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 속 인지적 오류들
아내가 이사 후 오래된 짐들을 정리하면서 찾은 옛날 일기장을 보여주며 나에게 말했다.
우리 연애 때 처음 제주도에 놀러 갔던 날이
우리 첫째 딸 생일이랑 똑같아!
너무 신기하지 않아?
스물다섯 살, 만난 지 반년 된 풋풋한 커플이었던 우리는
각자 부모님들에게 적당한 핑곗거리를 대고 몰래 바다를 건너는 크나큰 모험을 감행했었다.
남자친구가 혹시 고약한 술주정이 있지 않은지 확인해 보려고
아내는 나에게 작정하고 술을 먹여보기도 했었고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고...),
준비가 부족한 여행에서 발생한 소소한 사건 사고들에 대응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아내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늘 말했었다.
그만큼 그 여행은 우리 관계에서 아주 인상 깊고 중요한 이벤트였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은 이벤트인 첫째 딸의 탄생이 그 여행 시작날짜와 정확히 같다니!!
우리는 그런 기막힌 우연에 신비감까지 느끼며
역시 우리 가족은 하늘에서 맺어준 운명인가 보다
하며 그날에 대한 행복한 의미부여를 했다.
물론, 그 두 사건은 운명보다는 우연히 일어난 개별적인 일들이었을 것이다.
그 여행 날짜가 첫째의 생일이 아니라 둘째의 생일이었거나,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었거나 하는 등
다른 특별한 날과 같았어도 거기에 우리만의 의미 부여를 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충분한 증거 없이 또는 아무런 증거 없이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임의적 추론(arbitraty inference)이라는 대표적인 인지적 오류에 해당한다.
돼지꿈을 꿨으니 돈이 들어오려나보다.
아침부터 접시를 깼으니 오늘 일진이 사나우려나보다.
이처럼 우리 생활 속에서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는 오류이기도 하다.
위에서 예를 든 '그래서 우리는 하늘에서 맺어준 운명인가 보다.'라는 논리적으로 틀린 결론이
내게는 가족 간의 사랑과 유대가 돈독해지는 좋은 효과를 주었으니 특별히 손해 볼 것은 없다.
그런데 우울감이나 불안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임의적 추론이 많아져
자신의 생각과 결론으로 인해 스스로 더 고통스럽고 불행해지곤 한다.
이런 간단한 업무조차 해내지 못한다니, 온 세상 사람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하겠지.
지나가는 사람이 날 쳐다본 이유는, 내가 너무 못생겨서 그랬을 거야.
남들은 다 잘 살고 있는데 나만 못 살고 있으니, 난 살 가치가 없어.
생각이 우울과 불안의 거센 바람에 휩쓸리다 보면
이 모든 것을 끝내자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게 가장 합리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인지적 오류라는 블랙홀로 끌려가는 사람을 붙들고 설득을 하려 해도 끄집어내기 쉽지 않고,
때로는 붙잡고 있는 사람까지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함께 끌려가는 경우도 생긴다.
인간은 늘 합리적이고 논리적일 수 없고,
때로는 그러한 특징이 생존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인지적 오류가 내 사고 체계를, 나아가서는 내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면
내 마음이 우울과 불안으로 점령당하고 있다는 신호다.
우리는 의식을 하면서, 또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수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산다.
그 생각들의 흐름이 어떻게 연결이 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오류는 없는지 한 번씩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져 보는 건 어떨까?
그러한 과정이 최근에 많이 들리는 '메타인지'라는 것이다.
건강한 메타인지를 사용하여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멈출 수 있다면 삶이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