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술적인 요소를 어느 정도 마스터하고 나면, 여기저기서 반드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인문학적 깊이와 미학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고 말이죠.
그래서 여기 저기 인문학 강좌들을 기웃거리게 되고, 내 사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 열심히 시간과 돈을 투자하게 됩니다.
미학과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는 맞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카메라의 조작, 구도, 조명, 후반 작업 등 기술적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 어떤 조건이 주어져도 완벽한(?) 결과물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사진을 단순히 시각적 기록이나 미적 결과물로만 접근한다면, 그 표현의 깊이와 지속 가능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미학과 인문학이 왜 내 사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데 꼭 필요한지에 대한 당위성을 간단하게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1. 미학과 철학의 역할 : 예술적 깊이의 확장
사진은 단순하게 피사체를 포착하는 행위가 아니라, 관람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예술입니다. 철학 중에서 미학은, 사진이 어떻게 시각적 언어로 기능하며, 어떤 방식으로 감정, 개념, 이야기를 전달하는지를 분석하게 만드는 학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예쁜 사진'을 넘어서, 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도구가 됩니다.
사진미학의 주요 개념인 구성에 대해서 살펴 본다면, 우리는 구성(구도)을 할 때 단순하게 규칙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질문을 갖게 됩니다. 왜 특정 구도가 더 강렬한 감정을 유발하는가? 칸트는 아름다움이 주관적이면서도 보편적이라고 보았는데, 사진가는 자신의 주관적 시각을 보편적 공감으로 이끌어 내려면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가? 이런 철학적 사고를 통해 구도의 법칙에 그치지 않고, 구도가 인간의 인식과 감정이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이것을 의도적으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2. 인문학의 중요성 : 사회적 맥락과의 연결
사진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인문학은 사진가가 자신이 속한 세계를 깊게 이해하고, 그 맥락을 작품에 녹이는 데 필수적입니다. 사진 작품에 개인적 감정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문화적 담론에 참여하면서 시대정신을 포착합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경우에도, 살가도는 단순하게 노동자의 모습을 찍은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노동의 관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인문학적 질문을 시각적으로 탐구했습니다. 살가도는 경제학, 사회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노동의 구조적 문제를 이해하고, 이것을 강렬한 흑백사진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문학은 사진가가 단순한 관찰자를 넘어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스토리텔러로 거듭나게 합니다.
3. 철학과 인문학의 통합 : 개인적 세계관의 정립
사진가는 기술적 숙련도를 넘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어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철학과 인문학은 사진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인데, 사진가가 반복적인 작업에서 벗어나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창작의 동력을 얻는 데 필수적입니다.
히로시 스기모토의 'Seascape' 시리즈는 바다를 찍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간, 영원, 인간의 인식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탐구한 결과물입니다. 스기모토는 불교 철학과 서양의 현상학에서 영감을 받아, 모든 바다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의 시간 관념을 초월하는 이미지를 창조했습니다.
이처럼 철학적 사고는, 사진가가 자신만의 주제를 발견하고, 이것을 일관된 시각언어로 표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다시 미학과 인문학이 사진 실력에 중요한 이유를 정리하자면,
1. 사진의 의미와 가치, 역사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2. 자신의 사진 작업에 대한 비평적 사고 능력을 갖게 됩니다.
3. 인문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사진을 기획하고 실행하게 됩니다.
4. 자신의 작업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글로 표현하는 능력을 키웁니다.
5. 사진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자신만의 언어와 관점을 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