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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Jun 10. 2022

느리게 걸어야 더욱 진한 감동, 인천 골목길

인연은 언제나 즐겁고 새롭습니다. 

사회학자 솔라 풀은 '사람이 평생 중요하게 알고 지내는 사람의 수는 3,500명'이라고 했습니다. 또 어느 자료에서는 평생 가깝게 지내는 사람의 수는 250명 내외라고도 하구요. 하지만 저는 저기서 말하는 수치에 훨씬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인연 맺는 것에 아주 신중한(?) 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제 성격이 사람을 좋아하고 잘 믿다 보니 과거에 너무 많은 고초를 겪어 왔던터라 그렇습니다. 또 돌아보면 젊었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내가 싫어하거나 불편한 사람들까지 안고 갈 마음의 여력이 없기 때문인 것도 같구요. 


어쨌든 인연은 새롭습니다. 그 인연이 사랑하는 사람이든,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든 아니면 다른 의미의 인연일지라도 그러합니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이른 아침, 새로운 인연으로 알게 된 분과 인천 골목길을 걸으며 사진에 대해 이야기 할 시간이 생겼습니다. 인천 1호선 도원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흩뿌리는 빗줄기 속에서 인사를 나눴습니다. 마치 오랜 인연처럼 웃으며 허물없이 대화합니다. 내리던 비도 멈추고 천천히 골목길을 걸어 보려고 무장을 합니다. 저와는 달리 그 분(이하 빈센트님)은 반바지에 등산화, 카메라 배낭으로 완전 무장을 했습니다. 저는 가져갔던 카메라도 귀찮아서 차에 두고 내립니다. 참, 게으른 자의 표상입니다. 지면에서 올라오는 습기가 은근히 더위를 느끼게 합니다. 


저는 남의 사진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에 조심스럽습니다. 사진이란 것이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기 때문이라서요. 물론 잘 찍은 사진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잘 찍은 사진이 반드시 '좋은 사진'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서 조심하는거죠. 그리고 제 자신도 미약한데 누가 누구를 평가하겠습니까.



빈센트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사진을 시작하신지 4년이 조금 지났다고 합니다. 저는 오래 전 그 시간즈음에 어떤 사진을 찍고 있었는지 잠시 생각해 봅니다. 사진에 미쳐 집 화장실에 암실을 만들고, 한달에 100피트 흑백 롤 필름을 두 세개씩 사용하던 것들이 생각납니다. 사진을 배워 보겠다고 정말 열심히 여기저기 머리를 들이밀던 생각도 납니다. 말 그대로 '라떼는...'입니다. 빈센트님은 제 '라떼는...'을 열심히 들어 주십니다. 역시 경청자가 있어야 케케묵은 이야기들도 빛을 발합니다. 



도원역에서 한참 철거중인 전도관 골목길을 잠시 둘러보고, 드라마 '도깨비'로 유명세를 탄 배다리 헌책방 거리로 걸어갑니다. 꿀꿀이 죽 배급터, 최초의 양조장, 80년대 후반까지 번성했던 배다리 헌책방 거리 이야기까지 쉴 새 없습니다. 하다보니 인천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품은 도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최초, 인천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들이 참 많습니다. 



'개항로'라는 이름으로 요즘 흥하고 있는 경동 골목길을 걸어 용동 큰우물 쪽으로 걷습니다. 용동 큰우물은 조선시대에 용동과 화수동에 있던 큰우물 중 하나입니다. 우물이 얼마나 크고 수원이 풍부했는지, 이 물을 길어 주변 몇 개동의 사람들이 식수를 해결했고, 또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빚을 정도였다고 하니까 진짜 '큰'우물이었나 봅니다. 용동 큰우물이란 곳은 지금은 깔끔하게 정비되고 있지만, 몇 년전 까지만 해도 골목골목 술집과 여관즐이 즐비했습니다. 동인천을 중심으로 인천이 번성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용동 큰우물을 거쳐 과거 인천 패션 1번지였던 신포동 패션거리를 지나 차이나타운까지 걸어갑니다. 갈증을 가시려 잠시 들른 카페에서 살펴보니 빈센트님은 땀이 흥건합니다. 제 생각만 하고 무리해서 걸은게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혹시나 물어보니, 걱정말라고 아직은 충분히 걸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왕 걷기 시작한 거니까 한 코스 정도는 다 돌아보자 마음 먹습니다. 



식사를 하고 차이나타운 위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약한 햇살에 앉아 구걸을 하고 계신 분이 보입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릅니다. '사람들은 모두 예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한다'는 뻔한 명제를 속으로 생각하면서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얼른 자리를 벗어나 자유공원을 크게 돌아 걷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남자 둘이서 땀 흘리며 지친 모습으로 걷고 있자니 속으로 웃기기도 합니다.



자유공원 후면 비탈에 있는 '제물포 구락부', 일제 강점기에는 말 그대로 구락부(클럽)로 사용됐고, 해방이후에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어 왔던 곳입니다. 지금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서 많은 것들을 시민에게 주고 있습니다. 제물포 구락부로 가는 길에 앞서 가는 여자 분 발걸음이 바쁩니다. 살짝 셔터를 누르고 또 다시 인천 역사 이야기와 사진 이야기로 '라떼는...'을 시전합니다. 



자유공원을 내려오면서, 더이상 끌고(?) 다녔다가는 다시 보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발걸음을 멈춥니다. 제가 자주 들리는 카페 'WKND : 위켄드'에 들립니다. 시커먼 남자 둘이 달달한 음료를 마시며 피로를 씻어내고 땀을 식힙니다. 빈센트님 겨드랑이에 생긴 얼룩을 보면서 긴 하루의 끝을 맺습니다. 길고 길었던 역사와 사진 이야기도 멈춥니다. 장장 5시간 동안의 골목길 여행이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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