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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Aug 26. 2022

마리오 보타, 그리고 남양성모성지

참 즉흥적입니다. 날이 계속 흐리고 습한데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카메라를 메고 이른 새벽 집을 나섰습니다. 너무 책상 앞에 오래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다보니 ‘어디라도 가야겠다’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금방이라도 한 바탕 비가 쏟아질 것 같으니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데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했다는 ‘남양성모성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남양성모성지는 1886년 흥선 대원군에 의해 벌어진 대규모 천주교 탄압인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순교지라는 안내가 보입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성모성지 등등 여러 가지 내용은 무시하고 바로 길을 나섭니다. 이른 새벽 일찍 갔다가 돌아와서 식사를 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합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주차장에 저를 제외하고 2대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저처럼 사진 촬영을 하려고 온 것은 아닐 듯 하구요. 계속해서 내리는 비로 공기는 물기를 가득 머금었습니다.

주차를 하고 대성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저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입구부터 ‘공사중’이란 안내문과 함께 멀리 보이는 성당까지 전부 파헤쳐 놓은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사진 촬영을 하려면 미리 정보를 파악해 두고 계획적으로 와야 했는데 너무 갑작스런 방문에 이런 경우를 겪어도 싸다 싶습니다.

가까이 가서보니 월요일(지난 8월 15일의 일을 이제야 정리합니다)은 대성당을 열지도 않습니다. 사제들이 월요일에 쉬는 건 당연한 건데 겉모습만 구경하다 가게 생겼습니다. 그것도 반쪽만 말이죠.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대성당 주변을 천천히 돌아봅니다. 독특한 구조이면서도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지어졌다는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뒤쪽으로 돌아가자 잠시 사진 촬영을 허락한 듯 해가 잠깐 비춥니다. 몇 장의 사진을 찍고서 숲속으로 보이는 ‘십자가의 길’로 걸어갑니다. 

십자가의 길 12처를 모두 돌면 밖으로 연결되겠거니 했던 계산도 오류였습니다. 고스란히 갔던 길을 되돌아 나오면서 모기와 날파리들에게 공격을 당했습니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봅니다. 입구 쪽에 마련된 마리아 상 기도실에 잠시 들러 봉헌을 하고 땀을 닦습니다. 이런 날씨에, 이 이른 시간에 내가 뭐하고 있는 건지 웃음이 납니다.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차들은 4-5대 정도입니다. 역시 시원한 에어컨이 최고입니다. 몸에 열도 많은 제가 무슨 여름에 사진을 찍겠다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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