 여한이 없이 좇을 만한 가치가 무엇인지 종종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그리하여 인생이라는 싸움에서 승리해 나가는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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