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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Mar 03. 2024

우리는 모든 것을 보지만,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작가님, 뭘 찍으신 거에요?

무엇을 찍은 것 같습니까?

글쎄요, 그냥 도형을 찍은 것 같기도 하고, 그림을 촬영한 것 같기도 하네요.

하하, 아닙니다. 미술관 복도를 촬영한 겁니다.

그래요? 독특하네요. 어떻게 이렇게 촬영하신 거죠?


이 사진은 어디에서 어떤 조건으로, 어떻게 촬영했다는 구구절절 설명이 이어집니다. 그 긴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아 이렇게도 표현이 되는군요. 비로소 이해를 합니다.

우리는 피사체를 물리적으로 보고 표현할 수 있지만, 빛이 환한 대낮에도 그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감각은 다양한 것들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들이 그 피사체의 실재, 즉 본질에 이르기가 힘이 듭니다. 바로 이 사진을 촬영하는 순간에도 눈에 보이는 ‘현상’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과연 내가 표현하려는 본질은 무엇인가에 더 집중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현상이 현상이 아닌 또 다른 실재로 보일까’를 고민한 것이죠.

우리는 모든 것을 보지만,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는 말은, 사진이 현실을 담아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중성과 복잡성을 반영하는 말입니다. 사진과 현실 사이의 독특한 관계를 강조하는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선택과 배제, 왜곡과 해석, 의도와 표현 등의 이중성과 복잡성은 다양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사진은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현실에 대한 제한적이고 선별적이며 조작될 가능성이 많은 것도 사실이란 것입니다.

사진은 처음 시작한 그 순간부터 끊임없이 우리에게 근본적인 문제를 질문하며 괴롭힙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실재와 현실의 간극을 통해 아래와 같은 다양한 질문을 던집니다.


촬영할 주제와 소재는 무엇인가?

어느 것을 선택하고 어느 것을 버릴 것인가?

내가 촬영하려는 피사체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본질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어떻게 우리는 이 확실하지 않은 것들을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가?

내 사진은 과연 남과 다르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사진은 멋진 풍경부터 아주 미세한 디테일까지 포착할 수 있는 기술적인 잠재력을 자랑합니다. 찰나의 순간을 정지시켜서 사람이나 사건, 사물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은 그 찰나의 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 프레임에 선택되지 않은 나머지, 즉 주변 상황이나 소리, 진실 또는 거짓 등을 배제합니다. 사진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완전하게 진실이거나 이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원래의 상황이나 장면, 그리고 진실의 많은 부분을 작가의 관점에서 생략합니다.


현실을 담아내지만, 동시에 그것이 현실을 완전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진작가는 구도나 빛, 초점 등을 사용해서 특정 장면을 강조하고 다른 측면을 지나치게 만듭니다. 장면을 조작하는 이런 기능은 사진의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사진작가의 선택과 시각은 사진에 자신만의 해석을 부여합니다. 사진은 단순하게 현실의 기록이거나 진실이 아니라 특정한 미학적인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구성(Composition)’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성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지만, 한계를 드러내는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목에서 제시했던 명제, ‘우리는 모든 것을 보지만,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는 우리가 피사체를 보는 것에 대한 단순한 시각적 인식을 넘어서, 그 안에 내재된 더 깊은 의미와 감정을 인식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무엇인가 있지 않은지, 그것을 나는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사진이, 우리에게 다른 시선과 시각을 제공하고 우리가 피사체를 대하는 관점을 변화시키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장소 : 리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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