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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Aug 21. 2022

여행의 끝.

 여행의 끝에서 나의 감정을 살펴보면 허무함에 가깝다.

여행을 하는 순간에는 현실과 동떨어져서 나의 감정을 여행지 곳곳에 부어두기도, 쏟아두기도 하면서 현실과 상관없이 행동하지만, 여행의 끝에 서있을 때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괴리감으로 인해 괜스레 허무해진다.




 몇 해전 여름, 제주도에 갔었다.

1년에 1~2번은 오던 제주는 올 때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같지 않고 계절 속에서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햇볕 내리쬐는 날 등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을 부리는 날씨 덕분에 더 많은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하루 한시가 한결 같이 똑같지 않은 순간순간을 느끼다 보면 제주라는 섬의 매력은 더욱 넘쳐난다.


 어느 맑던 아침,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내가 묶던 숙소에는 뒤뜰이 있었다.

마당에는 푸르른 녹색잎들이 펼쳐져 있었고, 새들을 이런 날씨를 반기듯 알아듣지 못할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너무 황홀한 순간임을 느낄 때 즈음 문득 여행이 끝나감을 느꼈다.

도심 속 새장처럼 꼬깃꼬깃 서있는 새장 같은 아파트에서 눈 비비며 일어나 부스스한 잠이 덜 깬 채로 출근하는 모습은 여행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과는 꽤 많이 달랐다.

그래서인지 괜히 화가 나기도 했다.

 우리는 여행을 하며 끊임없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한다.

막상 가면 기대와 다르게 다를 것 없는 것에 가끔 놀라기도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익숙함보다 낯선 여행을 꿈꾼다.

여행을 하며 무난하다는 어중간한 감정보다 허락되지 않는 감정을 행동을 적당한 선까지 허용해 주는 것이 여행이라 생각하기에 그 중독성은 담배보다 더 강한 것 같다.

그렇기에 허무함을 느끼면서도 다시 여행을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또다시 여행하는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그 안에서 부단히 노력하면서 산다.

끝과 시작은 늘 함께 있다. 시작이 있으려면 어떠한 끝이 있어야 하고 시작엔 늘 끝이 있다.

여행에서 느끼는 허무함은 끝을 알리는 신호일지 모르겠지만 다시 여행을 가기 위한 시작을 알리는 감정이기도 하다.

또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그 순간으로 달려가기 위해 노력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말이다.     

결국 돌이켜 보면 시작과 끝은 언제나 같이 있고 언제 가는 돌고 돌아 다시 또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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