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조의 눈물 젖은 인터뷰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바디 포지티브'의 아이콘으로서 당당하게 자신을 사랑하자고 외치던 그가 어째서 이토록 무너져 내릴 수 있었을까. 뮤직비디오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춤추던 그의 모습과 현재의 의기소침한 모습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더 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는 단단
한 내면의 지지 없이 외치는 '긍정'이 얼마나 공허하고 위험할 수 있는지, 그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신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단단히 세우는 과정 없이 뿜어져 나오는 '긍정 에너지'는 일종의 마약과 같다. 이미 내면이 견고하고 영리한 사람들에게는 스쳐 가는 응원일 수 있지만, 불안정한 사람에게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해주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긍정의 구호만을 반복하는 것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당장은 위로가 될지 몰라도, 결국에는 더 큰 공허함과 자기기만으로 돌아올 뿐이다.
특히 "일단 자기 내면의 객관화는 잘 모르겠고 자신감과 당당함을 외치면 해결될거야!"라고 선전하는 미국 사회의 특정 분위기는 이러한 병리적 현상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겉으로는 진취적이고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이는 개인의 내면적 성숙과 기반을 간과한 채 결과만을 강요하는 폭력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압박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불안과 상처를 돌보기보다, 행복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연기'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결국 리조의 눈물은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자신감'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자존감은 외적인 조건이나 타인의 인정이 아닌,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끌어안는 온전한 자기 수용에서 비롯된다. 켄싱턴 거리를 헤매는 좀비들처럼, 공허한 긍정의 구호에 취해 방향을 잃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히 하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긍정 강박'과 진정한 자기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