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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Feb 19. 2023

이 겨울 끝내기 전 정리하는 제주 여행 1

오랜만에 들러 본 제주도였습니다. 2년여에 걸쳐 부모님이 두 분다 소천하시고 나니, 명절에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갑작스럽게 결정된 제주도 여행(?)입니다. 저에게 갑작스러움은 일상이니까요.

설날인 22일 아침, 제주는 저를 가득 찌푸린 얼굴과 굵은 빗줄기로 맞이합니다. 거센 강풍에 우산은 소용도 없어지고, 카메라 렌즈 얼룩을 닦으며 구도를 잡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사계 해변에 몰아치는 비바람에 사진은 고사하고 추위에 손가락이 아립니다.

오늘 날씨만 보면 제주도는 이미 봄이 온 듯합니다. 바람은 비록 거세고 빗줄기에 손은 시리지만, 바닷가를 돌아 나오는 길에 만난 유채꽃은 봄인 듯 저를 반깁니다.

몸도 녹일 겸 해서 요즘 핫 하다는 카페를 찾아 가봅니다. ‘카페 무로이‘ 요즘 유행하는 기하학적인 형태의 건축물입니다. 빛이 있는 날이면 참 괜찮은 촬영 공간이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두운 실내에 갓 구운 빵내음과 커피의 진한 향이 가득합니다.

잠시 몸을 녹이고 독특한 건축물인 ‘이타미 준 뮤지엄’ 일명 유동룡 박물관을 검색해 봅니다. 안타깝게도 설 연휴에는 휴관으로 되어있네요.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외관이라도 볼까해서 차를 움직입니다. 한국적인 것들과 자연을 건축물에 담으려고 생전에 노력했다는 이타미 준(유동룡)의 제주도 건축물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정작 실내가 보고 싶은데 휴관이라 아쉬움에 뮤지엄 외부만 두세 바퀴 돌아봅니다. 제주도의 토속적인 부분과 이타미 준의 건축 정신을 담았다고 하니 더 궁금한 내부입니다. 다음 제주도에 올 때 다시 들려 보기로 마음먹고 제법 가늘어진 빗줄기에 호텔로 향합니다. 호텔로 아무 생각 없이 가고 있는 도중에 길 옆 언덕에 홀로 서 있는 엷은 색 노란 건물이 보입니다. 얼핏 봐도 교회 건물입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차를 돌립니다.

‘산방산이 보이는 교회’. 텅 빈 언덕위에 덩그러니 지어진 교회 건물은 구조가 참 독특합니다. 두 개의 원기둥을 맞붙여 놓은 듯 한 모양에, 2층 높이로 지어져있지만, 2층 부분은 빈 공간으로 남겨 빛이 들어오게 만들었습니다. 작은 교회를 지양하시는 목사님께 잠시 이야기를 듣고 나와 보니, 말 그대로 산방산이 바로 보이고 그 아래 펼쳐진 풍경도 저녁 시간의 고즈넉함을 더합니다. 

호텔로 가던 도중 잠시 들린 협재 해수욕장은 바람이 더욱 드셉니다. 촬영을 포기하고 바다만 바라봅니다. 흠뻑 비에 젖은 제주도에서의 첫 날은 이렇게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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