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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Aug 08. 2022

물고기가 떠다니는 습기 가득한 날, 남한산성

물고기가 하늘에 떠다닌데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습기 많은 날에 남한산성에 다녀왔습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입구>

비 소식이 계속이라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 흐리기만 하고 비는 없는 일요일 아침입니다. 

쓰던 글을 잠시 멈추고 구석에 놓여있던 카메라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습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입구 나무>

남한산성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김 훈의 소설을 바탕으로 했던 동명의 영화도 본 적이 없구요. 이 계절의 산은 색이 예쁘지 않아서 촬영할 게 있을까 걱정입니다. 습기로 인해 안개도 가득한 상황이라 시야도 좋지 않습니다. 그러고보니 사진 촬영에 안 좋은 조건들은 다 갖추고 있네요. 정보도 없고 여건도 도움이 되질 않고.

<남한산성 한남루>

시간에 맞춰서 남문 주차장에 도착하니 만나기로 한 빈센트님은 도착해 있습니다. 의리없이 아침 먹고 왔다 길래 한 번 째려주고 나서 편의점 라면으로 허기를 메꿉니다. 굳이 삼각대를 메고 가겠다는 걸, 너무 더우니 장비는 줄이자고 설득해서 차로 보냅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남한산성 1코스 입구>

남한산성 종로로터리를 출발해서 북문과 서문을 거쳐 남문으로 돌아 내려오는 1코스를 선택합니다. 소요시간은 80분이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사진을 찍다보면 세 시간은 너끈합니다. 예상대로 산은 짙은 녹색으로 뒤덮여 예쁜 구석이 없습니다. 날씨 탓에 내려다보는 도시도 흐릿하게 물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평이한 코스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눈이 따가울 정도로 흐르는 땀에, 내가 왜 이 더운 여름날 사진을 찍자고 한 건지 후회됩니다. 너무 더우니까 집중해서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습니다. 이건 출사가 아니라 트레킹입니다.

계속 오르막입니다. 여러 번 와봤다는 빈센트님의 안내로 ‘여기가 아닌가 봅니다’를 되풀이하며 계속 오릅니다. 높이 오르니 그나마 시원한 바람이 불어 세상 다 가진 듯 시원합니다. 성곽 아래로 서울 시내가 보일까 해서 내려다보니 흐릿한 도시가 떠다닙니다. 

<남한산성 서문 전망대에서 보는 전경>

산성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땀도 식힌 우리는 수어장대와 행궁을 들리기로 하고 내려갑니다. 카메라는 이미 짐이 되어 버린 지 오랩니다. 빈센트님이 빌려 준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견뎌냅니다.

<남한산성 서문>

행궁 입장 시간이 20분 정도 남아 있어서 편의점으로 향합니다. 역시 여름에는 ‘아아’가 최곱니다. 원 샷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행궁으로 향합니다. 부녀지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정문을 지나가는 틈을 노려 셔터를 누릅니다. 

<남한산성 행궁 입구>

좁은 공간에 건물을 참 많이도 만들어 놨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란의 와중에도 갖출 건 다 갖췄나 봅니다(삼국시대부터 지어진 행궁을 축조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행궁을 빠르게 둘러보고 나오니 이제 슬슬 배가 고파집니다. 산채정식과 숯불불고기를 하는 집으로 들어갑니다. 더위에 지쳐서인지 시원한 물만 몇 컵 들이킵니다. 역시 여름에는 사진 생활은 자제해야겠습니다. 맛있는 밥값을 계산하신 빈센트님께 감사드리고 각자 차에 오릅니다. 아직 12시 전이라서 그런지 올라오는 차들이 많습니다. '나는 벌써 내려간다~!'

<행궁 앞마당과 식당 백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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