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진의 주제와 방향성이 보이지 않으세요?

by 채 수창

'주제와 방향성을 잡으셔야죠'

'그걸 알면 너무 쉽죠. 어떤 걸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여러분들이 제게 말씀하실 때 지금 느끼고 있는 그 막막함, 그 방향을 잃은 듯한 감정을 저는 너무나 잘 압니다.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바라보지만, 정작 무엇을 담아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 답답함 말이에요.


하지만 이런 혼란의 시기야말로 진정한 성장의 출발점이며, 또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 출발점이 됩니다. 이미 정해진 취향에 갇혀있지 않다는 뜻이거든요.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제가 사진의 메카니즘이 아닌 미학과 철학, 인문학을 끊임없이 말씀드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술만으로는 절대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을 수 없거든요. 하지만 단순히 "공부하세요"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떤 순서로 접근해야 할지 막막하실 테니까요.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 GPS가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목적지로 안내하듯이, 철학적 사고와 미학적 이해는 우리의 사진 작업에서 현재 지점을 명확히 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그리고 미술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작품들을 암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 시대의 예술가들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어떤 개인적 고민을 안고, 어떤 방식으로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어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철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어려운 철학서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순간에 철학적 질문을 던져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이 순간을 왜 찍고 싶을까?", "이 피사체가 나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내가 이 장면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들 말이죠.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나 수잔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 같은 책들은 사진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훌륭한 안내서입니다.


미학을 이해하는 것은 아름다움의 기준을 외우는 게 아니라, 왜 어떤 것이 아름다운지, 왜 어떤 것이 감동을 주는지를 스스로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황금비율이나 삼분할법 같은 구도 원칙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런 원칙들이 왜 만들어졌는지, 언제 그 원칙을 깨뜨려야 하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DSC_3171 copy.jpg

1. 먼저 내 자신과 대화부터 시작해 보세요


카메라를 내려놓고 하루 동안 일상을 관찰해보세요. 언제 마음이 움직이는지, 어떤 순간에 발걸음이 멈춰지는지 의식적으로 포착해보는 것이죠. 지하철역의 형광등 불빛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면,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누군가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면, 그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 탐구해보세요. 이런 작은 관찰들이 쌓이면서 자신만의 감수성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자꾸 카메라를 먼저 들이대지 마시고, 눈과 마음으로 완성하세요.


2. 그 다음에는 '왜'라는 질문을 습관화하세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왜 이걸 찍고 싶을까?"를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처음에는 "그냥 예뻐서"나 "재미있어서" 같은 단순한 답이 나옵니다. 하지만 계속 파고들어 보세요. "왜 이게 예쁘다고 느낄까?", "이 재미의 본질은 뭘까?" 이런 질문들을 통해 자신의 미적 취향과 가치관이 서서히 드러나게 됩니다.


3. 움직여야 합니다


한 주 동안 하루에 한 가지씩 다른 스타일로 사진을 찍어보세요. 월요일에는 흑백으로만, 화요일에는 극도로 가까이에서, 수요일에는 멀리서, 목요일에는 아래에서 위로, 금요일에는 위에서 아래로, 토요일에는 역광으로만, 일요일에는 정면 조명으로만. 이런 제약을 두고 찍다 보면 자신이 어떤 방식에 더 끌리는지, 어떤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걸 좋아하는지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기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사진가들의 작품을 골라서 나만의 구도와 분위기로 재구성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모장을 통해 내게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매주 하나씩 완전히 다른 주제로 사진을 찍어보세요. 한 주는 그림자, 한 주는 반사, 한 주는 움직임, 한 주는 정적, 한 주는 색깔, 한 주는 질감 등 꾸준하게 촬영하세요. 그 중에서 몇 개는 "어? 이건 좀 괜찮네?"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바로 그것들이 단서입니다.


4. 사진 일기를 써보세요


매일 찍은 사진 중 하나를 골라서 그 사진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글로 써보세요. 기술적인 분석이 아니라 순전히 감정적인 반응만 쓰는 겁니다. "이 사진을 보면 어린 시절 할머니 집이 생각난다", "왠지 외로운 느낌이 든다",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같은 식으로요. 이런 감정적 패턴을 파악하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이미지에 반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5. 다른 예술 장르에서 힌트를 찾으세요


제가 오래 전에 자주 사용하고, 제 직원들에게 강제로 시켰었던 방식입니다.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골라서 인상적인 장면들을 스크린샷으로 저장해보세요. 그 구도와 색감, 분위기를 사진으로 재현해보려고 시도해보세요. 좋아하는 소설의 한 구절을 읽고 그 느낌을 사진으로 표현해보세요. 음악을 들으면서 그 리듬과 멜로디를 시각적으로 번역해보세요. 이런 번역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시각 언어가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조급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제와 방향성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영감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작은 발견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하나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죠. 지금 여러분이 느끼는 혼란은 창작자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카메라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탐구하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천천히 발견해나가세요. 그 여정 자체가 이미 나만의 독특한 작품이 됩니다.


철학과 미학은 그 여정을 좀 더 깊이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그 나침반도 실제로 길을 걸어봐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진디자인과 기하학이 내 사진에 어떤 도움이 될까?