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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수창 Jan 12. 2024

사진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3)_무엇을과 어떻게

(여기 첨부된 사진들은 제가 사진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사진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으셨던 아버지 덕분에 집에서는 항상 카메라를 만질 기회가 많았습니다. 반자동 캐논 AE-1을 비롯해서, 별 세 개 로고가 선명했던 삼성 미놀타 카메라, 24장 롤필름을 넣으면 50장을 촬영할 수 있었던 올림푸스 PEN-E 등 많은 카메라들이 제 주변에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제 돈으로 샀던 카메라는 대학교 시절의 니콘 FM2입니다. 


FM2 바디 하나와 50mm 표준 렌즈로 시작된 취미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사진을 배울 수 있을까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만들었습니다. 거리가 좀 떨어진 어느 사진관에서 사진을 가르친다는 정보를 듣고 무작정 찾아가서 가입을 했습니다. 지금이라면 그 사람의 권유에 응하지 않았겠지만, 그 사진관의 사장은 카메라부터 구입하도록 권했습니다. 자기가 소개하는 카메라 상에서 말이죠. 

중고로 비싼 카메라를 덜컥 사들고 나니 사진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첫 수업에서, 지금은 절판된 사진기술개론(유만영, 1980, 학창사)을 처음 접했습니다. 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진계는 일본에서 전해진 사진기술이 판을 치던 때였습니다. 이 책도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썼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사진기술을 우리 상황에 맞도록 저술한 것이었습니다. 그 책에 많은 오류가 있었음에도(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 원서를 수입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 오류를 알게 됐죠), 그 당시에는 정말 열심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사진을 배우던 30년 전 그때나, 사진을 처음 접하는 요즘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록과 재현’입니다. 사진이 발생한 본연에 충실한 기록과 재현, 현재성과 실재 말이죠. 제 경우를 보더라도, 사진을 처음 배울 때, 우선 노출의 3요소에 대해서 간단하게 배운 다음, 노출계를 사용하는 법 등을 익히고 사진을 찍으러 나갑니다. 앞에서 이끌어 주시는 분들은 얼마나 아우라가 풍겨 나는지, ‘나는 언제쯤이면 저렇게 잘 찍을 수 있을까?’ 감탄만 하던 때였습니다. 


그렇게 2-3년이 지나면 저도 이제 ‘재현’에는 능숙해 집니다. 소위 말하는 ‘뇌출계’와 ‘사진기술’에 대한 습득으로 사진에도 자신이 생깁니다. 정신없이 산으로 들로 다니다가 문득, 빠르면 3년 늦게는 5년 안에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난 지금 뭘 하고 있지? 대체 왜 매번 똑같은 사진을 찍고 있는 걸까? 사진을 한다는 것이 이게 과연 정답인가? 나는 사진사(찍사)인가 사진가인가?’ 참 많은 생각들이 들면서 셔터를 누르던 손이 주춤거리게 됩니다. 아기가 이유식을 벗어나서 조미료가 들어 간 음식 맛에 눈을 크게 뜨듯, 공양미 삼백석에 너무 놀란 심봉사가 번쩍 눈을 뜨듯 갑자기 깊은 회한이 드는거죠. 

지금까지는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치중해 왔었는데, 어느 순간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즉, ‘어떻게’가 더 중요한 부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진을 말하면서 지금껏 재현을 하는 방법만 배워왔던 것입니다. 사진에 있어서 재현은 자기만족과 성취욕구 해소를 위해 이용될 수 있지만, 그것이 더 나은 길로 나가려면 필요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겁니다. 


사진이 예술이라고 하는데, 과연 내 사진은 예술인가? 예술은 무엇을 말하는 거지? 나는 사람들이 비꼬아서 말하는 ‘찍사’인가, 아니면 사진가 혹은 사진작가인가? 텅 빈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의자처럼 비어있는 시간이 다가옵니다. 

방법이 없을까 찾아 헤맸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이렇다 할 사진관련 서적들이 없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뛰어난 사진가들이 많이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쉽게 접할 수 없던 상황에서는 알 수 없었죠. 오랜 시간 방황하다가 90년대 후반 들어 외국 원서들이 들어옵니다. 필름에서 디지털 사진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미국 현지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던 필름 사진가들이 아시아로 눈을 돌린 것인데, 그 시작이 일본과 우리나라였죠. 


시리즈로 100만원이 넘는 책들을 사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된 내용이 사진기술에 관련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중간 중간 보이는 조명에 대한 내용과 구도에 대한 것들이 신경을 쓰이게 했습니다. 비싼 돈을 들여서 대가라고 하는 사람들과 대학에서 강의를 들어도 정확한 답변을 얻기 힘들었습니다. 시대는 산업혁명과 같은 대변혁을 거쳐 나가고 있는데 현실은 르네상스 타령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예술은 의식의 가치입니다. 예술이 인간의 의식, 즉 사고와 감성의 영역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예술이 단순한 시각적인 표현을 넘어서, 작가의 내면적인 경험과 감정, 사고의 과정, 개념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술이 단순히 예쁜 그림이나 사진, 아름다운 음악을 넘어서 인간의 내면에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사회적, 정신적 측면에서 깊은 의미와 가치를 제공한다는 말입니다. 


예술은 지금껏 묵인했었던 관습에 대한 저항이며 사물의 본질에 대한 미학적 인식입니다. ‘무엇을’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로 청소년기를 벗어나 어른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창조적이란 새로움에 있고, 새로움은 예술의 전통적인 틀을 깨거나, 작가의 개념이 포함되어 새롭게 재해석할 때 나타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롭게 표현하는 해석이란 것입니다. 


어떤 대상이나 오브제가 주어지면, 우리는 그것을 왜 찍어야 하는지, 왜 그것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해야 합니다. 문제제기와 재해석은 창작의 씨앗이며, 이 순간 철학적인 사유와 미의식이 나타납니다. 단순히 보이는 현상과 물상에 빠져들면 대상의 본질에서 멀어집니다. 대상의 본질에 대한 몰입을 통해서 재해석을 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해야 할 핵심은, ‘사진을 잘 찍었는가, 못 찍었는가’가 아니라, ‘내 사진은 새로운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많이 보던 것인가’입니다. 의식적으로 질문하고 고민해서 그 임계점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창작이 되는 것입니다. 

작품에 대상의 본질과 개성이 들어있는가? 어디서 본 듯한 모방인가 아니면 창작인가? 질문과 새로움 속에 작가의 개성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의 개성은 본성입니다. 예수님의 독생자, 부처님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에서 말하는, 즉 ‘유일성, 존귀함’입니다. 본성을 벗어나 이미 사회화 된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 것인가 고민하게 되고, 사회적 규범에 얽매이게 됩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 의해 타자화 된 나를 벗어나 작가의 본질을 돌아볼 때 진짜 창의성이 나오게 됩니다. 작품은 작가의 본성과 기질, 살아 온 날들의 경험입니다. 이런 것들이 예술가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는 기준입니다. 


예술은(사진은) 끊임없는 질문과, 창의적인 재해석을 통해 발전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각을 표현하려고 노력할 때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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