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국극과 시대정신
드라마 ‘정년이’가 인기를 끌고 있다. ‘국극’이라는 다소 낯선 소재를 다뤘지만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1950년대 6.25 전쟁 정전 협정 체결 직후이다.
윤정년은 어느 날 목포에 공연을 온 여성국극단 ‘매란국극단’의 공연을 보게 된다. 소리를 해 부자가 되겠다고 다짐한 정년이가 ‘매란국극단’의 연습생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드라마는 1950년대를 풍미했던 실제 여성국극의 현장과 인물들을 모티브했다. 당시 여성 국악인들이 여성국악동호회를 만들고 ‘옥중화’를 공연하며 여성국극이 시작되었다.
여성국극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남자주인공역의 배우는 현재의 아이돌처럼 팬덤을 형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여성들에 대한 차별은 심했고 여성 명창들의 권리도 낮았다.
더구나 여성 명창들이 대개 권번(기생 양성소)를 통해 소리꾼이 되기도 해 여성 국악인들의 지위는 낮았다.
그렇게 10년의 전성기를 누린 여성국극은 텔레비전, 영화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여기서 1950년대에 활동한 천재 국악인들 중 한명으로 여성국극의 선구자 임춘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드라마 ‘정년이’에서 남장배우 문옥경과 국극단장 강소복이 임춘앵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여성국극 최고의 스타였으며 춘향전의 이몽룡, 자명고의 호동왕자 등 주로 남자 배역을 맡았다.
임춘앵의 삶과 예술 세계를 조명한 만화 ‘춘앵전’에서 알수 있듯이 임춘행은 무대 장치·의상·분장·조명 등을 활용한 화려한 볼거리, 소리·춤·연기가 조화를 이루는 총체극적 양식, 대중적인 음악으로 여성국극계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었다.
그녀의 행보는 남성 중심의 국악계 및 공연계의 차별과 천대에 맞선 파격적인 저항이었다.
이는 남배우가 여장을 하고 나오는 문화대혁명 이전의 경극과 대비되어 국악 및 대중문화사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한 공연 문화의 창시로 평가받을 수 있다.
드라마 ‘정년이’를 통해 사라진 여성국극이 재조명되면서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마침 ‘영동세계국악엑스포’가 내년에 열린다. 이 행사는 국악의 가치를 높이고 국악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열리게 된다.
2024년에는 국비 10억원이 기반 조성으로 지원되었고 2025년에는 11억원이 증액되어 21억원의 국비가 지원된다. 행사를 개최하는 영동군은 현재 23억원을 투입했다. 또한 영동군은 이 행사를 위해 공공디자인 사업비 9.5억원을 추가로 보조했다.
영동군은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 명인 난계 박연이 태어난 ‘국악의 도시’이다.
이를 기념한 영동난계국악축제가 60주년을 맞이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북'(Largest Drum)으로 2011년 기네스북에 등재된 '천고'(天鼓)가 설치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영동군에는 국악기 제작 방법을 전승·보존하는 ‘난계 국악기 제작촌’, 난계국악박물관, 난계 생가, 난계사 등이 있어 세계엑스포를 열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영동세계국악엑스포’가 국제행사등급 당초 B등급에서 A등급으로 상향되어 K-국악의 인지도를 높일 기회를 맞이했다.
그런 만큼 ‘영동세계국악엑스포’가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색다른 기획과 프로그램이 준비되어야 된다.
무엇보다 관 주도의, 주요 인사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영동군 주민들의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전국의 국악인들과 외국인관광객 등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되면 좋겠다.
드라마 ‘정년이’를 활용한 국극 소개 등도 국내외에서도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1950년대 시대의 어려움을 딛고, 아니 시대적 편견에 저항하고자 했던 여성국극이 재조명되는 것을 계기로 국악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여성 창작극이 무대에 등장했으면 한다.
또한 ‘영동세계국악엑스포’의 개막을 시작으로 아이돌 위주의 K-팝을 넘어 세대를 넘나드는 전통음악의 활로가 열리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