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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Mar 10. 2024

봄 햇살에 골목은 색을 입는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카메라를 둘러메고 집을 나섭니다. 어느 분의 렌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라, 저도 오늘은 35mm 단렌즈만 들고 나왔습니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 마구 광합성이 되는 듯합니다. 비타민 D가 가득 차는 느낌입니다.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오늘은 자주 다니지 않던 골목길을 걸어보려 합니다. 어떤 느낌들로 제게 다가올지 가슴 설렙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으며 약간은 서늘한 봄바람을 느낍니다. 햇살 아래에서는 따스하지만 그늘은 아직 한기가 느껴집니다.

불청객을 바라보는 강아지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카메라를 들이 대니 목이 터져라 짖어댑니다. 조용히 하라고 한마디 하고 돌아섭니다. 

얼마 만에 보는 화창한 날인지 모르겠습니다. 골목길 구석구석 보이는 색들이 봄볕에 더욱 화사합니다.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 저를 유심히 보던 나이 드신 분이 갑자기 말을 걸어옵니다. ‘내가 40년 전에 연애할 때 왔던 학다방이 아직도 여기 있더라고. 아직까지 장사를 하는 게 신기해’ 제가 묻지도 않았고,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습니다. 매몰차게 돌아서면 좋으련만, 그것이 또 안 됩니다. 이야기는 추억을 넘어서 최근에 본인에게 일어난 심근경색과 죽음에의 경험까지 확장합니다. 오래된 지인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시는데 끊을 수가 없어 10분을 잡혀 있다가 인사를 하고 빠져 나옵니다.

우연히 만난 사람도 오랜 지인처럼 이야기 할 수 있고, 어떤 것을 물어도 경계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그런 골목길의 인심과, 다양한 색과 다양한 모습을 가진 구도심 골목길을 제가 좋아합니다.

긴 길을 돌아 다시 집으로 향합니다. 골목길은 언제 걸어도 뭔지 모를 정겨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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