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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May 05. 2021

스마트폰으로 만나는 세상, 골목
- 인천 개항로

인천의 핫플레이스, 개항로

요즘 인천의 Hot Place, 인천 개항로의 이면을 걷다



봄인지, 여름인지 아니면 다시 겨울인지 모를 날씨가 연속입니다. 잠 못 이룰 정도로 심하게 내리던 비가 그친 아침, 햇살이 너무 좋고 공기도 신선합니다. 어린이 날인데 뭐 안 해주시냐는 진짜 어린이 하나와 늙은(?) 어린이 하나를 돈으로 매수하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열심히 글을 쓰는데 또 역마살이 꿈틀거립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지는 오후 시간을 느껴보려 집을 나섭니다. 


요즘 인천에서 대내외적으로 핫한 동네인 '개항로'를 걸어 보기로 마음먹습니다. 개항로의 끝 지점인 배다리 철길 사거리에 주차를 하고 골목을 걷습니다. 한적한 골목길엔 길냥이가 외부인인 저를 지켜보며 다가옵니다. 고즈넉한 오후의 골목길입니다.



인천 개항로는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동에서 동구의 배다리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거리를 말합니다. 원래는 신포동, 답동, 경동의 싸리재로 이어지는 직선 고갯길을 말합니다만, 2020년부터 한 때 인천의 최고 번화가였었던 이 곳을 살리겠다고 '개항로 프로젝트'란 것을 시행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지역이 구한말 개항장이었던 것이 명칭의 유래입니다. 


개항장 거리는 배다리 삼거리부터 올라가 보면, 가구거리로 유명했던 경동과 싸리재 고개, 대한민국 최초의 현대식 실내 극장인 '애관극장(아직 영업 중)', 그리고 구한말 건축된 '답동성당'등 유명한 곳들이 있습니다. 또한 길을 건너면 닭강정과 중국식 공갈빵과 신포 만두 등 먹을거리가 풍부한 '신포시장'이 있습니다. 개항로는 신포시장의 공영주차장까지로 형성되어 있지만, 신포시장에서 인천 차이나타운 방향으로 조금만 더 가면, 구한말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계지와 일본 제1은행, 인천 제18은행, 일본 영사관이었던 중구청 등의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현재 카페로 성업 중인 일본식 가옥들도 아직 많이 남아 있고요.


밤에 촬영한 인천개항박물관(그 뒤로 일본제1은행)과 일본 가옥 거리(현 카페들 성업중)


사실 전 '개항장'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국주의 자본 침탈의 역사를 마치 우리가 자발적으로 문호를 개방한 것처럼 보이는 '개항'은 거부감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조계지가 무엇이었는지, 일본 은행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지금 카페로 성업 중인 저 건물들이 조선인 하역 노동자들이 강제로 거처했던 숙소였다든지 하는 것을 아무도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에서는 예쁘고 예쁘게 미화시켜서 '개항장'으로 둔갑시켜 관광객 유치에 한몫을 하고 있으니 행정기관으로서는 좋은 일이겠죠. 


개항장 거리의 시작인 '신포시장'은 하도 유명해서 제가 굳이 방문할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제가 신포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사진 촬영을 했을 때만 해도 다양한 느낌이 있어 좋았는데 요즘은 먹거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통시장으로서의 기능은 잃었지만 먹거리가 새로운 사람들과 젊은 층을 유입시키고 있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면의 본고장으로 칼국수와 쫄면, 그리고 닭강정, 중국식 공갈빵, 신포 만두 등 한 번쯤 들려볼 만한 곳입니다.  



신포시장에서 배다리 방향으로 길을 건너면 바로 답동성당이 있습니다. 1889년 건축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군부독재 시절에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답동성당을 지나쳐 경동 거리에 들어서면 바로 애관극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실내 영화관으로 번창하다가 이제는 겨우 명맥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애관극장을 지나 정형외과 건물을 카페로 바꿔서 성업 중인 '브라운핸즈'를 지나쳐 갑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보다는 덜 해도 아직 사람이 많습니다. 


브라운 핸즈를 지나 싸리재 나무가 많아서 '싸리재 고개'로 불리던 경동으로 들어섭니다. 처음에는 포목점과 양화점, 양복점들이 많았었다가 대규모 가구거리를 형성했던 곳입니다. 일제시대부터 양약방과 한약방 등도 많이 모여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80년대 영화관에서 영화 시작 전 나오는 광고에 항상 등장하던 '동서대 약국'과 '싸리재 약국'이 있던 곳입니다. 현재 이곳은 카페와 양과자점, 마카롱 가게, 통닭집 등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어린이 날을 맞아 거리에 즐비한 어른이들(?)을 뒤로하고 개항로 뒷골목으로 들어갑니다. 그 옛날의 번성했던 곳임을 증명하듯 뒷골목에는 낡은 모텔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넘어가는 해를 받은 골목 사이로 아주머니 한 분이 지나갑니다. 고맙게도 붉은색 옷으로 대비를 맞춰 주셨습니다.



뒷골목을 따라 조금 더 내려오니 맛있는 냄새가 코를 스칩니다. 일본식 구옥을 Pub으로 바꾼 곳입니다. 은은한 주황색 전구가 빛을 발하고 담장 밖으로 뻗어 나온 나무가 정겨움을 더합니다. 얽기섥기 엮어진 붉은 벽돌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식욕이 돌지만 아쉬움을 뒤로한 채 조금 더 내려옵니다. 예전에 모텔로 번성했었을 또 다른 건물이 보입니다. 건물에 비가 새는지 방수를 한 흔적들이 추상적 느낌을 더합니다. 



아무도 없는 뒷골목을 조금 더 걸어 내려옵니다. 요즘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다는 옛날식 전기통닭집이 보입니다. 별다른 장식이나 인테리어 없이 뒷마당에 상 몇 개 놓은 포장마차 같은 느낌입니다만 그 또한 좋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외식하러 가던 전기 통닭집이 생각납니다. 아참, 개항로와 신포동에 오시면  인천 개항로 특산품이라는 '개항로 맥주'도 맛볼 수 있습니다. 



골목을 돌아 나오니 어느덧 개항로의 끝인 배다리 삼거리가 보입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와 성냥 박물관, 우각로까지 이어지는 곳입니다. 해는 이제 거의 건물 뒤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한 시간 반의 오후 산책이 마무리되는 시간입니다. 인천, 특히 중구와 동구, 미추홀구로 이어지는 이곳은 언제 걸어도 좋은 공간들입니다. 저의 골목 앓이는 멈추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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