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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Nov 09. 2022

마음은 무뎌지지 않는다.

마음이 어디 있는지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은 가슴 한편을 가리킨다.

가슴 한편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존재하다고 생각하며 슬픈 일에는 먹먹한 가슴을 수없이 쳐낸다.




 최근에 불미스러운 사고로 꽃다운 젊은이들이 자신의 꿈을 미처 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애도하는 마음으로도 부족한 슬픔을 감당하고 있는 부모들은 마치 서하지통의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쉽게 무뎌지지 않는다.

마음에는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들을 다 써버리고 나면 힘을 잃고 마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슬픔과 분노의 감정들은 마음을 갉아먹지만 즐거움과 기쁨은 그 마음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 난 곳에 흉 지지 말라고 약을 바르듯 도포해놓는 것이라 전부라 생각한다.

결국엔 상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너무 슬픈 마음은 즐거움으로도 가려지지 않는다.


 나의 외조모는 1919년생으로 딱 100년을 사시고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20년가량은 자신의 기억을 하나씩 떠나보내며 세상을 버티셨다.

아마 기억을 하나씩 보냈기에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외할머니께 당신의 인생이 어떠했는지 물어본 적은 없지만 뵐 때마다 눈에 가득한 슬픔을 안고 있는 모습 잊히지 않는다.


 결혼을 일찍 하시고 그 시절에 소학교 국어 선생님을 하셨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10명을 자식을 낳았는데 첫째부터 여섯째까지 다 하늘로 먼저 보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놀람과 슬픔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그렇게 소중한 자식을 먼저 하늘로 보내고 무엇을 원망하며 무엇으로 버티셨을지 생각하면 살아생전에 굽어버린 허리가 할머니의 인생을 대변한다고 느꼈다.


 20년가량 하나씩 기억을 잃어 다 잃어갈 때쯤 할머니의 7번째 자식이자 첫째가 된 큰 외삼촌이 이부자리를 박차고 잠이 들자, 새벽에 일어나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하면서도 자식의 감기를 걱정하며 이불을 덮어주었고,


 내가 할머니를 뵙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알아보지 못하지만 나의 손을 잡고 빨리 가라 말하며 눈으로는 가지 말라 우는 모습은 지워지지 않는다.


100년의 세월을 산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무뎌지지 않다.


누가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 했던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것 같은 삶도 있다는 걸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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