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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Oct 05. 2022

보고 싶지 않은 말은 나에게서 떠나갔으면 좋겠다.

보고 싶지 않은 말은 나에게서 떠나갔으면 좋겠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나에게서 떠나갔으면 좋겠다.


그럼 

난 잘 살 텐데...




 글이 뜸했던 핑계를 말하자면 '태풍 힌남노' 때문이다.

추석 연휴는 앞둔 지난 9월 6일 초대형 태풍 힌남노가 내가 살고 있는 포항, 경주지역으로 왔다.

아무도 반기지 않았고 무사히 지나가길 바랬던 것은 바람에서 그쳤을 뿐.

무참히도 사람들의 삶을 앗아갔다.

살고 있던 집이 잠기고, 회사가 잠기고, 지하주차장에 물이 차올라 미처 피하지 못한 안타까운 희생도 발생했다.

태풍은 잠시였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릴 듯하다.

어떤 이들의 아픔은 오랜 시간으로도 보듬어 주거나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태풍 힌남노는 내가 다니는 직장도 비정상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불과 5년 전, 포항에 지진이 났다.

많은 이들이 이어지는 지진에 불안해하며 밤을 지새웠고 마음을 다친 이들은 불안증세로 병원을 찾기도 하였다.

나 역시도 겪어보지 않았다면 지진의 기억과 이번 태풍의 기억이 그냥 지나가는 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한 남의 불행을 쉽게 치부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인터넷과 SNS에 지진을 겪고 이겨내고 있는 이들에게 "적당히 요구해라." "세금으로 피해보상받는다." "세금이 아깝다."는 등의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하며 다른 이의 상처를 쉽게 평하는 자들이 있다.

막상 그 말을 하고 있는 본인이 겪게 된다면 감당하지 못할 나약한 자들의 말이겠지만, 인터넷 수없이 달리는 상대방을 향한 비방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박히고 있다.


 최근에 대전에서 화재로 인해 안타까운 목숨이 우리 곁을 떠났다.

인간의 삶과 죽음은 존재형태의 변화이거나 한 끗차이라 늘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겪어야 할 슬픔은 남은 이의 몫이고 세상을 미처 다 누리지 못한 죽은 자의 억울함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가끔 자신의 죽음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다른 이의 죽음을 폄하하기도 한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같은 죽음을 겪어야 할 사람이라면 불필요한 말과 행동으로 다른 이에게 상처 주지 말아야 한다.

다른 이의 슬픔을 공감은 못하더라도 잠시라도 애도해야 한다.


 TV와 인터넷, 스마트 폰 등 하루에도 수백수천 가지의 정보들이 우리의 머리를 지나가고 있고 필터링 없어 걸러지지 않는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살 순 없지만, 적어도 유해한 것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팩트가 아닌 것에 대해 봇물처럼 퍼트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하루가 지금보단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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